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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남편이 누런 상자를 코 앞에 들이민다. 

 

"이게 뭐야?"

"열어 봐."

 

남편의 의기양양한 표정에서 뭔가 좋은 것이 들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뭐냐고?"

"선.물!"

 

선물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남편이 이번에는 멋쩍게 웃는다. 여자에게, 특히 아내에게 선물을 주는 한국 남편은 흔한 모습이 아닌 지라 남편 역시 멋쩍은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리라.

 

주는 사람 기쁘고 받는 사람 즐거운 선물. 하지만 선물을 두고 늘 그렇게 유쾌한 기분만 오가는 것일까.

 

아니!

 

분란을 일으켰던 선물을 추억하다

 

20년도 더 된 케케묵은 이야기다. 신록이 우거진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서른을 눈앞에 둔 꽃다운 20대 그 시절, 남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느닷없이.

 

기뻤을까? 별로.

 

왜냐고?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 통속적인 여자가 되어 버렸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남편의 뒤늦은 공부가 막막해서, 날아갈 듯 가벼운 은행 잔고가 심란해서 낭만과 이상보다는 잇속을 따지고 실속을 챙기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겉은 아름다운 신혼의 새댁이었지만 속은 알뜰하게 가계부를 적고 계산을 하는 노련한 아낙이었다. 이렇게 이중적인 생활을 하던 내게 남편이 내민 '착한 선물'은 그저 복잡하기만 했다.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돈이 제법 나갔을 것 같은데 한마디 상의도 안 하고 샀단 말이지. 뭐, 선물이라고?'

 

선물을 상의한다는 게 좀 우습긴 했지만 내가 봤던 그 누런 상자는 그냥 선물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았다. 뭔가 음모(?)가 있어 보이고 냄새가 났다.

 

'이게 선물이라고? 그냥 상품이잖아. 약지 못한 이 남자가 연구실로 찾아온 어느 입담 좋은 외판원 상술에 덜컥 넘어가 바가지를 쓰고 산 것일 거야.'

 

나는 선물 속에 담긴 불순한 의도를 생각해 내고는 좀 마뜩찮은 표정으로 상자를 열었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드뷔시, 챠이코브스키… 사티

 

음악이 들어 있었다. 가지런하게.

 

래 이런 '전집류'를 싫어했다. 책도 그렇고 음반도 그랬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이나 듣고 싶은 음반이 있으면 딱 하나 사서 읽고 듣는 게 좋지 이런 종합세트 같은 전집류는 싫어했다.

 

남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왜 남편은 이런 전집류를 선물이라고 씩씩하게 사온 것일까. 도대체 외판원이 무슨 말로 그를 꼬드겼기에 덥석 들고 온 것일까.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사온 선물이라고 하니 진정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즐겨 듣던 <짐노페디>를 작곡한 에릭 사티가 전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해에 한 몫 거들긴 했다. 사고 싶었던 음악이었으니까. 하지만 없는 살림에 셈이 흐린 남편이 도대체 얼마의 거금을 주고 산 것인지 못내 궁금했다.  

 

"얼마 줬어?"

"얼마 안 해."

 

남편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얼마 안 하긴, 비쌀 텐데. 돈도 없는 학생 주제에 무슨 선물을. 어디 눈 먼 돈이라도 들어왔어?"

"월급 많이 받잖아."

 

많이는 아니지만 당시 국립대 조교를 하고 있던 남편의 신분은 공무원이었다. 그런대로 월급은 받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이런 선물을 사도 될 만큼 여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듣고 싶지 않을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 귀가 얇아서야. 이러다가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외판원들 물건 다 사 오겠네. 그 큰 학교에 찾아오는 사람이 하루에도 여럿 될 텐데. 나중에 당신 너그럽다고 소문나면 그 사람들 '밥'이 될 거라고. 그러니~"

 

이렇게 몇 마디 더 싫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을 때 갑자기 서늘한 한 마디가 내 귓전을 때렸다. 

 

"다이애나비도 이걸 들었대."

"무슨 소리야?"

"여기 이 음악이 바로 다이애나비가 임신했을 때 들었던 태교 음악이래."

"뭐, 뭐라고?"

 

멍했다. 둔탁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태교 음악이라고? 태교라. 그러니까 태어날 아기를 위해 태교 음악을 사왔단 말이지. 좋아. 그런데 태교라는 건 일단 임신을 해야 하는 건데 우린 태아가 없잖아. 어쩌면 영영 아기를 못 가질지도 모르는데 웬 태교냐고?"

 

앙칼지게, 서글프게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태교를 하려면 태아가 있어야 할 게 아냐?

 

만감이 교차했다. 화가 났다. 하지만 그 화는 이내 서글픔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내 컴플렉스에서 오는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유산을 했었다. 의사가 처음 "임신"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좋아했었다. 아직 태동을 느낄 때가 아니었지만 이미 '상상 태동'을 느끼며 내 손을 배 위에 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쁜 소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하혈로 유산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런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보니 슬슬 임신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유산을 한 뒤 찾아간 병원에서는 "좁쌀만한 혹을 제거해야" 하느니, "난소 하나를 제거해야" 하느니, "자궁근종"이라니 하면서 제 각각 다른 진단을 내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 몸이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남편이 태교에 좋다는 음악을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선물이라고. 

 

남편이 참 무심하다고 생각을 했다. 잔인하다고도 생각을 했고. 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원래 낙천주의자였던 만큼 나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사온 선물이었다. 결국 남편이 옳았다.

 

나는 자궁 속에 양성 혹을 가진 채 두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고 잘 자랐다. 임신 중에는 남편이 선물했던 바로 그 음악, 다이애나비도 들었다는(외판원의 감언이설이겠지만) '태교 음악'도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두 아이 모두 이곳 학교에서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둘 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외에 미국에 와서 새롭게 시작한 오보에와 퍼커션으로 각종 오디션에 나가 학교를 빛내고 있으니까. 

 

아이들의 활약 덕분에 종종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 부부 가운데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있느냐고. 누가 두 딸에게 '음악 유전자'를 물려줬느냐고.

 

음악 유전자? 그런 거 애당초 없다. 그냥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회장을 많이 찾았고 음악을 많이 들었을 뿐이다. 두 딸에게 만약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나를 서럽게 했던 남편의 그 때 그 시절 선물이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태그:#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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