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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럴 수가

아, 이리 참담한 일이

오늘 우리 앞에 일어날 수 있나

대한민국 검찰의 창끝 앞에

백척간두의 심정으로

홀로 서시다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당신의 그 마지막 유언 앞에

우리는 그저 황망할 뿐

그저 말문이 탁탁 막히는데

애끓은 가슴은 피울음 되어 소용돌이치는데

저리 서럽게 들풀 한 조각도 나부껴

너도 나도 저 산하의 땅거죽도

지금 저리 황망하게 미어지고 있는데

여기 악다구니 세상 속에 서 있는 우린

이제 누굴 믿고, 누굴 의지가지하며

살아, 살아가라는

그 참혹한 말씀인가요.

 

1988년 5공 청문회 때

광주시민의 마음을 그토록 구구절절하게

사자후 같은 올곧은 목청으로

그날의 무등산과 영산강 한 자락을

한없는 사랑으로 포옹해 주시던 분이

저 악마와도 같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온갖 바보소리 다 들어가며

연거푸 낙선의 길을 일부러 선택하신 분

그 활화산 같은 용기와 헌신 끝에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날

그 순간, 우리는 땅의 뜻이 사무쳐

하늘의 뜻으로 현현하는 그 순간을 만끽하고자

그날 우리들은 모두 광화문으로 혹은

이 산하 어디 광장으로 휘달려가

환호의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어대며

그 누구라도 얼싸안은 그날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데……

 

2009년 5월 23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시고

당신께서 써내려간 그 형형한 눈빛의 말씀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던,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던,

너무 슬퍼하지 마라던,

미안해하지도 마라던,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그리하여 '운명'이라는 두 글자 속에

감추어진 놀라운 웅변과 그 진실!

 

아, 이럴 수가 있나요

아, 이걸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막막하네요, 그 누구보다도 자존과 명예를

알토란처럼 소중히 여기시며

오월 광주의 아들로 사셨던 그분께서

기어이 그 오월의 모란꽃처럼

그 눈부시도록 참혹한, 오월 꽃대궁 속으로

영영 눈을 감으셨다니,

아, 이럴 수가

아, 이리 참담한 일이

우리는 그저 황망할 뿐

그저, 말문이 탁탁 막힐 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할 뿐,

아, 우리들의 노무현 대통령이여…

 

- 이승철(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아, 이럴 수가 아, 이리 참담한 일이―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추모시"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그것도 고향 봉화산에서 등산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은 물론 문화예술계에서도 충격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진보문화예술단체인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작가회의 집행부와 회원들은 너무나 황망한 소식에 아연실색하는 모습이다.

 

한국작가회의 고문을 맡고 있는 박아무개(75) 선생은 24일 "죽은 권력에 대한 검찰의 지나친 압박수사로 결국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며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말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TV에서 마구 떠들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이승철(51)) 시인은 24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이 안 나왔는데, 이번 소식을 TV를 통해 들으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은 것처럼 엉엉 울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검찰의 지나친 편파수사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이명박 정권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행보를 같이 했던 언론인 윤재걸(62) 시인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정국이 회오리칠 수도 있다. 대북관계도 그렇고,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노사모나 슬퍼하는 국민들이 어떻게 나올지 좀더 신중하게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시대 시인들 회장 김창규(55) 시인은 "세상에, 요즈음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인가"라며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미 도덕성을 상실한 채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엄중한 레드카드이자 양극화에 허덕이는 국민들 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쥐어주는 거대한 촛불"이라고 못박았다.

 

분단과통일시 공동대표 이적(52) 시인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TV를 보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마누라와 같이 펑펑 울었다"며 "검찰이 아무리 날선 수사를 해도 끝까지 살아 남아 우리 시대 권력의 최종 감시자가 되어야 할 분이었다. 오죽했으면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겠느냐"고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대한민국 검찰, 깊은 성찰과 참회의 마음 가져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따른 문화예술계의 성명과 추모시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문학평화포럼(명예회장 고은, 회장 김영현)과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는 각각 23일(토)과 25일(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애도 성명을 내고 "참으로 비극입니다",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비통함을 가눌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23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애도 성명'을 내고 "이 전무후무한 서거 앞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며 "참으로 비극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믿기지 않은, 이 전무후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우리는 깊은 슬픔과 참혹한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고 밝혔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화해와 민족통일의 길목에서 최선을 다해 국가 지도자로서 헌신하신 분"이라며 "무엇보다도 이 나라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들을 위해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원칙과 철학을 갖고 국정을 이끄신 분으로 우리 문학예술인들은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이 단체는 또 "대통령 재임기간 중 이 나라 문화발전을 위해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신 분"이라며 "온 국민과 더불어 다시 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추모와 한없는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검찰은 깊은 성찰과 참회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고통', 산 자들의 새로운 극복과 실천의 출발점 되어야

 

"고인의 죽음에 직면한 우리들이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개인적 고통에 대한 처연한 공감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시대가 민주화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데서 나타나는 더 커다란 '고통'의 증대하는 구조적 압력에 대한 시대적인 공명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작가회의도 25일(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함'이란 성명을 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비통함을 가눌 수 없다. 고인은 서거 직전 절명시(絶命詩)를 연상케 하는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고백하는 한편,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날 "그가 반복하여 진술한 '고통'은 한 자연인의 것이자 지난 민주화의 도정에 뜨겁게 동참했던 공인으로서의 열망이 시대적 한계 속에서 절망의 어조로 파열되어 나타난 고백일 것"이라며 "하지만 작가들은 '고통'을 '운명'으로 쉽사리 수락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적었다.

 

이 단체는 또 "고인이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피력한 삶의 난경(難境)은 비단 고인의 것일 뿐만 아니라, 붕괴 직전의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과 비인간적인 현실에 대한 우리들 작가 모두의 가감 없는 내면풍경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이어 "이 정부 들어 분명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퇴행과 인간다운 품위와 정의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자본만능의 산업화 논리의 전면화, 한반도에서의 냉전적 갈등의 고조 등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우리 작가들로 하여금 오히려 참다운 민주주의와 인간해방의 가치에 대해 '고통'의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금 내밀하게 숙고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단체는 끝으로 "우리는 고인의 삶과 죽음이 지난 민주화의 도정에 대한 상징적 마디를 이루면서도, 증대하고 있는 현실적 '고통'에 대한 산 자들의 새로운 극복과 실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엄숙하게 인식한다"며 "이는 단말마의 어조로 쓰여지고 있는 이 시대의 숱한 절명시(絶命詩)들과 그 처절한 '고통'의 언어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필사적으로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의 서거는 더욱 안타까운 일이며 국민들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

 

한국문학평화포럼, 한국작가회의, 민족건축인협회, 민족굿위원회, 민족극운동협회, 민족미술인협회, 민족사진가협회, 민족음악인협회, 영화위원회, 춤예술연대, 민족서예인협회 등을 아우르고 있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 김용태, 이하 민예총)도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합니다'라는 애도 성명을 냈다.

 

민예총은 이날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민예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바이다"라고 밝혔다.

 

민예총은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 시절 인권 수호를 위해 싸웠으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10.4선언을 이끌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해오셨다"며 "그런 점에서 고인의 서거는 더욱 안타까운 일이며 국민들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썼다.

 

이 단체는 끝으로 "민예총은 다시 한번 이번 비극을 안타깝고 슬프게 생각하며,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극'이라 표현했다. 민예총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보문화예술인 모두의 애도 성명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진보적 성향을 띤 문화예술계가 자책과 반성에 휩싸였다. 이들은 앞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릴레이 추모시 언론 게재, 릴레이 추모글 홈피 게재 등 다양한 작품 게재와 추모행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부디 그 불꽃이 한순간 타오르고 마는 행사용 촛불이 되지 않기를 빈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누워 있는 마애불, #봉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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