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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절대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정부는 장관 고시와 관보 게재를 강행하며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유통을 시작했다. 여론의 부담을 느낀 판매업체들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판매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하나의 상술에 불과한 전략이였을 뿐 냉동창고에는 판매물량을 이미 확보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판매가 시작되자 경찰병력이 마트 앞에서 경계를 서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 의해서 미국산 쇠고기는 금새 품절되는 등 시장을 급속히 잠식해나갔다. 수입전문 판매점에서는 식당 업주들이 많이 구입해간다는 뉴스에 쇠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에서는 한우가 아니면 1억원 보상이나 벤츠 승용차를 내걸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단속으로 거짓임이 드러나자 속은 손님들이 법정소송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미국산 쇠고기의 시장점유율 1위가 안전성이 입증되는 근거라는 보도도 어이없었지만 식당이나 뷔페를 가더라도 원산지를 미국이라고 표시한 곳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의아했다. 그만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이거나 혹은 속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산지 허위표시 단속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적발된 업소에 대한 정보공개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네티즌수사대'가 나서는 일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트에서는 점차 구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고 판매대를 축소하거나 적극적인 시식홍보를 하는 경우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집에서는 평소에도 쇠고기는 자주 먹는 편이 아니였지만 설렁탕 한 그릇에서도 원산지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경각심도 있었지만 국민주권을 무시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항거이기도 했다. 가공식품은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펴보고 의심이 되는 성분이 있으면 구입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에도 미국산 쇠고기 사용을 하지 말것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다행히 사용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았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광우병의 위험성을 이해시키는것이 어려웠는데 그 당시에 과자에서 멜라민 파문이 생기자 뉴스를 함께 보면서 멜라민과 광우병을 연계해 설명을 해주면 이해하는 듯했다. 딸은 수퍼에 가서 과자를 구입할 때 한 동안은 주인에게 '이거 멜라민 들어 있는거예요?' 물어보고 구입하는 당돌함을 보이기도 했다.

마트에 가면 나는 장을 보고 아이들은 시식코너를 돌며 음식을 먹어보는것을 좋아했는데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 차원에서 시식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갈 때마다 충분히 설명해주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고기냄새의 유혹을 무시하기에는 아직은 어리기 떄문에 시식코너에 바짝 신경을 써야만 했다.

언젠가는 미국 성조기가 디자인된 앞치마와 모자를 쓴 도우미가 쇠고기를 구우며 홍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서너걸음 뒤에서 아빠와 시식 코너를 보면서 내가 한눈이라도 팔면 얼른 한점이라도 먹어볼까하는 표정이였다. 그때 도우미가 고기 한 점을 딸에게 내미는 것을 보고는 손짓으로 말렸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아빠 이거 미국산 쇠고기라서 먹으면 안 되지. 광우병 쇠고기 안 먹어요' 했다. 몇번의 고비를 넘긴 후로는 좋아하는 쇠고기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원산지 확인을 꼭 한다.

'아빠, 이거 설마 미국산 쇠고기는 아니겠지?'
'한우니까 걱정말고 드셔요 공주님.'

요즘에는 미국소고기의 판매가 갈수록 부진하여 냉동창고에 쌓인 고기들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며 수입가의 절반 가격에 외국으로 역수출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미국산 쇠고기 전문식당들의 잇단 폐업소식들도 들려온다.

촛불을 계기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쇠고기 뿐만 아니라 다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키웠다. 특히 수입 먹거리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유통과정에서 가해지는 고문과도 같은 비윤리적인 처리과정을 알아갈수록 더이상 그것들은 먹을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후로 우리집의 식단에서 수입 먹거리는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생각하는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