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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겉표지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겉표지 ⓒ 민음사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로 알려진 파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는 아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약간 알려졌을 뿐이다. 또한 미국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서 약간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무명'에 가깝다. 애석한 일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지닌, 강렬함과 섬뜩함이 만들어내는 문학적인 즐거움이 놓치기에는 꽤 아깝기 때문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일상'에서 섬뜩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과 잔혹함을 그려낼 줄 알기 때문이다. 소설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그것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적당하다. 이 작품은 중산층의 잔혹한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대표적인 소설이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와 '노인 입양'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중산층이다. 그들은 저녁에 모여서 파티를 하고 중요한 정보들을 공유한다. 그들은 사교적인 모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모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친구 한명이 눈에 거슬린다. 분명한 이유는 없다. 그때그때마다 싫은 이유가 생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를 따돌린다. 단순히 어느 모임에 나오지 못하도록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아넣는 식으로 따돌린다. 예컨대 그가 회사에 중요한 미팅을 가기 전에 핑계를 만들어 만취시킨다든지 해서는 안 될 짓을 시킨 후에 그것을 공개하는 식이다. 악질적인 장난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친구가 자살한다. 그들은 반성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중산층의 이중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노인 입양'은 착한 마음으로 노인 부부를 입양한 젊은 부부가 주인공인데 그들도 중산층이다. 생활이 안정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그런 그들은 선의의 마음으로 노인 부부를 입양했지만 점점 그들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들의 친구들은 노인 부부를 떼어놓으라고 하지만 그것도 쉽게 안 된다. 노인 부부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것일까? 어떤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어느 날 부부는 귀갓길에 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깜짝 놀라 집 안으로 급히 들어가 중요한 물건을 챙긴다. 동시에 집이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곤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 2층을 바라본다. 구하러 가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른척하고 친구네 집으로 간다. 친구는 뭐라고 할까? "잘됐다"고 할 것이다. 이 또한 중산층의 이중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로를 경멸하는 상류층 부부의 해괴한 유괴극을 다룬 '로마에서 생긴 일'은 어떨까? 아내는 고위 공무원인 남편의 부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답답하다. 더군다나 남편에게 정부가 생긴 것 때문에 그 답답함은 분노로 바뀐다. 그래서 자신을 좋아하는 어떤 남자에게 남편을 납치하라고 의뢰한다. 납치는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아내는 기분 좋게 범인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들이 남편을 풀어주고 아내를 납치한다면? 그런데 남편이 돈 못 주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로마에서 생긴 일'은 짧은 단편소설 안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한 그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러한 이야기는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공포심을 느끼게 해준다. '고급'적인 섬뜩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 소설만 하더라도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지닌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여기에서 언급한 '로마에서 생긴 일'이나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노인 입양'만 특출 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에 담긴 소설들은 그 수준이 두루두루 높다.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소설을 모은 셈이다. 그런 만큼 하이스미스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회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2005)


#하이스미스#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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