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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을 기다려 박근혜 전 대표가 목도한 건 '친박'의 실체였다. 지난 21일 치러진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다. 이날 선거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 이후 첫 당내 '친이'-'친박'간 대결이었다.

 

여유로운 미소가 넘치던 박 전 대표의 얼굴이 굳어진 건 1차 투표 결과를 듣고부터였다. '황우여-최경환' 조가 얻은 표는 '47'. 그간 55명 남짓으로 여겨지던 '순수 친박'에도 못 미치는 수였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를 하겠다"는 안내에 박 전 대표는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뭔가를 적어 보기도 했다.

 

결선투표를 했지만, 결과는 '62(황-최) 대 95(안상수-김성조)'. 일부 친이표와 중립표가 섞였다고 보면, '62'는 당 의석 170명 중 '박근혜'란 이름 석 자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인 셈이다.

 

박근혜 전 대표, 최경환 출마에 '용인' 넘어 '격려'

 

여러 정황을 보건대, 박 전 대표는 이번 최 의원의 러닝메이트 출마를 꽤 적극적인 태도로 '지원'했다. 최 의원은 경선 하루 전 열린 후보 합동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가 자신에게 했다는 말을 이 같이 전했다.

 

"이왕 어렵게 결심한 거 열심히 잘하세요."

 

출마 '용인'을 넘어선 '격려' 표시였다. 게다가 최 의원은 이 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소개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말을 함부로 옮기는 걸 쉽사리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최 의원이 그의 말을 전했을 때는 최소한 박 전 대표의 지지 의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박 전 대표가 일찌감치 경선장을 지키고 앉아 있었던 것도 '무언의 선거운동'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경선장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자신을 찾아오는 의원들과 일일이 반갑게 악수했다. 경선 전 박 전 대표가 투표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의 참석만으로도 분위기가 쏠릴 것"이란 얘기까지 나왔던 터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친박 진영은 겉으론 "이번 경선은 별 의미가 없다"고 자위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한 초선의원은 "이렇게까지 (격차가 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은 의원도 있다.

 

"그간 '과대포장' 돼온 친박의 실체 드러난 것"

 

친박 진영의 한 관계자는 "1차 득표는 순수 '친박', 결선 득표는 '월박'이니 '주이야박'이니 '복박'이니 하는 '범 친박'을 모두 합한 수로 볼 수 있다"며 "그간 과대포장 됐던 친박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친이나 중립 중에서도 처음부터 '황·최' 조를 찍은 의원들이 있다"며 "그렇다면 친박 숫자가 47표보다도 못하다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친박 내 '이탈표'도 참패의 한 원인으로 진단된다. 일부 초선들은 박 전 대표의 '무언의 의사표시'를 헷갈려했다.

 

한 의원은 "친이는 '표 단속'을 철저하게 했지만 우리는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제멋대로 '자유투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투표하기에 앞서 박 전 대표의 의중은 무엇일까 해석이 분분했고 나도 고민이 됐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캠프에서 일해본 인사들은 "박 전 대표는 절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지시하는 법이 없다. '내가 일일이 말해야 아나요'하는 식"이라고 설명한다. 주위에서 알아서 자신의 본뜻을 헤아려 행동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박근혜식 정치'의 한계... 초선 "박 전 대표 의중 무얼까 고민"

 

이는 '박근혜식 정치'의 한계이기도 하다. 아직도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에는 강력히 반대하고, '최경환 정책위의장'은 '지원'한 박 전 대표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일부 중진들은 그런 박 전 대표에 불만을 품고 있고 이는 친박 진영으로선 '내상'이나 다름없다. 박 전 대표를 향한 이런 물음표가 늘어났다간 언젠가는 결속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친박 일각에선 지난 친박 원내대표 반대 사태로 박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 사이에 관계가 소원해진 점도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본다. 김 의원은 경선 하루 전인 20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지난 18일 터키에서 돌아온 지 이틀만에 일본행을 한 걸 보면, 그의 심중이 아직도 편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당분간은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와 거리를 두리란 관측이다.

 

한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가장 부족한 게 (계파 의원들과의) 스킨십인데 일일이 의원들을 챙기면서 그 빈자리를 메워온 게 바로 김 의원"이라며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경선에서 김 의원이 나서서 내부 단속만 했더라도 '대패'는 안 했으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도왔던 한 인사는 "이제까지는 박 전 대표의 (무언의 정치) 스타일이 먹혀왔으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이 당의 비주류가 된 이상 현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본 건 자신의 정치 스타일의 한계일는지 모른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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