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볕이 뜨거운 한낮의 하늘빛보다 더 뜨거운 여의도 대리석 바닥을 건너 그녀를 찾아갔다. 남 앞에 스스로 나설 수 없는 지적여성장애인들의 보금자리문제도 업무와 연계되어 그 힘과 지혜를 나눔받고 앞으로의 대안도 의논할 겸 겸사로 찾아갔다. 마침 한국의 차문화대전이란 은은하고 깊은 향의 녹차 전시가 로비에서 열리고 있었다.
고장마다 돗자리를 깔아놓고 시음하게 해서 지리산 백련차와 제주도의 설록차를 비롯한 초의선사를 되새기는 리플렛도 받아보고 그윽한 향초도 몇 개 무료로 받았다.
딱딱한 돌덩어리 투성이의 국회건물속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전통염색한 우리 베옷과 은은한 향들을 먼저 대하니 절로 따스한 정감으로 씻어졌다.
차를 마시며 담담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 때는 함께 10여 년을 같이 책상을 맞대고 서로 토론을 하거나, 베개를 나란히 놓고 서로의 다리를 주물러 주거나 했던 그녀이다.
오랜만에 만나 두 손을 내미며 잡는 그녀의 손은 미라처럼 가늘고 길었다. 그러나 여전히 큰 눈은 살아 만나는 사람의 웃음을 투영한다. 그녀를 만나 웃는 눈을 보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 같고 여성장애인들의 희망이 꽃으로 피는 것 같다.
그녀가 세상과 약속하는 이야기를 옮기고자 하는 까닭은 휠체어에 앉아 살기 때문에 땅과 들풀들의 생명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장향숙 17대 국회의원과 못 듣기에 좋은 화가가 되었다는 운보 김기창처럼, 척추장애로 인해 비로소 나누어 주는 능력이 생겼다는 겸손한 깨달음으로 30여 년간 현장에서 실천을 지속한 그녀의 삶이 또 다른 누군가의 중증장애인들에게 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장애로 인해 긍정과 도전보다는 자신만의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의식, 또는 사회에 발딛기를 두려워 가족과 함께 마음 아파하는 어린 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을, 비장애인들에게는 자기성찰이 되는 계기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도 보통의 장애인처럼 그런 무력감과 절망감의 수렁을 거쳐왔기에...
그녀가 직접 말한 그녀의 마음이야기를 옮겨보자.
"저는 군인장교이셨던 아버지,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가정에 유독 눈이 크고 예쁜 건강한 아이로 사랑속에 자랐습니다. 당시 결핵균 전염이 많아 다섯 살 때 척추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척추 대수술을 받고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던 것도 일찍 발견하고 전재산을 털어놓겠다며 부모님께서 치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나와 똑같은 질병으로 병원조차 가지 못한 장애인들이 많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시절 무력한 장애인인 내 모습이 서글펐고, 가족과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심신양면적으로 연약한 내 인생에 절망감도 느꼈습니다. 그러다 스무살 즈음, 깊은 절망의 한 가운데서 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장애인! 괜찮은 것이며 부끄러운 것도 무능력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비장애인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으며 인간으로 존중받음에 있고 진짜 멋진세상은 가장 연약한 사람이 행복할 때이기에 저는 가장 연약한 자의 편에 설 것입니다."
연약한 그녀는 이러한 연약한 자의 편에 쓰기 위해 조그마한 거주공간을 국회의원회관 근처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곳에 세를 얻어 살고 있다. 그리고 신영복님의 늘 처음처럼…이란 말처럼 마음이 힘든 사람을 대변하는 그녀의 의정활동은 지난 2년간 외로운 사투에 가까웠다. 사투를 벌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와 함께 토론하고 밥먹고 잠을 자던 그녀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의 보약을 주고 싶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작품을 하나 제작하여 보내주었다. 일하는 책상 뒤에 걸어놓고 항상 힘을 받는다고 그녀는 다음에 만났을때 활짝 웃었다.
그녀의 장애는 그녀에게 관변의 큰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와 싸우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의정활동과 인권운동활동이 무사히 잘 되기를 염원하기보다는 한 시대를 같이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친구의 마음으로 그녀의 건강이 염려된다. 마치 그녀가 나의 예술활동과 여러가지 인권활동보다 나의 심신상태를 염려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인류를 위해 써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다.
이로써 인간은 동물과 구분된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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