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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조의 여왕>이 끝이 났다. 벌써 월요일, 화요일이 허전해지는 듯하다.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내조의 여왕>은 이 시대상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막장이 아닌 명품드라마로 끝을 맺었다. 물론 불륜이란 소재가 등장해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내조의 여왕>은 불륜을 적절하게 그려내며 호응을 얻었다. 아니, 오히려 부부관계를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내조는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니?

 

우선 여자의 삶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내조의 여왕>은 주부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래, 아줌마의 삶은 이렇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전문 직업 여성인이 아니라면 사실 대다수 주부들의 삶은 그렇다.

 

아침에 눈 뜨면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깨워 밥 챙겨주고 나면 한숨 돌리는 듯하지만 주저 앉아있다가도 다시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해 청소하고, 닦고 나면 아이들이 하교한다. 그런 아이들 데려가 학원 보내고 나면 저녁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주부의 티 나지 않은 하루 일과가 그렇다. 참 중노동인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정말, 이 세상에 가장 외로운 직업이 주부가 아닐까. 바깥 일 한다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 안에서 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주부들은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티 나지 않고 생색도 내기 힘든 외로운 직업이 주부지만 또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무척이나 행복한 직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마 결혼 안 한 것들은 모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조의 여왕>은 내조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주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인공 천지애(김남주)는 보통 주부들과 다른 점이 있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아이 유치원 보내는 일은 같은데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남편 온달수(오지호)의 출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단란한 가족이지만 남편 달수의 무능력이 늘 고민거리다. 가정을 지켜야하는 남편이 무직으로 허송세월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쩔까.

 

이 경우 대부분 여자들이 이혼을 택할 테지만 천지애는 평강공주가 되고자 한다. 바보 온달수를 능력있는 폼난 가장으로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그렇게 나선 천지애는 퀸즈 푸드에 달수를 입사시키는데 성공하며 드디어 내조의 여왕 집단이라 자부하는 평강회에 입성한다. 물론 그 입성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고교시절 친구 양봉순(이혜영) 때문이다. 자신보다 늘 발아래라고 믿었던 양봉순이 얼굴 리모델링하고 지애의 첫 사랑 준혁(최철호)의 부인이 되어 부장 사모님이 된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봉순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사정을 한다. 그도 모자라 이사 사모님의 수족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그녀다. 이런 부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달수는 회사에 취직을 해도 실수 연발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애의 헌신적인 내조는 사실 평강회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 남편 이사직함을 이용해 평강회와 퀸즈펠리스 지위를 남용하는 오영숙(나영희)도 남편을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살아간다. 늘 자신의 부족함과 지애와 결별하게 만든 죄책감에 늘 남편을 하늘로 떠받들고 사는 양봉순도 결국 내조의 여왕을 자청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영숙이 여우처럼 내조하면, 양봉순은 일기예보처럼 내조하고, 천지애는 오뚝이처럼 내조를 펼친다. 모두가 방식은 달라도 결국 내조로 통하는 그녀들. 이쯤 되면 내조의 어원을 살펴볼 텐데 내조는 과거의 유물과도 같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문여성이 급증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전업주부는 살아 있다. 그들에게 내조가 하나의 행복이라면 그 누구도 그녀들을 비난할 수 없다. 마치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건설적인 삶을 살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 착각에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수다'라는 다소 시끄러운 쓸데없는 이야기로 비하하지만 전혀 모르는 말씀이다.

 

<내조의 여왕>의 여왕들은 비록 과거 구시대적인 유물에 해당하는 내조를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조용히 내조했던 과거 어머니들과 달리 이젠, 내조가 능동적이다. 자신의 남편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그러한 내조. 실제 그렇다.

 

남편이 벌어온 돈 차곡차곡 적금해 돈 천 만원 벌어 놓는다고 해서, 요즘 남편들 좋아하지 않는다. 그 절약정신에 경배하기는커녕 '다른 마누라들은 집에서 펀드, 주식으로 돈 벌어 온다는데' 라며 비교한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과거 시대의 유물인 내조와는 별개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조를 통해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그녀들의 고충을 헤아리는 드라마다.

 

"사랑은 하나야. 하나니까 사랑이지... 셋이면 막장인거야"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남편이 흔들렸다는 고백을 해온다.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대부분 이러한 무너짐에 내 자존심이 무너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데 여자들은 전혀 모르는 남자들의 서툰 판단이다.

 

여자가 내조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보통 여자들은 다 그렇다. "돈 버는 재주도 없는 놈 참고 살아줬는데 결국 바람이야?"라며 괘씸죄를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부 간에도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애는 그 의리가 무너지면서 자신만 바라보는 달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지금껏 버티며 살아왔는데, 아니 행복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소현(선우선)에게 흔들렸다니, 애통해도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남편 달수는 조금 용서를 빌더니 조금 물고 늘어지니 이제 이혼하자고 나선다.  홧김에 내뱉은 "너랑 결혼한 거 후회해!"라는 단 한 마디에 말이다. 그동안 무능력한 남편 덕분에 돈 걱정에 하루하루 힘들어도 참고 살아왔건만.

 

대부분 남편들은 그렇다. 자기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들이 쉽게 용서해주기 바란다. 믿음 먼저 깨버린 사람은 자신들인데, 후회하면 또 골을 내는 못된 습성을 가진 것이 남자일까. 달수도 이혼하자며 지애 마음을 더욱 산산조각 내버린다.

 

지애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살면 언젠가는 자기를 바라봐줄 거라 믿으며 살아온 양봉순. 그런데 이 남편 여전히 지애와의 추억에 빠져 살아가면서 좀처럼 양봉순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늘 외롭다. 은소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여자로 취급하지 않은 허태준(윤상현) 때문에 늘 외롭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은 부인들의 입장만을 일방통행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고충을 겪는 남편들의 자화상도 이야기하고 있다.

 

지애를 사랑해 그 추억을 잊지 못하지만 늘 자신을 낮추던 부인이 고마웠던 준혁이지만 양봉순은 계속해서 엇나가며 지애와 싸움을 만드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래서 점점 자신의 말에 어깃장을 놓는 봉순이다.

 

그뿐인가. 잠시잠깐의 흔들림에 이혼까지 갈 법한 달수는 사실 지애가 떠날까봐 누구보다 지애를 무서워했다. 팔이 다쳐도 몇 달은 가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한 달수지만 자신의 무능력이 지애를 힘들게 했음에 마음 아파했다. 달수의 대사에서 그러한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난 세상에서 내 마누라가 제일 무섭거든. 화낼까봐 무섭고, 때릴까봐 무섭고, 실망할까봐 무섭고, 나 만난 걸 인생 최악의 실수라고 생각할까 무서워"

"결혼기념일 때마다 반지 하나씩 사줄께. 당신 힘들 때마다 좋았던 추억 하나 까먹으면서 살잖아. 힘들 때마다 결혼기념일 반지 팔든지 당신 마음대로 해. 그러면서 조금씩 참아줘."

 

<내조의 여왕>에서는 이 시대의 부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은소현의 말처럼 "나는 오빠를 좋아한 게 아니라, 오빠랑 천지애씨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라는 이야기는 결국 부부란 정이 떨어져 수백 번 이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둘이 함께 할 때, 그게 부부임을 잘 보여준다.

 

4대 보험도 되고 신용대출도 되는 정직원이 됐어!

 

불황에 휩싸인 우리들의 모습을 <내조의 여왕>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활고에 쫒기는 아내,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취직을 못하는 남편, 계약직에 불안한 마음까지. 

 

"4대 보험도 되고 의료 보험도 받을 수 있고 신용대출도 되는 정직원이 됐어"라는 대사로 하나로 이 시대에 일어나는 현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내조의 여왕>은 양육강식의 밀림과도 같은 직장의 생활을 그대로 그려냈다.

 

내조를 받은 든든한 남편들이 사회에 나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퀸즈푸드를 둘러싸고 김홍식(김창완) 이사는 사장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준혁은 이사의 백을 업고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달수는 퀸즈푸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몇 번의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준혁의 대사에서 이러한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지고 있다.

 

"직장이 왜 전쟁터인지 알아? 집안의 가장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곳이기 때문이야. 당신은 당신 가족을 위해서 피 쏟아가면서 싸워본 적 있어?"

 

이처럼 총알 없는 전쟁터에서 남자들은 가정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에 매진한다. 아래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밀려 해도 밀리지 않은 선배들 틈에서 저마다 고군분투하는 남편들. 이 시대의 그야말로 고개 숙인 남편들의 모습이다.

 

<내조의 여왕>은 이처럼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렇게 말한다.

 

"여왕의 시절이 지나가 버렸다 해도, 세상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했다 할지라도 낙심하기는 이르다. 인생사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나! 이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오듯 삶이 주는 각기 다른 즐거움이 우리를 또 다시 채워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간다. 내조의 여왕에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살았다고 한탄해도, 직장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고 후회한다 해도 인생사 다홍치마다. 아니 새옹지마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의 해피엔딩은 참 좋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지애의 반전이 없어도 즐거운 건 우리의 인생이 지금 당장 힘들어도 언젠가는 웃을 거라는 그 믿음을 끝까지 보여주었기에.


태그:#내조의 여왕 , #천지애 , #토사구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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