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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강사들에겐 더욱 허전하게 느껴지는 캠퍼스.
▲ 쓸쓸한 캠퍼스 스승의 날...강사들에겐 더욱 허전하게 느껴지는 캠퍼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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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오늘 스승의 날인데 휴강 안 해요?" 

100여 명을 수용하는 큰 강의실이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강의실이다. 그런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몇몇 여학생들이 큰소리로 합창을 한다. 아마 스승의 날을 핑계 삼아 전공과목을 휴강한 모양이다. 못 들은 척하고 막 출석부를 펼쳐 드는 순간, 나지막한 목소리가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야, 그 사람 교수 아니고 강사야."

그러자 다시 민망한 합창소리가 이어진다.

"선생님, 우리도 휴강해요~."

교수와 강사는 첨예한 종속관계... 학생과 소통은?

교양과목의 큰 강의실은 대부분 강사들 차지.
▲ 스승의 날 텅 빈 강의실 교양과목의 큰 강의실은 대부분 강사들 차지.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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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이렇다. 왜 대학생들이 이렇게 되었을까? "참 싸가지없는 요즘 학생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대학사회를 구성하는 계층은 교수와 학생, 그리고 그 사이에 너무도 많이 있는 강사들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은 교수와 강사 사이에 존재하지만, 교수와 강사는 첨예한 종속관계다. 이 때문에 교수는 휴강을 해도 좋고 절대평가를 할 수 있지만, 시간강사들은 휴강을 하면 안 되고 상대평가를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50명이 넘는 교양과목은 강사들의 몫이기 때문에 대체로 한 강좌에 70~80명을 담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이 상대평가이지 엄격한 퍼센트에 짜맞추어야 하는 평가는 한 학기가 끝나면 더욱 무겁게 신경을 짓누른다.

대규모 교양 강좌의 경우 학생들과 소통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학생 수가 많은 상대평가는 전공과목과 같이 수강인원이 적은 절대평가에 비해 여러 가지 제약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받는 강의 평가 결과가 좋지 않다.

한 학기 성적이 공개되면 평가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의 이의제기도 교양과목이 상대적으로 많다. 교원 신분이 아닌 강사들은 그럴 때마다 처신하기 곤란하다. 학생교육과 학문연구를 하고 있지만 '교원'이 되지 못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열악한 임금과 연구실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 등 여러 불이익은 학생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강사들 지위 옭아맨 고등교육법

교원은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되, 학문 연구만을 전담할 수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15조 2항에 명시된 교원의 존재 규정이다.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은 어떤가. 이들도 고등교육 기관에서 고등교육법에서 규정한 교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강의를 담당하여 학생들 교육과 함께 학문 연구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교원은 아니다.

그들이 교원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고등교육법 제17조 때문이다.

학교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제14조 2항의 교원 외에 겸임교원·명예교수 및 시간강사 등을 두어 교육 또는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

교양과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은 '교원 외'의 자격이면서도 업무는 '교원'과 동일하다.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릴 들어도 교원은 될 수 없는 이들. 고등교육 현장에서 어설프게 옭아맨 고등교육법의 구속을 받으며 지독한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7만여 명에 이른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각 언론들은 스승과 제자의 눈물겨운 미담기사들을 발굴해 보도하느라 분주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훈·포장을 받는 교수들의 모습, 제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들에서도 강사들은 없다. 왜? 그들은 강단에서 강의는 하지만 교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등교육법 속에 자리가 없는 시간강사들은 '유령교원'이기 때문이다.

환한 카네이션의 교원, 어두운 강의실의 강사... 스승의 날 '두 그림자'

강의실 밖 창공을 떠도는 구름들.
▲ 강의실 밖 하늘엔... 강의실 밖 창공을 떠도는 구름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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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에서 강사들을 몰염치하게 무시하거나 간과한다면 학계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이는 결코 '빵'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관된 주장을 전혀 파악조차 하지 않은 매우 모욕적인 단견이다. 사회적 보상 논리와 가장 거리가 먼 거리에서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천하고 있는 그들의 연구와 교육이 공적 자부감을 갖도록 법적으로 허해 달라는 주장이다.

"규제 확 풀어주면 세계 일류대학 자신"

요 며칠 전 전국 14개 대학 총장들과의 인터뷰 결산 기사를 내보낸 <중앙일보>의 1면 기사의 제목이 쓸쓸한 캠퍼스를 바라보니 무겁게 머리를 맴돈다.

기사에서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세계 대학과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로벌화가 필수인데 교수 채용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불평했다. '대학 총장들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 달라'는 주장이 주된 논조였다. 총장 직선제 이후 많은 대학들이 교수들을 편법으로 특채하거나 비전임 교수들을 늘리는 현상은 기사에 전혀 언급이 없다.

총장 직선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강사들이다. 그들의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다. 해마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스승의 날이지만 캠퍼스에선 두 그림자다. 하나는 시끌벅적한 학생들에 에워싸인 환한 카네이션의 교원, 또 하나는 어두운 강의실의 비교원 강사가 그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많은 강사들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학부모, 대학, 나아가 국가가 큰 고통비용을 치르게 하고 있다. 


태그:#스승의 날,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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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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