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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한국교육연구소장 등 대안교육 전문가와 참여정부 당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으로 일해왔던 이종태 박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열정으로 승화될 것'이라며 지난 일주일간의 소회를 편지글로 전했다.

 

이종태 박사는 지난 2003년 대선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 경기 중부지역 상임공동본부장,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과 교육 혁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으며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한국교육개발원(KEDI) 혁신담당관 등으로 활동했다.

 

특히 2007년 8월 4일 임기 3년의 제8대 청소년정책연구원장에 취임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2008년 4월 국책연구기관장에 대한 일괄 사표 요구에 "부당한 처사"라 반발하며 사표 제출을 거부하다가 전방위적 압력 끝에 결국 취임한지 9개월만인 2008년 4월 11일 물러났다.

 

이 박사는 노 전대통령이 서거하자 정부가 마련한 서울 역사박물관 분향소와 고향인 안양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마련한 안양역 광장의 분향소에서 상주역할을 하며 조문객들을 맞았으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안양시민추모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추모제 행사를 치렀다.

 

노 전 대통령 장례기간 중인 지난 28일과 떠나 보낸후 인 30일 두 차례 글을 써 그가 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양교육마을 홈페이지(http://www.yjt21.net/)에 글을 올린 이종태 박사는 1일 아침 전화통화에서 "장례를 치르고 난후 술로서 몸을 추스렸다"며 허탈해 했다.

 

노 대통령님 영전에(5월 28일)

 

하얗게 피어오르는 향불 뒤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대통령님 모습이 서럽습니다. 대통령님! 왜 거기 계신 겁니까? 지금 봉하 마을에 모내기가 한창인데 밀짚모자 쓰고 들에 나가 말추렴으로라도 거드셔야 할 때가 아닙니까?

 

대통령님, 보십시오.

홀연히 떠나신 당신의 빈자리를 온 국민이 눈물로 채우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착하디착한 국민들이 백리 천리 길을 마다않고 당신이 누워계신 봉하마을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역과 시청 앞에서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당신께 미안한 마음을 담은 국화꽃 한 송이를 드리려는 행렬이 잦아듭니다. 그뿐인가요, 전국 방방곡곡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그리고 인터넷과 신문, TV 화면을 보면서 고개 숙여 눈물을 뿌리는 분들의 수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당신의 삶, 특히 당신의 정치 여정은 파란만장한 아웃사이더의 그것이었습니다. 남부러운 변호사가 되고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앞장서다가 옥고를 치르셨고 청문회 스타로서 화려한 정치 입문을 하셨지만 만년 금배지가 보장된 3당합당 합류 대신 망국적 지역감정에 맞서는 정치적 험로를 택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택하신 험로는 신기하게도 더 큰 기회를 가져왔고 결국은 이 나라 최고의 권좌인 대통령에 오르셨습니다.

 

아, 그러나 당신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안주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서민이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 권력기관의 횡포가 없는 국가,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 동과 서가 하나가 되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세계에서 당당한 위세를 떨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셨습니다. 그러나 이 지당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은 수많은 기득권 장벽에 부딪쳤고 당신께서는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삼켜야 했습니다. 탄핵 사건은 그 과정에서 있었던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야겠지요.

 

 

한 줄기 바람으로 떠나신 대통령님께(30일)

2009년 5월 29일 6시 19분에서 9시 7분

온 국민의 오열 속에 당신은

한 줄기 바람으로

떠나셨습니다.

63년의 삶의 흔적을

한 줌의 재로 남기신 채로 …

 

서울광장

뙤약볕에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선 사람들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차마 당신을 보내지 못하고 마냥

당신 이름을

당신이 좋아하셨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당신이 누워계신 차 위로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또 날렸습니다.

당신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이명박을 향하여 삿대질하며

노무현을 살려내라고 아우성도 쳐보았습니다.

 

아,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빈 가슴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움을 털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할 수만 있었다면

당신을 다시 살리는 길이 있었다면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위험하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초개같이 던지려 했겠지요.

 

엊 저녁 자정

일주일 내내 불밝혔던 안양역전 분향소를 눈물로

거두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적지 않은 시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노사모들과 함께 당신이 생존에 좋아하셨던

'만남'을 목메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당신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술잔을 올렸습니다.

설움과 억울함과 분노에

참았던 울움이 복받쳤습니다.

모두 울었습니다.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노대통령님,

노짱님,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지만

당신은 가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큰 비석으로 남으셨습니다.

아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큰 뜻으로

자기 욕심을 버리고 바보처럼 살려는 착한 뜻으로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더 크게 살아나셨습니다.

 

한 줄기 바람으로 떠나신 당신, 하지만

그 바람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잇고 가슴을 울려

이 거짓과 배반과 삿된 욕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광풍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의 진솔한

그래서 위대한 꿈, 꿈들이

봉하에서 광화문까지

아니 부산에서 평양에 이르기까지

힘은 없지만 착하디 착한 사람들의 희망으로

열망으로 끝없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길고도 길었던 5년.

당신께서는 아쉬움이 참으로 많으셨겠지만, 그리고 당신께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도 작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께서 재임하셨던 지난 5년은 행복했고 자부심을 가질 만했습니다. 여러 대내외적 여건 때문에 경제적인 성과에 대한 체감도는 높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나 민주화, 청렴도 등은 크게 진전되었고 지역균형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정보화 기술의 국정 운영 적용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신 덕에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구현하신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 나열한 이러한 업적만으로도 당신은 훌륭한 대통령이셨습니다. 오죽하면 많은 시민들이 반복하여 당신을 '나의 유일한 대통령', '영원한 대통령'이라고 조문록에 썼겠습니까? 그러신 분이 청와대를 나와 고향 마을로 돌아가셨을 때 온 국민이 환호했습니다. 최고의 권좌에서 내려와 평범하고 소탈한 시골 농부가 된 당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봉하 마을에는 매일 수백 수천명씩 관광객이 드나들었지요. 지난 늦가을 그 틈에 끼어 대통령님을 뵈었을 때 행복해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유난히 학구적이셨던 당신께서는 식사 중에도 새로운 책과 이론을 말씀하시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방안들을 끊임없이 탐색하시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소박한 평화를 깨트렸습니까!

청천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어찌 당신께서 몽매에도 놓지 못하던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꿈과 열정을 봉하산 부엉이 바위 아래 산산이 흩어버릴 수밖에 없었단 말입니까?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아무리 돌려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삭일 수도 없습니다. 망연자실을 넘어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국민은 압니다. 권력의 끈을 다 놓고 평범한 서민으로 다시 돌아가 살고자 한 당신의 평화를 처참하게 짓밟은 자들이 누군가를…… 선의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거짓을 밥먹듯하는 악의 세력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너무도 왕성하게 존재합니다. 그들은 국민의 대다수인 힘없는 서민들의 간절하고 소박한 꿈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극소수인 자기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자원과 특권을 독점하려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소탈하지만 당당한 삶이 응어리진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어린 소녀들의 촛불조차 두려워 짓밟는 그들의 옹졸함과 막되먹음은 끝내 당신의 순수한 영혼과 육체를 더 이상 이 땅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아, 그러나 당신은 또 다시 위대했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듯, 당신의 처절한 산화는 슬픔과 분노 위로 온 국민의 가슴 속에 다시금 희망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옹졸한 권력에 의해 망가져가는 국가를 보면서 실의로 가득하던 국민들이 이제 손에 손 맞잡고 불의에 맞서려는 기운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가득한 당신을 향한 추모의 열기는 이제 당신이 그토록 염원했던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열정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이 도도한 물결은 누구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아니 사랑하는 노짱 형님!

 

역사박물관 분향소 상주석에서 맞은 한 아주머니의 흐느낌이 가슴을 저밉니다. '잘 지켜드리지 못해 참으로 죄송합니다.' 왜 진작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 더 지혜롭고도 적극적으로 처신하지 못했나 자책이 앞섭니다. 하지만, 당신이 남기신 말처럼 미안함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께서 이루고자 했던 뜻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당신의 환한 미소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태그:#안양, #이종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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