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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와 난 같은 곳에서 일했었다. 스키장 레스토랑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핫쵸코 등의 음료와 피자 같은 걸 팔았던 곳. 점심 때만 되면 미친 듯이 외국인이 몰려오는 가게였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함께 했던 동료.  게다가 스키장 오픈 전부터 함께 했던 초기 멤버 4명 중 한 명 이기도 하다. 함께 했던 기간도 길었고 일하는 곳도 같았고 기숙사에서도 서로의 방을 오가며 거의 떨어져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런 사이였음에도 새삼스럽게 니세코에 대해 물어보는 게 쑥스러웠지만 아키는 뭐든지 돕겠다며 나서주었다. 역시나 아키에게도 니세코는 특별하기 때문이라며.(기사 중 (    )속의 말은 글 쓴 본인의 설명입니다.)

 


니세코에 오기 전의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자기소개라고 생각해도 좋고.

 

학교 다닐 땐 진짜 평범한 아이였어. 노는 것, 쇼핑, 음악, 노래방, 연애, 알바, 부활동 등등 뭐든지 단기간에 그만두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 남자친구도 알바도 기본은 3년~하하하

바꿔 말하면 모험을 하지 못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땐 너무 고민해서 결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그래 놓고도 정작 행동에 못 옮길 때도 있고. 아마도 신중파인가 봐.

공부는 영어에만 흥미가 있어서 고등학교도 외국어고등학교 영어 전공으로 들어갔고 장래희망은 영어를 활용해서 일을 하는 거였어.

 

하지만 더 이상 공부하기 싫어져서 취미였던 제과제빵 쪽으로 진로를 정했어. 하하하

19살에 양과자전문학교 졸업. 양과자공장에 취직. 그리고 5년 반 근무 24살에 퇴사. 그만 둔 이유? 약골이 되어서??? 육체피로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폐렴에 걸리기도 했고 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로 변해 버렸어. 하하하 그리고 일에 있어서 더 이상의 목표를 잃어버렸고 한계를 느낀 거지.

 

야마고모리(山篭り)

한 단어로 번역하려니 딱 떨어지는 말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했다. 직역하면 "산에 처박힘, 들어박힘"

 

스키장이 오픈해서 시즌이 끝날 때 까지의 기간동안 스키장에서 일하는 걸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일하는 기간과 일하는 곳은 개인차가 있다. 정식용어인지 알 길도 없고 일하는 곳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으나 한 시즌을 스키장에서 일하며 기숙사에서 살며 회사에서 지급하는 리프트권으로 마음껏 스키, 스노보드를 타는 것을 함축한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입도 생기고 해서 회사 선배랑 20살에 이와테현의 앗삐 고원에서 스노보드 데뷔를 하게 되었지!! 그러고는 매년 4번 정도 갔었나? 스노보드 너무 재미있었어.  한번쯤은 야마고모리 해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은 했었는데….
 

일, 환경, 생활, 남자친구......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가 안 나서 난 할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었어.

 

그러던 중 5년 사귀던 남자친구랑 결혼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아??? 라며 매일매일 고민하게 되었어….

결혼이야기가 계기가 되어서 인생은 한번 뿐인데 하고 싶은 거 하자고 맘먹었지. 그게 바로 야마고모리였어.

 

남자친구는 반대했고 이대로 밀어붙이면 헤어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었어. 역시 너무 하고 싶었었나 봐. 하하하.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리지 않으면 행동으로 못 옮기나 봐. 난. 그렇게 남자친구와도 헤어졌고 직장도 그만두고 2개월 동안 백수였습니다. 니세코 오기 전까지.

 

니세코를 선택한 이유? 왜 니세코?

 

직장생활 할 땐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휴가도 못 받고, 홋카이도에서 스노보드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출발점인 만큼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하자라고 생각했어.  고민고민해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까 쉽게 도쿄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거든. 그래서 머---언 홋카이도로 정했지.

 

그리고 홋카이도 중에서도 니세코로 결정한 이유는......엄마가 찾아 줬어. 하하하하

회사 그만 두고 한달 반.....전혀 일을 찾지 않는 날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줬어. 하하하

근데 나도 홋카이도에 있는 스키장 잘 모르기도 하고 토큐(東急)가 큰 회사이기도 해서 일단 이력서를 보내봤어. 하하하하 그랬더니 OK! 이런 단순한 이유였어.

 

요테이잔(羊蹄山)
니세코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상징적인 산. 모양이 후지산이랑 닮아서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산엔 스키장은 없다. 그래서 아키가 처음에 요테이잔을 보고 저기서 일하는구나 라고 했던 생각이 어림도 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실제로 니세코 와서 요테이잔(羊蹄山) 보고 감동해서 울 뻔했어.  
 

요테이잔 스키장에서, 내가 저 산에서 일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어. 하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싶지만. 하하하

 

 니세코에서 뭐가 그렇게 즐거웠어?

 

스노보드. 하하하. 뭐 그렇게까지 타진 않았지만.....하하하하

하지만 다시 한번 실감했어. 스노보드가 즐겁다는 걸. 하하하

그리고 친구와 함께 했던 모든 것, 그래, 저----------언부!

 

스노보드는 물론이고 홋카이도 관광, 밥 먹고 이벤트(스키장 주변에 바가 많이 있고 그 곳에선 특히 주말에 이벤트가 많았다)에 가고 기숙사에서 수다 떨고…하하하

 

일도 다같이 처음 하는 일이니까 일하기 편했지. 눈 돌아갈 정도로 너무 바쁘니까 다들 움직임이 이상해 지는 거야. 그런 것도 너무 재밌었어. 하하하하

 

추운데도, 눈이 들어오는데도, 덥다면서 창문 활짝 열고서 폴로셔츠(우리가 일했던 카페의 유니폼이 반팔 폴로셔츠였다) 한장만 입고 일했던 것. 하하하


GP

그녀가 닮은 일본 캐릭터 "가챠삥"의 줄임말, GP. 카페멤버 5명 중 한 명. 그녀는 야마고모리의 달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여러 산을 돌아 다녔다. 니세코도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라 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냥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녀의 매력.....

고글 끼고서 양파 썰기도 하고.

그리고 GP가 젤 웃겼어! 하하하

그리고 너의 일본어가 점점 늘어가는 게 느껴지는 것 하하하

즐거웠던 일1위는 정할 수가 없어.

다같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

 

여름이랑 2년째 겨울까지 니세코에서 지냈는데 어땠어?

(아키는 첫 니세코 야마고모리를 끝내고 그대로 여름에도 남아서 같은 곳에서 일을 했고 또 그대로 남아 겨울까지 일을 했다. 1년 반을 니세코에서 보낸 셈.)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낀 해였어. 어쩔 수 없이 작년(니세코에서 지낸 첫 겨울)과 비교하게 되더라구.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니까 완전 똑 같은 즐거움은 얻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야.

 

그리고 돈을 모으고 싶었기 때문에 한번도 이벤트에 가지 않았어. 그게 견디기 힘들었어.

진짜 애들이랑 같이 술도 마시고 놀고 싶었었는데........  그리고 연애. 이건 첫 번째 겨울부터 그랬던 거지만..... 난 연애를 안 하고 있으면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어. 마미(아키와 니세코에서 2년째 함께 한 친구)에게서 이런 말도 들었어. "아키는 남자가 없으면 말야 안 되겠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하하

 

 니세코에서 지낸 날들로 인생이 변했다?

 

응, 변했어. 180도 변했어. 뭐가 변했냐고 물으면.......뭐지? 뭘까? 하하하

인생관?! 이런 생활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구나!

일은 대충대충 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놀면서 살아갈 수 있구나.

단, 저축은 할 수 없지. 지금이 즐겁다면 그걸로 됐어 식으로 생활이 가능하구나~라고.

난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몸이 약해질 정도로 일했었는데.......

 

이런 생활이라는 게!!!!!!!!!!!!!!!!가능해?!!!! 이런 생각이 들었어. 하하하하

진짜 깜짝 놀랐어.

그런 생활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부정도 하지 않아.

사람들 각자 생활방식, 라이프 스타일, 감정을 다루는 방법, 돈을 쓰는 방식이 다르구나~라고 처음으로 깨달았어. 좋은 경험이었어. 생각하는 방식이나 시야가 넓어졌거든.

그리고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겼어. 나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제부터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

 

 이제 니세코 생활을 끝내고 나서 아키의 계획은?

 

호주 워킹 홀리데이!!!!!

일단은 1년, 열심히 더 노력해서 2년!!!

지금 이 일로 머릿속이 꽉 차있어! 정말로!!!!

그래서 지금은 남자친구는 안 만들겁니다!!

하지만 가볍게 만날 사람이랑 놀겠습니당. 하하하하

 

난 니세코에서 너나 사오쨩, 마미, 밋쨩, 미키, 아이코상(니세코에서 만난 호주나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경험이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워킹 홀리데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

 

유럽여행(첫 니세코 야마고모리가 끝나고 니세코에서 만난 친구들과 거의 2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었다.)에서 내 영어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영어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고.

 

결국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영어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호주에 다녀오겠습니다. 이번 결단은 니세코에 가겠다 맘먹었을 때보다 빨리 결정했어. 하하하하

 

"니세코에서의 만남은 인생을 바꾸고 나 자신을 바꿨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워킹 홀리데이에서 얻고자 하는 건 뭐야?

 

뭘까.....정말 정말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워킹 홀리데이라는 게 여행이랑은 다르게 생활을 하는거니까. 얻고자 하는 것?...........

음........ 멋진 풍경을 보는 것도 그렇고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무엇보다도, 역시~~~ "나에게 큰 영향을 줄 충격적인 만남!" 여자든 남자든. 이건 말야, 니세코에서도 생각했었어. 하하하하 친구가 소중하다는 걸, 니세코에서 배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이런 생활이 불안하진 않아?

주변의 친구들 보면 좀 다르잖아. 불안해질 땐 그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해?

 

이번 니세코 생활이 끝나고 도쿄로 돌아와서 예전 직장친구들이나 착실하게 일하고 있는 동창들을 만나는 일이 많았었어. 그럼 역시 다들 이런저런 스트레스나 인간관계, 귀찮은 일들에 휘둘리면서도 열심히 매일매일 일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이제 슬슬 일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난 니세코 가기 전까지 거의 필사적으로 일했고 몸이 약해졌었고 놀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했었잖아. 그 때의 저축도 있고 말야. 나에게 있어서 순서가 거꾸로 된 거지만 지금이 대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 이제 겨우 자유시간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자유라 해도 빈둥빈둥 여유 부리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마음은 없으니까. 내 안에서 시기는 정해뒀어. 그 전에 돈......이 없어질 거 같지만. 하하하하

 

그래서 다들 일하고 있다고 해서 조급하다거나 불안하거나 하진 않아. 그래도 100% 불안하지 않다 라고 는 말하긴 어렵지만. 이런 생활을 하면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건 아마도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일거야. 다음 하고 싶은 일은 뭐일까 찾아야 할 때.

난 워킹 홀리데이라는 목표가 생겼으니까 지금은 불안하지 않아.

 

하지만 워킹 홀리데이가 끝나고 나면 불안해질지도 몰라. "무엇을 얻고, 과연 그 경험을 살린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건데. 뭐, 그 때가 안 되어보면 모르는 일이니까 불안해지지 않게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싶어. 질문에 대답이 된 것 같진 않네. 미안!

 

  너의 꿈은 뭐야?

 

음..........이 나이에 꿈에 대한 질문을 받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하하하하

고민되네.

 

"바나나, 쿠로미츠유키미다이후쿠(찰떡아이스 같은 아이스크림, 특히 이 쿠로미츠머시기는 기간 한정품이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네요.), 카레, 야키소바, 낫토, 생햄, 미스터 도넛츠의 바닐라 쉐이크를 마음껏 먹고싶어!!!" 하하하하

 

그리고 현실적인 꿈은 말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고 싶어"

이거, 최근의 내 꿈인 것 같애.

연애의 시작이 거의 내가 먼저가 아니라서 말야......

 

5월 19일 호주로 떠났던 아키와 며칠전 우연히 MSN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집에 자기빼고 나머진 다 한국인이라며 내게 즐겁게 얘기한다. 전혀 주눅들거나 하지 않는다고. 니세코에서 나를 비롯한 다른 한국인과 친구가 되었기에 가능한 거라며, 또 한번 니세코 예찬론을 펼친다.

 

나와 같은 니세코 중독자, 아키. 호주에서 멋진 만남, 아니 충격적인 만남을 통해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가 된다.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내가 너무 고마웠어. 2년후 너의 모습 기대할게.


태그:#니세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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