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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단비가 내렸다.

비로 말미암아 더 풍성해질 대지와 푸른 생명을 생각하니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반갑다.

 

어릴 적 꼭 이맘때, 모내기를 앞두고 물이 가득 담긴 논에는 우렁이가 많았다.

논두렁을 걷다 보면 밤송이만 한 우렁이가 보였다. 손을 뻗어 잡을만한 곳에 있는 우렁이들을 잡다 보면 이내 신발을 벗고는 논에 들어가게 된다.

우렁이 잡기에 열중하다 보면 종아리가 근질거릴 때가 있는데 거머리가 붙어 있으면 기겁을 해서 논을 뛰어다녔다. 친구 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머리를 손으로 잡아떼내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거머리라면 질색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렁이는 나를 유혹했고, 된장을 넣어 삶은 우렁이 속살을 파먹는 재미에 빠져 지내곤 했었다.

 

 

숲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나는 어린 시절 우렁이를 잡던 추억을 떠올렸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 하나 제대로 전수해 주지 못한 미안함, 그게 꼭 좋은 추억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까지도 어른들이 다 감당해 버려 너무 아이들을 유약하게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고, 비 온 뒤 만물이 더 풍성해지는 법인데 우리 아이들을 온실에서만 키우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뭇잎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파르르 떨며 춤을 춘다.

 

온 숲의 푸른 생명이 맨몸으로 빗방울을 맞이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내리는 만큼의 장단으로 춤을 춘다. 빗방울의 난타공연, 춤추는 나뭇잎을 한참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것과는 또 다른 나뭇잎들의 춤사위, 빗방울에 나뭇잎이 춤을 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비가 그치고 맞이한 아침, 아침 햇살이 쨍하니 비추고 푸른 하늘은 뭉게구름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산등성이 골짜기에는 구름이 하얗게 올라가고 있다. 구름에 가려진 숲, 거기에 사는 온갖 생명이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중인가 보다. 그렇게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가 보다.

 

늦은 밤까지 내렸던 비의 흔적이 아직 숲에는 그득하다.

 

비가 온 뒤에 이렇게 싱그러운 아침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증거를 보는 것 같았다.

 

 

한동안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절망하고 싶어 절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품으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희망을 품으라고, 소박하게 살아가라고, 남을 배려하라고, 작은 것이 아름다우며,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미사여구를 풀어놓는 사이 과연 내가 사는 세상 혹은 나의 삶은 더 좋아졌는지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숱하게 말했던 고운 단어들,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횡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 나는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때론 역겨워도 희망을 노래하지 않으면 무슨 노래를 부르겠는가 하고 말이다.

 

 

햇살이 비치는 아침 숲을 거닌다.

 

햇살 가득 품은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아직 잠에서 덜 깨 숙인 작은 풀꽃들을 바라본다. 비이슬을 머금은 것도 있고, 맘껏 목을 축였다고 제 몸에서 내어놓은 이슬을 맺은 풀들도 있다. 호흡할 때마다 싱그러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껴질 만큼의 맑은 공기가 공해에 찌들어 있는 나의 폐부를 위로한다.

 

빗방울에 춤을 추던 나뭇가지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바람에 흔들린다.

 

빗방울에 춤을 추던 나뭇잎들의 춤은 유치원 꼬마들의 귀여운 춤이었다면 싱그러운 아침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까지 흔들리며 추는 춤은 사랑하는 연인의 블루스를 닮았다.

 

참 싱그러운 아침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숲#자연#애기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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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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