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들은 '제 2의 촛불'을 걱정했다. 반면 진보신문들은 민주주의 완성과 지역주의 극복 등 고인이 남긴 꿈에 대한 논의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렇듯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대하는 30일자 보수·진보 신문들의 시각은 확연히 갈렸다.
먼저 각 신문들의 1면부터 표정이 달랐다. 또 영결식을 보도하는데 들인 신문의 면수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진보-보수신문들의 다른 표정들
우선 <조선>은 1면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소식과 함께 삼성 경영권 승계 무죄와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전했다. 이어 2면부터 6면까지 총 6개면을 할애해 영결식 관련 소식을 담았다.
<중앙>은 1면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서 내용을 인용한 제목에 시청 앞 서울광장에 운집한 추모객 전경 사진을 실었다. 보수신문 중 가장 많은 총 9개면을 털어 관련 소식을 전했다.
<동아>는 보수신문 중 가장 적은 5개면을 영결식 보도에 할애했다. 1면 사진도 서울광장에 운집한 추모객들 사진 대신 경찰의 통제 속에 영결식 장소였던 경복궁에서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택했다.
특히 보수 신문들은 영결식 보도에 이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 등 '북핵 위기'를 비중 있게 다뤘다.
반면 <한겨레>·<경향> 등 진보신문들은 보수신문의 2배의 지면을 할애해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을 보도했다.
우선 <한겨레>는 총 11개 면을 털어 영결식 소식을 전했다. 1면에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을 담은 사진에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렵니다"라는 헤드라인을 달았고 우측 하단에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배정 무죄 소식을 배치했다.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해 영결식을 보도한 언론은 16개면을 들인 <경향>이었다. <경향>은 1면을 추모객 수십만이 운집한 서울광장과 태평로 전경을 담은 사진만으로 채웠다. 추모의 의미를 담아 사진은 흑백으로 처리됐고 헤드라인은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였다.
특히 14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우리 사회에 남겨진 민주주의 완성·국민 통합이라는 과제에 대해 진단했다. 이어 15면에서는 추모열기의 의미와 남은 과제를 주제로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윤평중 한신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나눈 좌담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조선>·<중앙>, 민심수습과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촉구
각 신문의 사설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대하는 언론들의 태도의 차이가 더 확연히 드러났다. 먼저 보수신문들은 '국민장은 끝났다, 이젠 일상으로'를 외쳤다.
<동아>는 '7일간의 국민장은 끝났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국민장은 정부 수립 이후 마련된 13차례의 국민장 가운데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국민장에 소요된 정부 예산은 45억 원으로 추산되며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예산(3억3700만 원)과 비교하면 13배가 되는 액수"라며 "유족 측이 원한 것은 거의 반영됐다"고 먼저 지적했다.
이어 "'현 정권과 검찰, 일부 언론이 그를 죽였다'는 근거 없는 선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인이 봉하마을로 향한 뒤 일부 시위대는 서울시청 주변에 계속 남아 '제2의 촛불시위'로 이어가려는 행태를 보였다"며 "이번 국민장에는 나라 전체가 추모의 마음을 통해 국민적 화합을 도모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장을 이용해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편을 나누어 공격하는 것은 국가와 민생을 해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중앙>도 '슬픔과 원망 역사에 묻고 이젠 일상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슬픔과 아쉬움이 가셔지지 않았지만 이젠 역사 속에 묻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는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늘 뜨거웠던 6월, 올해엔 여느 해보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북한 핵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서로 원망하고 미워해선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힘들다. 슬픔과 함께 원망도 묻고 가자"고 했다.
이어 <중앙>은 정부와 여당의 각성과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도 촉구했다. 이 신문은 "집권여당은 추모 인파와 열기로 드러난 슬픔과 분노의 정치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 속에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깔려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권력이 지나치다보니 본인은 물론 친인척 비리까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릴 정도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도를 바꾸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도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과 민심 수습을 정부와 여당에 주문했다. <조선>은 '대통령 권력의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인사권만 해도 법률이 정한 몇몇 자리에 대해 국회의 동의 절차가 규정돼 있을 뿐 거의 대통령 뜻대로 할 수 있다. 검찰·국세청·경찰·국정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사정기관에도 대통령 뜻이 굴절없이 그대로 전달된다"며 "청와대 사정·민정 라인에 '정권 안에서 야당'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어야만 최소한의 견제 기능이라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라의 최고 사정기관인 검찰 역시 인사권을 지닌 대통령과 주변 실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있는 권력엔 약하고, 힘을 잃은 권력에만 가혹하다는 말을 들어왔다"며 "검찰 스스로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오명(汚名)을 떨쳐버리려면, 검찰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처받고 애통해하며 분노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며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이나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포용해야 하며 이 정권 출범 이래 따라다니면서 정권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온 '편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향>·<한겨레> "민주주의는 멀고 험해도 가야할 길"
진보신문들은 집권세력의 성찰을 촉구하면서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한반도 등 고인이 남긴 시대적 과제를 환기시켰다.
<경향>은 "다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는 고인의 뜻을 계승할 책무를 지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집권세력의 성찰이 필요하다. 그들의 눈에 서민이 있었던가, 그들의 가슴에 '나' 아닌 '너'가 있었던가, 그들의 귀에 민의 소리가 들렸던가.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서울광장도, 그들 마음의 광장도 더이상 닫혀선 안 된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정권 책임론도 가슴 터놓고 새겨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의 흉중을 읽어야 한다. 경찰력에 의존한 공안정치는 국민들의 분노만 돋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모의 물결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보 노무현'을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시키고, 애도와 분노를 승화시키는 일"이라며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한반도, 멀고 험해도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몸은 보냈어도, 당신의 꿈은 지키렵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권력이 온전히 국민을 섬기는 그런 세상, 이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며 "그(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권력은 사유화됐고, 국민을 억압하는 소수 집단의 몽둥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를 죽음에까지 몰아넣은 것은 바로 그 사유화한 권력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장례 기간 시민들이 그렇게도 가슴을 쳤던 것은 이런 그의 꿈이 외면당하고 배척당하는 데 일조한 것 아니냐는 자책과 무관하지 않다"며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꿈은 되살아나고, 그의 꿈은 바로 우리의 꿈이 되고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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