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생대회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오래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나도 학창시절에 사생대회를 했었으니까. 적어도 3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주로 봄에 간다. 4월에서 5월에. 아마도 신록의 계절에 그동안 신학년이 되어 긴장하고 움츠러들었던 몸의 근육도 풀고, 친구들도 생겨서 말문도 트일 때쯤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며 심신을 단련하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우리 학교도 5월 초에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왔다. 이곳은 해마다 가는 곳이었고 언제 가도 늘 좋았다. 오래되어 나무도 컸고, 풍경도 좋고, 넓어서 여러 학교가 와도 웬만하면 수용이 되었다. 그림 그리기엔 안성맞춤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그밖에도 좋은 곳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통편이나 거리상으로나 대공원이 딱이었다.

 

우리 학창시절에도 사생대회 장소는 몇 군데 없었다. 정해져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이나 태강릉 또는 경복궁 혹은 창경궁이 단골 장소였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장소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우선 사생대회 장소는 그림 소재가 많아야 한다. 풍경이 예뻐야 하고 그러니 장소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교통이 편하면 더욱 좋고.

 

사생대회라 하면 콧바람 쐴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행사날 비가 오는지에 온 신경이 쓰였고,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싸준 엄마표 김밥과 음료수, 과자에 화판등의 미술도구를 챙겨 만원버스를 타고 갔었다. 돗자리도 챙겨 갔던 것 같다.

 

대충 그려놓고 모여앉아 먹던 김밥은 얼마나 맛있던지. 날마다 소풍같기를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김밥을 사오지도 않는다. 주로 공원안 매점 등을 이용해 사먹는 경우가 많다. 화판 정도만 챙겨오는 아이들이 대다수다. 엄마표 김밥은 찾기 힘들다. 

 

아이들을 인솔해서 아침에 켄트지를 나눠주고 각자 그려서 정해진 시간까지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그렸다. 물론 대충 그려놓고, 노는 데 열중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굳이 참견하지 않았다. 전교생 모두가 완벽하게 그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림을 빙자해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장난도 치고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더우기 5월 4일은 대부분 학교가 재량 휴일로 쉬기에 거의 우리 아이들만 있어서 오히려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나 호젓하게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올해 다시 단장을 해서 재오픈을 했다. 이전보다 볼 것이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서 좋았다. 예를 들면 나무뿌리 공원, 동화의 나라, 전설의 나라 등등 테마를 정해 공들여 새로 단장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돌아다니며 아이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찍기도 하고 구경도 했다. 그런데 수채화 그리는 모습이나 수준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 같다. 나무 한 그루 그린 녀석, 두 그루 그린 녀석, 기타 장난끼가 발동한 녀석 등 아이들의 기발함을 볼 수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사생대회는 꼭 수채화여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없을까?재료가 많이 필요할까? 시간이 많이 필요할까?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분수를 가동시키는데 그림보다 물놀이를 더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 어른 입장에서 보면 젖은 옷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겠지만, 장난꾸러기 악동(?)들의 표정은 즐거운 걸 어쩌랴!


태그:#사생대회, #신록, #어린이 대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