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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사천시 신도. 송전탑 바로 아래에 신도분교가 위치해 있다.
경남 사천시 신도. 송전탑 바로 아래에 신도분교가 위치해 있다. ⓒ 허귀용

스승의 날인 15일. 경남 사천시 신도에 위치한 삼천포초등학교 신도분교를 취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삼천포항에서 오전 8시 20분에 출발하는 신도행 배를 타기 위해서다. 삼천포항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에게 물어물어 배타는 곳까지 왔지만 신수도행만 있고 신도행은 없었다. 신도행은 반대편 부두로 가야 한단다. 신도를 신수도로 착각한 듯했다.

그렇게 시간을 소비한 사이 신도행 배는 이미 떠나 버렸다. 다음 배는 12시 30분, 어쩔 수 없이 3천원 뱃삯보다 더 많은 웃돈을 주고 신도로 향했다.

 신도 마을 전경
신도 마을 전경 ⓒ 허귀용

지역에서 신섬이라고 불리는 신도는 삼천포항에서 배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30여 명의 주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도분교는 신도 정상에 있는데,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포함해 674㎡ 규모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학교다. 학교라기보다는 아담한 별장 같은 분위기였다.

섬에 도착한 후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5분 정도 오르자 잔디가 깔린 아담한 신도분교가 눈에 들어왔다. 강정권 교사와 김동욱 교사가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1969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신도분교는 개교 당시만 하더라도 학생수가 33명이었지만, 다른 농산어촌 시골 초등학교들처럼 인구가 줄면서 학생수도 급감해 현재 3명에 불과하다. 교사 2명과 학생 3명, 기능직 공무원 1명 등 학교의 총 정원은 6명이다.

 (왼쪽부터) 5학년 정주빈, 4학년 박정대, 6학년 김지환
(왼쪽부터) 5학년 정주빈, 4학년 박정대, 6학년 김지환 ⓒ 허귀용


맏형 노릇을 하는 6학년 김지환, 활달한 성격의 5학년 정주빈, 운동보다 책을 좋아하며 덩치가 가장 큰 막내 박정대(4학년). 학년이 서로 다르다보니 가끔 다툴 때도 있지만 축구도 같이하고, 농구도 같이 하는 등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친구처럼 지내고 있죠. 심하게 말하면 자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삼촌이나 형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부임한지 1년 반 정도 되는 강정권 교사의 말이다. 강 교사와 김 교사는 "학생수가 적다보니 교사와 학생간의 친밀도가 상당히 높다"고 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는 3명의 학생들
스승의 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는 3명의 학생들 ⓒ 허귀용


스승의 날을 맞아 3명의 장난꾸러기들은 강 선생님과 김 선생님 그리고 이문배 아저씨의 가슴에 뭍에서 사온 예쁜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 드렸다.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던 선생님은 고마움의 표시로 살포시 아이들을 안았다.

점심 때가 가까울 무렵 학부모들이 무거운 짐(?)을 머리에 얹고, 양손에 들고서 학교를 찾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학부모들이 정성껏 마련한 밥과 찬들이다. 학부모들이 직접 낚아 손질한 횟감, 장어구이, 채소, 반찬류 등이 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점심식사 자리 위에 놓이고 어느새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는 정담이 오간다. 도시 초등학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학부모들은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점심을 대접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정성껏 마련한 점심. 교사와 학부모가 옹기종기 모여 정담을 나누고 있다.
학부모들이 정성껏 마련한 점심. 교사와 학부모가 옹기종기 모여 정담을 나누고 있다. ⓒ 허귀용

경남 사천시 삼천포초교 '신도분교' 폐지 위기 처해

그러나 정감이 넘치는 신도분교의 모습이 앞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최근 경상남도교육청이 폐지 대상 학교를 발표했는데, 신도분교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사나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신도분교는 10년 전에도 폐지 위기에 놓였지만, 학부모와 지역주민, 동창회 등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었다.

 신도 정상 부근에 있는 신도분교 모습
신도 정상 부근에 있는 신도분교 모습 ⓒ 허귀용

강 교사와 김 교사는 "사천교육청에서 보낸 공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면서 "학교가 폐지되면 아이들이 배를 타고 삼천포로 가야 하는데, 아침 저녁으로 배를 타고 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동네 주민들과 행사도 같이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있는 유일한 관공서인 학교에 주민들이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고 있다"며 "학교가 폐교되면 허탈감이나 소외감이 클 것으로 보여 반대한다"고 했다.

교육여건 개선과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를 폐지한다는 경남도교육청의 태도에 대해 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습 기자재도 부족하고 학원도 없지만, 학부모들의 일 때문에 정규수업 시간보다 늦게까지 수업을 하고 있고, 또 학생수도 적기 때문에 더욱 밀도 있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매주 수요일 본교인 삼천포초교로 가서 다른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받고 있어 사회성이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두 명의 선생님이 3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두 명의 선생님이 3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 허귀용

교사, 학생, 지역주민, 학부모 모두 학교 폐지 '반대'

행여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3명의 아이들에게도 학교 폐지에 대해 물었다.

"같이 축구하고 공부하는 게 재밌어요. 학교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학교로 가는 거 생각해본 적 없어예."

주빈이는 특히 "할머니와 큰아버지, 정대 할머니가 땅을 파서 학교를 만들어 아깝다"며 우리 학교를 그냥 놔두었으면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1969년 학교 건립에 직접 동참했던 정기복 신도어촌계장과 장석자 할머니.
1969년 학교 건립에 직접 동참했던 정기복 신도어촌계장과 장석자 할머니. ⓒ 허귀용

지역 주민들과 학부모들도 "학교 폐지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단호히 반대했다.

장석자 할머니는 "섬에서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랑 내랑 너무 좋아서 학교 짓는다고 밤낮으로 일했다 아이가! 힘든 줄도 몰랐지. 학교가 폐지되면 아이들이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 있나!"고 했다.

초등학교 때 곡괭이를 들고 학교 짓는 데 동참했다는 정기복 신도어촌계장은 "학부모들이 바다에 나가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보살피는데, 학교를 폐지하면 부모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흥분했다.

이어 "학교 졸업생들이 경찰대학도 가고, 서울과 부산의 유명한 대학에도 많이 갔다"며 아이들이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상당수의 신도 주민들이 신도분교 설립에 참여했다.
상당수의 신도 주민들이 신도분교 설립에 참여했다. ⓒ 허귀용


일부 주민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학교를 폐지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학교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도 주변에 있는 섬지역의 여러 학교가 폐지되면서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큰 불편을 겪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도 학교 폐지 반대에 영향을 준 듯했다.

신도분교의 앞날을 바다도 알고 있을까! 회색빛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로 강한 바다 바람이 스치면서 삼천포행 배가 크게 흔들린다. 주빈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내 귓가를 맴돈다. "우리 학교 그냥 놔두세요!"

 (왼쪽부터) 이문배 기능직공무원, 강정권 교사, 김동욱 교사
(왼쪽부터) 이문배 기능직공무원, 강정권 교사, 김동욱 교사 ⓒ 허귀용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스사천#경남사천#신수도#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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