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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한류 때문인지,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싱가포르 신문에 한국 뉴스가 나오는 경우가 잦다. 한국 연예인들의 동정이 실리기도 하고, 한국 경제 관련 소식이나 한국 상품에 대한 소개도 자주 실린다.

반면에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지,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 소식 외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는다. 대신 북한과 관련된 소식은 곧잘 실린다. 북한 핵 소식이나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 후계구도 등은 싱가포르 신문만 봐도 충분할 정도다.

외국에서 접하는 '한국뉴스'

싱가포르 일간지 <TODAY>에 실린 '명박산성'
 싱가포르 일간지 <TODAY>에 실린 '명박산성'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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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시위와 관련한 소식이 자주 실리는 편이다.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촛불은 거의 매일 지면을 차지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소개된 건 광화문을 막아 섰던 '명박산성'과 군홧발에 짓이겨지는 여대생 사진이었다.

신문에도 크게 실렸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 낯선 광경에 대해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 오기도 했다.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은 검역주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우리국민의 저항의식을 만방에 알린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명박산성'과 '군홧발'은 시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후진적 대응방식을 알린 낯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교민들을 낯 부끄럽게 만들곤 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의 국가 브랜드에 대해 몇 마디 했단다.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떨어뜨리는 세 가지 요인이 폭력시위, 노사분쟁, 북핵문제로 조사된 바 있는데,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과격 폭력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

화물연대와 경찰의 충돌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저항하는 절박한 상황의 노동자들은 제쳐 두고 손상 입은 한국의 이미지를 걱정하는 대통령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그토록 한국의 이미지와 국가브랜드를 걱정하면서 광화문에 '명박산성'을 쌓을 생각은 어떻게 했으며, 검찰마저 '죽봉'이라 부르는 만장용 대나무 깃대를 굳이 '죽창'이라 부르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명박산성과 군홧발 진압, 그리고 '국가브랜드'

이명박 대통령이 걱정하는 국가브랜드란 그런 찰나적인 모습에 의해 좌우되는 단순한 게 아니다('명박산성'과 같이 기상천외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대통령를 포함하여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의식과 수준이 국가브랜드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5월 19일 영국의 각 언론들은 지난 5월 초부터 불거진 영국 하원의원들의 '주택수당 부정 수령' 파문과 관련하여 마이클 마틴 영국 하원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을 전했다. 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주택수당의 청구내역 확인 결과, 수당이 원래의 취지와 동떨어지게 사용되었고, 이런 일을 막을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미리 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의장이 물러난 것이다.

영국과 영국의회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울지 몰라도,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 일에 의회 의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영국 의회라면 기대 수준을 높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쌀 직불금 사태가 벌어졌던 한국의 2008년 10월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애초 공무원 4만여명을 포함해 최소 17만명이 쌀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다던 그 초유의 사건은, 부당 수령 당사자인 이봉화 당시 차관의 사퇴 말고는 아무도 책임지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없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절차의 적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한다는 영국 의회 의장의 결단 앞에서 쌀 직불금 파동 당시 편법이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라던 공직자들의 변명은 한낱 '개소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화물연대 집회.
 화물연대 집회.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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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을 앞둔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김노식 전 의원, 양정례 전 의원의 어머니 김순애씨가 18일 오전 검찰출두를 위해 서울 여의도 당사에 모인 가운데 친박연대 당원들이 재판을 담당했던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주장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을 앞둔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김노식 전 의원, 양정례 전 의원의 어머니 김순애씨가 18일 오전 검찰출두를 위해 서울 여의도 당사에 모인 가운데 친박연대 당원들이 재판을 담당했던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주장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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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봉과 신영철 대법관 파동, 무엇이 더 부끄러운가

이메일로 촛불 재판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사람들 눈을 피해 뒷문으로 출퇴근하고,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버티고 있단다. 지난 해 7월 촛불재판 몰아주기 배당에 대한 문제제기가 된 이후로 10개월, 신 대법관이 이메일을 보낸 10월 이후로는 7개월, 이메일 발송 사실이 보도가 된 3월부터는 2개월이 더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고, 당사자인 신 대법관은 "재판에 대한 간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과 아닌 사과 하나를 내놨을 뿐이다.

종신직 의장 자리마저 책임감 때문에 물러나는 영국의 의회 의장과 잘못은 했지만 물러날 수 없다는 한국의 대법관이 국가브랜드의 차이를 만든다. 책임질 줄 모르고 자리에 연연하는 고위공직자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말아 먹는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애먼 대나무 깃대 바라보며 죽창이라 주문 외우는 딱 그 시간만큼 국가브랜드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다.


태그:#이명박, #국가브랜드,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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