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가 영결식 이후에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만큼 서거의 충격과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인데 이번 추모열기의 숨은 공신은 불교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불교계 최대종단인 조계종 총무원은 서거 당일인 23일 총무원장 명의로 애도문을 내고 서울 조계사를 포함해 해인사·통도사·송광사·수덕사·월정사 등 주요 사찰 25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24일 오후부터는 100여 곳으로 늘렸다.
24일에는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이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 권양숙 여사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고 경남 합천 해인사 주지 선각스님 등 350여 명도 같은 날 봉하마을 빈소를 찾아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독경을 한 데 이어, 25일엔 양산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 등 250여 명이 뒤를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 26일에는 쌍계사, 27일엔 범어사 쪽 스님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태고종은 역시 "종단 소속 3천여 사찰에서 49일 동안 조석예불 시 고인의 명복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기도를 봉행토록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교계가 전 종단 차원에서 신속하게 움직인 덕분에 노 대통령의 서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들의 감정을 추스르게 만들었고 죽음의 의미를 격하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일부 언론의 보도에 제동을 걸었다.
일부에서는 불교계의 추모열기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불교계의 인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사찰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하며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선친 노판석 선생과 어머니 이순례 여사의 위패가 봉화산 정토원에 모셔져 있는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영결식이 열린 5월 29일 오후 4시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초재(初齋)를 봉행한 것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재를 올리고 마지막 재인 49재는 7월 10일에 봉행한다고 밝혔다.
죽음의 의미 격하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언론의 보도에 제동 건 불교계불교계의 추모열기에 비해 기독교와 천주교는 자살자에 대한 교리적 입장 등으로 대응이 늦은 편이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사학법 등 주요 사안마다 대규모 반대집회를 여는 등 대척관계에 있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5일 엄신형 회장과 총무 등 9명이 정부가 마련한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쳤다.
또한 서경석 목사가 대표로 있는 기독교사회책임은 23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용해 서로 비난하며 우리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힘들더라도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양비론적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진보측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경우는 내부논의 끝에 25일 권오성 총무와 각교단 임원진 40여 명이 직접 김해 봉하마을로 찾아가 고인을 추모했으며 권 총무는 지난 5월 29일 경복궁에서 정부가 주최한 영결식 때 기독교를 대표해 안식기도를 맡기도 했다.
천주교의 경우는 28일 새벽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봉하마을에서 추도미사를 봉헌한 후 당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사제단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형식의 미사를 개최했다. 이날 미사에서 김병상 몬시뇰(인천교구)은 "이번 미사는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집전했어야 했다"면서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추도미사를 집전했었다"며 현 천주교 지도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한편 천주교내 극우인사인 박홍 신부(전 서강대총장)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자기도 창피하고 답답하고 하니까 그 길을 선택한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사제단의 추도미사에 대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례를 받았지만 냉담자였기 때문에 자살했을 때 가톨릭 전통은 공개적으로 미사를 올리는 것을 금한다"면서 사제단의 추모미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천주교는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교들이 조문이나 분향에 참여하지 않아 전 국민적인 추모열기에도 불구하고 자살자에 대한 공식 추모를 반대하는 교리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천주교신자이면서 경남 민언련 이사를 맡고 있는 김유철씨는 가톨릭 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과의 인터뷰에서 박홍 신부와 주교들의 태도에 대해 "이미 1983년에 개정된 교회법에는 자살자에 대한 미사 금지 항목이 없어진 점"을 지적하며 "교회법은 나쁜 사람을 격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하느님의 애덕을 적절히 펼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세상은 교회를 위해 울어주었으나, 주교로 대표되는 한국천주교회는 온 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세상을 위해 울어줄 마음이 없는 것 같다"면서 천주교회의 경직된 태도를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