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진도대교를 건너 육지에 겨우 방을 정하고 비코파와 코파가 섞여 자면서도 '때려죽여도 너하고 같이 안 잔다'는 말이 안 나오는 걸 보면 감미로운 밤을 보낸 것 같기는 한데 몸은 아직도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늦게 일어나는 다른 일행을 생각해서 문을 나선 게 8시. 비도 추적이는데 어제 지나친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남도석성을 간다는 게 영 마땅치 않다.
진도읍 설렁탕집 옥향식당에 전화를 하니 준비가 된단다. 설렁탕집 근처는 아직 개발이 덜 됐는지 옛집과 오래된 간판들이 꽤 있다. 여향주점, 부국관, 서향철물점, 잘 생긴 느티나무 아래에는 낡은 마을회관을 접수한듯한 건물 블로크 벽에 페인트로 사정이발관이라 사정없이 써놓은 건물 이 모두 우리 머리 속 어디엔가 박혀있을 낯익은 풍경들이다.
뜨거운 국물에 씻어 먹으면 끝내주는 팍 삭은 깍두기, 파김치, 부추김치, 고추절임, 묵은지와 다대기가 깔리고 송송 다진 파를 뿌린 설렁탕이 나온다. 국물을 뜨는 순간 '이럴 줄 알았으면 특(特)으로 시킬 걸' 후회가 막급이다. 설렁탕이라는 것이 이제는 향기와 국물맛이 제대로 합치된 것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냄새가 그럴 듯하면 국물 맛이 깊지 못하고, 뽀얀 국물은 거의 유제품을 섞은 것이라 보면 된다. 설렁탕 국물을 제대로 내면 넘길 때 고기 국물의 걸지고 약간 칼칼한 맛이 목구멍에 착 달라붙는다. 물론 이 맛은 뜨거운 탕에 얹어 내오는 대파 맛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맛과 향을 낸다.
비가 흩뿌리는 진도읍을 가로질러 쌍계사와 운림산방으로 향한다. 쌍계사와 운림산방은 서로 이웃해있는데 절과 기념관이라는 느낌보다는 정원 같은 느낌이다. 비에 젖은 동백꽃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던 4년 전에도 비가 왔었지. 비오는 날에 걸 맞는 이름인 우광루(雨光樓) 아래를 지나며 나타나는 대웅전 앞뜰의 동백은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이고 대웅전 곁을 지나 뒤뜰 동백나무 화계(花階)는 선운사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자세히 보면 해탈문에서부터 중부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열대성 나무처럼 뿌리가 나무줄기로 타고 올라간 듯 근육질을 자랑하는 나무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근방 계곡은 유명한 상록수림 지대로 희귀한 수종이 많다하니 시간이 되면 계곡물을 적시며 조금 올라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쌍계사가 쉴 그늘이 있는 가정집 정원 분위기라면 운림산방은 잘 꾸며진 저택 정원 같다. 추사고택의 세한송 같은 소나무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한 켠에는 커다란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뒤로 운림산방 본채와 사랑채가 사이좋게 서있다. 비오는 날에는 대청마루에 앉아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보기가 재미있는데 본채 앞에 시야를 차단하는 경계목을 심어놓아 연못과 한가운데 심어놓은 잘 생긴 배롱나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으니 마루에 앉아 할 일이라곤 어쩔 수 없이 옆에 놀러온 시끄러운 아낙네들이나 감상해야 된다.
그러니 기둥에 걸어놓은 추사의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라는 주련의 뜻을 새겨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오로지 수퍼에서 아낙네들과 두부무침에 울금막걸리 먹을 생각만 나게 만들 것 같다.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와의 만남이라는 뜻)
운림산방 뒤쪽에 새로 지어진 진도역사관이 있다. 첫 전시실에는 삼별초에 관련한 왕온과 용장산성에 관련된 모형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어제 밥 먹으면서 남도석성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만든 성이라고 침튀겨가며 얘기했었는데 고려 배중손 장군이 만든 것이라니? 일행 중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확신을 주기 위해 거기 가서는 쌍교와 홍교를 꼭 봐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했었나?
왜구의 침범에 대비한 것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축성시기가 고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줄이야. 선생님이 그냥 지나쳤기를 빌었지만 선생님은 결코 지나치는 법이 없다. 수퍼에서 그 좋은 울금 막걸리를 한 잔 하는데 그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 내가 이실직고 했다.
목포 영란횟집 주변은 이제 민어의 거리로 되어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섰다. 주방 선반에는 이집 비방(秘方) 초고추장 됫병들이 줄 지어 진열되어 있고 아줌마들은 민어를 손질하느라 바쁘다. 채 썬 양배추 위에 민어와 껍질 붙은 민어가 한 접시 나오고 다른 접시에 껍질, 부레, 뼈다재기가 깨소금과 함께 나온다.
상추 잎을 한 장 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툼한 민어회 한 점 초고추장 듬뿍 발라 얹어놓고 파와 마늘 한 점 싸서 먹으니 회맛은 옛 맛인데 식사로 나오는 민어 매운탕엔 둥둥 기름은 없고 양념과 고기가 따로 노니 옛맛은 간데 없다.
동양척식회사 건물이었다는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들어간다. 근처 1.2번 국도 기점 부근에 일본 영사관으로 쓰였다는 건물도 있지만 외관은 거의 손상이 없이 깨끗하다. 내부도 사진전시를 위해 약간 개조한듯하나 원상 그대로인 듯하다. 목포상업회의소에서 만들었다는 <목포항세 木浦港勢>라는 브로슈어에 <목포항선전가>라는 것이 있다.
여기는 조선남단 쌀과 솜의 집산지 / 그 이름도 드높은 목포항 출입선박은 백여척 / 팔백팔섬의 저녁경치 불어오는 바람의 싱그러움 / 무역면액 오천만 인구는 삼만이 넘고 / 바다와 육지의 무진장의 보물의 문 이제 열려라 / 보물의 문 이제 밝혀라 개척은 우리들이 임무
제 값 쳐주지 않고 수탈해가니 거저 돈 버는 보물창고 같겠지. 그러느라 철도 깔고 항만에 부두 만들고 부잔교 만들고 면화공장 만들어서 근대화에 일조했다고 나불대지는 말자. 2층으로 올라가니 관동대지진 때 민심수습하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을 유포시켜 일본인 자경단들에 의해 학살당하는 현장, 시신, 조선여인들의 나체사진등 이전에 보지 못했던 처참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무리 못난 조상, 무능한 지배세력 때문에 나라가 기울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나라 없는 백성에 대한 인권유린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울적한 마음으로 아래로 내려오니 방명록에는 '유달산 기리 보존하세.. 항일독립군 장거에.. 우리는 후손과 함께..', '너무 끔찍해요', '집이 답답하다', '무서워. 잔인해' 등의 글이 적혀 있다.
서천종합시장. 몇 년 전만해도 한산하던 시장은 수산물, 농산물과 사람들로 활기차다. 참소라와 고막을 사가지고 서천에 있는 친구 집으로 향한다. 여자 못지않는 솜씨로 껍데기에 묻은 개흙을 깨끗이 닦고 삶아 접시에 내니 음식값을 치루고 싶다. 커다란 소라를 젓가락으로 훑어내니 장까지 깨끗하게 딸려 나온다. 싱싱하다는 증거. 백령도에서는 소라 하나로 막걸리 한 대접 들이켰던가?
9시쯤이면 귀경하는 길이 한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웬 걸 홍성 근방에 가니 그때부터 당진IC까지 평균 20킬로미터의 속도. 출발지 서울로 올라오니 새벽 2시반. 그 날 비몽사몽간에 몸은 둥둥 다도해로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