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벼슬을 닮아, 새벽이 가장 빨리 온다 하여, 상계봉상계봉은 이 산 정상 형상이 마치 닭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상계봉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일설로는 봉우리 중 가장 높이 솟아 새벽이 다른 곳보다 빨리 온다고 하여 '닭계'자를 붙였다고도 한다. 금정산의 주봉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 제 2망루에서 서쪽방향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제1망루 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상계봉이다.
상계봉(640미터) 은 금정산 남부를 대표하는 봉우리로 부산시민들을 비롯해 인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금정산 상계봉 가는 길도 갈래갈래 많기도 하지만, 오늘은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로 들머리 삼아 오를 작정이다. 토요일 오후시간을 알뜰히 쓰는 데는 금정산만한 데도 드물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다르다.
우리 앞에 어떤 길이 놓여 있을지, 우리가 택한 그 길이 만족스러울지 아닌지는 가 보아야만 알 수 있으리. 흐린 하늘이 하~수상타. 비가 올까?! 인터넷에서 기상청을 검색해 날씨를 알아보니 흐린 날이라 한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딘가.
일단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기대가 된다. 늦게 가도 좋고, 일찍 가도 좋은 산, 길이 거미줄처럼 나 있어 접근하기 쉬운데다 언제든지 찾아가도 실망시키지 않는 산, 그 품 또한 넉넉하여 새로운 모습 보여주며 반기는 산, 발길 닿기 좋고 문턱 낮고 반가운 산, 금정산만한 산이 있으랴.
상계봉 가는 길, 맑고 힘찬 계곡물소리와 동행하다
오후 3시 25분, 부산 만덕동 상암초등학교 앞에 도착. 날은 여전히 흐리다. 학교 바로 위로 금정산 상계봉이 조망된다. 학교 옆으로 난 흙길 따라 등산로로 진입하니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하얀 찔레꽃 향기와 콸콸 힘차게 쏟아지는 맑은 계곡물소리다. 등산로 들머리서부터 이 맑고 힘찬 계곡물 소리는 계속 옆구리에 따라붙어 등산길이 즐겁다.
계곡에서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아이, 어른들 목소리가 숲이 가린 계곡물소리와 어울려 이따금 들려온다. 숲에 들어서자 더욱 짙어진 초록 숲에서 꽃향기와 풀 내음 진동한다. 맑은 계곡 물소리마저 어우러져 흐린 날에도 마음 밝게 오른다. 얼마쯤 갔을까. 좁은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니 체육시설이 보이고 그 위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상계봉과 석굴사, 상참초등학교로 갈라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상계봉 쪽으로 간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다시 갈림길이다. 금정산은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길도 많고 갈림길도 많다. 선택의 기회가 많은 것은 때때로 혼란을 빚기도 한다. 이 길에서 화명동쪽으로 가는 길도 있다. 상계봉 표시된 길로 간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다시 갈림길 앞에 선다. 아하~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화명동, 상계봉 방향인 왼쪽, 천룡사지와 상계봉 쪽인 오른쪽 두 갈래길 앞에서 우린 잠시 망설인다. 목적지야 같지만 가는 길에 따라 오르는 길의 표정도 다르고 험한지 완만한지, 빠른 길인지 더딘 길인지 결정된다.
다행히 하산해 내려오는 사람 있어 길을 묻는다. 오른쪽 상계봉과 천룡사지 쪽으로 가는 길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오르기 쉽고, 왼쪽은 빠른 길이지만 굉장히 힘든 길이라 한다. 우린 조금 돌아가지만 쉬운 길로 가기로 한다. 여전히 계곡을 끼고 걷는 길, 물소리 환해 흐린 날이어도, 땀이 맺혀도 싱그러운 숲과 계곡 물소리 좋아 마음 밝다.
환한 물소리 들으며 가는 등산로는 엊그제 비가 와서 길은 꿉꿉하고 풀냄새, 짙은 찔레꽃 향기와 여러 가지 새소리 들려와 정겹다. 우리 두 사람만 늦은 시간에 등반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하산하는 사람들 가끔 만난다. 흐린 하늘이 숲에 빛을 던져주진 않지만 계속 우리를 따라 벗하는 계곡물소리 맑아 짙어져가는 초록 숲과 어우러져 빛처럼 밝게 느껴진다.
어느새 산딸기 계절인가보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 영글어 있다. 후덥지근한 흐린 날, 한참 걷다보니 땀으로 온 몸이 젖는다. 계곡 물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물소리 끊어지자 하악~하악~숨이 턱에 닿는 소리조차 크게 들리고 숲에서 우는 새소리 귀에 가까이 와 닿는다. 청룡사약수터 바로 위 상계봉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좁고 가파른 숲길이 이어지고 한참을 올라보니 안부가 나타난다. 하늘이 툭~트인다. 등 뒤로 돌아보니 산성길 한눈에 보인다. 안부를 지나 상계봉 방향인 왼쪽으로 몸을 틀어 계속 올라간다. 울창한 숲을 지나 하늘 툭 트인 길 가니 좋건만 상계봉 가는 길은 좁은 숲길로 이어지다가 바위군을 만난다.
상계봉 정상에 올라 망중한
좁다란 길 따라 가면서 상계봉 정상일대에 솟은 암릉구간을 바라본다. 상계봉으로 가면 길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제1망루에 가 보고 다시 뒤돌아서 목적지인 상계봉으로 간다. 크고 작은 암봉들로 이루어진 상계봉 바위들, 가장 높은 바위 벼랑 끝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올라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모습 보인다.
흐린 하늘 아래 멀리 만덕동 일대와 쇠미산 백양산 등이 조망된다. 반대편으로는 낙동강지류와 김해평야가 흐리게 보인다. 우리가 처음 산 들머리에서 만났던 두 청년도 낙동강 쪽을 내려다보며 높은 바위에 올라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하산한다. 등산길도 하산 길도 낯선 길이니 하산 길에 어둠이 찾아올까 마음이 바빠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안부에 도착, 5시 10분이다. 하산 길은 온 길을 버리고 빙 둘러가되 쉬운 길로 간다. 여백이 있고 넓어서 사람들 발길이 잦은 길로 택한다. 넓고 호젓한 길, 둘이서 손잡고 걷기 좋은 고요한 숲길 따라 손잡고 걷는다. 5시 20분, 수박샘에 도착, 물 한 병 받아서 간다. 우리는 늦었다고 하산을 서둘렀건만 지금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우리는 서로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주본다. 남편 하는 말, "봐~지금 오는 사람도 있는데 괜히!" 넓은 길, 조용한 숲길을 걷노라니 뻐꾸기 소리, 꿩이 가끔 푸드덕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는 소리, 작은 산새들 지저귐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5월의 저녁 숲 향기 그윽하다. 아름다운 길이다. 넓은 길은 넓은 길대로, 좁은 길은 또 좁은 길대로 ...
발길 닿기 좋고, 문턱 낮아... 금정산만한 곳 있으랴
거미줄처럼 나 있는 숲길 표정은 다양도 하지만 그 길 모두 호젓하고 정겹고 다정하고 아름답다. 길은 가만가만히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남문에 도착(5:30),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 등산하는 사람도 보이고 남문까지 산책하듯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도 보인다. 남문 바로 아래쪽에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인가.
등산복 차림이 아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휴식한다. 잔뜩 흐렸던 하늘이 이제사 맑게 갠다. 남문에서 우린 남문마을 쪽으로 간다. 남문마을(5:45)은 음식점들만 여러 개 모여 있는 곳이다. 이쪽 길로 가는 것 역시 처음이다. 남문 마을 아래로 내려오는 길에 길 양쪽으로 온통 산딸기나무들이다. 아직 초록열매들이지만 얼마 안 있어 빨갛게 익겠다.
한참동안 산딸기 길이 계속된다. 우린 마치 두 사람만이 아는 새로운 비밀을 공유한 듯 즐거워한다. 산딸기가 익을 때쯤 다시 오자고 약속한다. 그땐 여동생들을 대동하고서 푸훗~. 보리수나무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젠 또 다시 계곡 물소리 우릴 반긴다. 힘차게 흘러가는 계곡물은 분명 아까 등산할 때 벗했던 그 계곡은 아니다.
5월의 짙은 초록 숲, 흰 꽃(아카시아꽃, 산딸기꽃, 이팝나무, 찔레꽃)들이 눈처럼 초록 숲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계곡 물소리 상쾌도 하다. 남문마을에서 한참 내려오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옆에 두고 계곡 내리막길로 간다. 넓고 호젓한 흙과 돌이 어우러진 길을 걷는다. 하산 길에도 계곡 물소리는 우리와 친구처럼 동행하고 있다.
더 힘차게 상쾌한 물소리를 내면서 동행한다. 넓은 길 따라 한참을 내려오다가 옆에 적당히 간격을 두고 걷던 계곡과 이제 맞닥뜨린다. 계곡물과 눈인사하며 걷는다. 향기 진동한다. 향기의 근원을 찾아 눈을 들어보지만 풀냄새, 꽃향기 등 여러 가지 향기 어우러져 그저 향기에 취해 걷는다. 계곡물은 콸콸~거침없이 바위를 넘고 어루만지며 모래 위, 자갈돌 위를 핥으며 부드럽고도 힘차게 흘러간다.
석골사 입구(6:20)에 도착한다.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계곡 물과도 갈라진다. 석골사 바로 밑에 있는 체육공원에 도착, 호젓한 숲길로 들어선다. 계곡물소리 끊어지고 좁은 오솔길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일명 '웰빙 산행로'이다. 좁은 흙길이 산허리를 따라 나 있다. 적당히 젖어 있는 흙길은 걷기에 편하다. 아름다운 길이다.
아름다운 산 길, 계곡과 함께 하산
오늘 만난 길 모두 아름답다. 6시 30분, 너덜지대를 만난다. 금정산에도 너덜지대가 있었던가. 하기야 북문 바로 밑으로 범어사까지 이어진 암괴류가 있긴 하다. 웰빙 산책로를 따라 한참 걷다보니 다시 계곡과 만난다. 물소리 환하게 귀에도 마음에도 밝게 퍼진다. 처음 등산할 때 만나 동행했던 그 계곡이다. 계곡물 건너 조금 더 내려가니 체육시설이 나온다. 6시 45분이다.
땀 흘려 걷다보니 등에 땀이 흥건하다. 처음 출발지인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 학교 뒤에 있는 쉼터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바로 앞에서 계곡 물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고개 들어 보니 우리가 올랐던 금정산 상계봉이 뿌옇게 보인다. 이제 주차장 도착, 다 왔다. 계곡물 소리 들으며 올랐던 금정산 상계봉, 계곡과 함께 하산했다.
오늘 만났던 산행 길, 새로 만났던 길은 모두 아름다웠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길과 모든 만남의 인연들도 오늘 만난 길처럼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상쾌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길과 내가 만난 사람들...모두...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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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봉가는 길에 벗하며 동행한 계곡... 금정산 상계봉 가고 오는 길에 동행한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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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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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수첩1.일시: 2009년 5월 23일(토).흐림2.산행기점: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상학초등학교 3.산행시간:3시간 30분4.진행:상학초등학교(오후3:25)-체육시설(3:40)-약수터(3:50)-청룡사지약수터(체육공원 4:20)-안부(4:30)-1망루(4:45)-상계봉정상(5:00)-하산-안부(5:10)-수박샘(5:20)-남문(5:30)-남문마을(5:45)-석굴사도로(6:20)-체육시설(6:25)-웰빙산행로-너덜지대(6:30)-체육시설(6:45)-상학초등학교(6:55)5. 특징: 금정산상게봉 정상에서 쇠미산, 백양산 등 조망 좋음. 곳곳에 약수터, 게곡물 많이 불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