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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 이스라엘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이후 예루살렘은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번갈아가면서 성지로 삼은 '거룩한 땅'이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이다. 하지만 거룩한 땅과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갈등과 분쟁,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루살렘은 유다 광야 불모지 언덕 위에 있는 도시로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수메르의 울, 히타이트의 하투사스, 이집트의 테베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도 아니다. 로마처럼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루살렘 때문에 울고, 웃었고, 삶이 뒤바뀌었다.

 

왜 그런가? 군사와 정치, 경제적인 힘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제2차 성전대사와 유대묵시문학을 전공한 최창모 교수가 지은 <예루살렘- 순교자의 도시>에서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어도 하나의 신앙만을 고집하고 살아온 이들이 지켜온 도시 예루살렘을 만날 수 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

 

예루살렘 첫 주인은 히브리 민족 시조 아브라함이 아니라 살렘 왕 멜기세덱이 이끄는 원주민들이었다(창세기 14:18).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가 된 것은 지금부터 3000년 전 이스라엘 최고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 왕 때였다. 다윗은 자신이 세운 예루살렘을 노래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편 122편)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고, 형통하고, 사랑하기를 다윗은 구했지만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 대신 군사력에 의존했으며, 많은 외국 여자를 후궁으로 맞았다. 이는 모세법을 어긴 것이고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다. 결국 그 화려했던 예루살렘은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다.

 

바빌론 포수 이후 제2성전시대를 열었지만 그리스와 로마 지배를 받았다. 132년-135년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다. 이후 예루살렘은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까지 2000년 동안 유대인의 도시가 아니었다.

 

기독교인의 예루살렘

 

1996년 예루살렘을 갔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예수의 흔적은 없었다. 예수님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로마가 만든 흔적이었다. 예루살렘을 기독교 성지로 만든 이는 콘스탄틴 황제였다. 그는 교회를 건축하면서 여기가 예수가 나신 곳, 가르치신 곳, 승천하신 곳으로 했다. 하지만 그곳은 예수가 나신 곳도, 가르치신 곳도, 승천하신 곳도 아니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지배에 들어가자 기독인들은 거룩한 땅을 되찾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첫 번째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되찾자 그들은 피의 살륙을 자행한다. 이슬람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피의 살육을. 이뿐 아니다. 유대인들까지 살육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피 묻은 곳에서 깨끗한 새 옷을 걸치고 맨발로 걸어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밟고 지나간 거룩한 곳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리고 발치에 서서 한 지점에 입을 맞췄다."(48쪽)

 

거룩한 땅, 생명과 평화의 땅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예수님 없는 십자가가 남긴 피의 살육이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만 앞세웠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없었다. 기독인들에게 지금도 예루살렘은 거룩한 땅이지만, 아직도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은 없다.

 

무슬림의 예루살렘

 

638년~750년 무슬림은 예루살렘의 새 주인이 되었다. 주목할 점은 유대인과 기독인이 예루살렘 주인일 때는 피의 살육이 자행되었지만 무슬림이 638년 예루살렘 주인이 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지킬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유로운 예배가 허가되었으며, 기존의 비잔틴 영토 내의 거주도 허락되었다. 비잔틴에게 내던 세금은 아랍에게 내면 되었다. 도시의 일상생활과 무역활동은 정복 이후에도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63쪽)

 

그들은 정복자였지만 저항하지 않으면, 어떤 희생도 파괴도 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무슬림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하지만 그 박해는 1099년 십자군이 이슬람에 자행한 학살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기독교인, 무슬림과 함께 3000년을 이어왔다. 거룩한 땅과 평화의 도시라고 말했지만 평화를 지켰던 때는 얼마되지 않았다. 지금도 통곡의 벽 앞에서 수많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순례를 하고, 무슬림은 성전 산 위에 있는 '바위 사원'에서 알라에게 예배를 드린다. 언제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예루살렘-순교의 도시> 최창모 지음 ㅣ 살림 펴냄 ㅣ 3,300원


예루살렘 순례자의 도시

최창모 지음, 살림(2004)


태그:#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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