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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연행되고 있는 장면이다. 인도에서 잡혔는데 도로에 나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 2008년 2월 7일 집회 연행 장면 필자가 연행되고 있는 장면이다. 인도에서 잡혔는데 도로에 나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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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면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분 좋게 술 취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민아 늦은 밤인데 뭐하냐? 엄마, 아빠 또 술 한 잔 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 너랑도 한 잔 해야 할 텐데 집에 빨리 와!"
"지금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있어요. 조금 있다 자취방에 들어 갈 거예요."
"그래 천천히 놀다가 들어가고 조만간 집에 꼭 와라!"
"네. 조만간 갈게요. 안 그래도 여름옷이 없어서 더워 죽겠어요."

일반교통방해 죄로 150만원의 약식명령 청구를 한 통지서이다.
▲ 검찰에서 온 약식명령 청구 통지서 일반교통방해 죄로 150만원의 약식명령 청구를 한 통지서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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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계속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0분 뒤쯤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또 집에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너 지금 어디고? 집에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야?"
"지금 버스 탔다. 근데 갑자기 또 전화는 왜 했어요?"
"검찰에서 너한테 또 우편물 날라왔다. 약식명령 청구 통지라고 적혀 있는데 이거 뭐냐? 너 또 집회 나갔다가 불법행위 한 거니?"
"지난 번 용산참사 관련해서 연행된 사건 같은데..."
"허허 참. 매번 이렇게 엄마 마음 안 좋게 할래?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왔더니 너 때매 기분 다 잡쳤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시라 카이."
"허참. 아무튼 빨리 집에나 오기나 해라."

우리한테 손 벌릴 생각하지 말고 너 스스로 해결해라!

지난 2월 7일 서울에서 용산참가 추모 집회에 나갔다가 연행된 사건(사건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박정훈 기자의 '죄없는 대학생들 붙잡아서 '배후'대라고?' 참고)과 관련해서 검찰에서 약식명령 청구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온 것이다.

부모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에게 날아온 약식명령 청구 통지서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부모님이 사시는 김해 집으로 갔다. 내가 집에 간 날이 부모님이 등산을 하시는 날이라 재빠르게 통지서를 가로 채기 위해 일찍 집에 갔다. 하지만 통지서를 찾지 못했다. 어디에 꽁꽁 숨겨 두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모님 오시면 한바탕 할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하였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부모님은 집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들어오시며 나를 반갑게 반기셨다. 술 한 잔 하시고 들어오신 부모님에게 불쑥 통지서를 달라 하기 미안하여 적절한 기회를 기다렸다. 때마침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 먼저 잠이 드시는 틈을 타 어머니에게 통지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술기운이 싹 가신듯 나에게 통지서를 갔다 주셨다. 

"이제 어떻게 할거니? 니 인생에 오점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너 아무런 죄도 없는 거 엄마도 안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이 죄를 뒤집어 씌었다고 그 죄를 면해주는 세상이니? 결국 니 인생길이 막힐 뿐이야."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제 엄마 그만 괴롭혀라.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리한테 손 벌릴 생각하지 말고 너 스스로 해결해라!"
"당연하죠.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부모님과 크게 한바탕 할 줄 알았는데 쉽게 넘어 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다음날 가족 모두 영화를 보러 갔다. 몸보신 하라면서 삼계탕을 사주시기도 하면서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매번 사고를 치는 아들에게 '쿨'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부모님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에는 분명히 걱정이 많이 되실 텐데 말이다.

"선배 저희가 서울 갈 차비를 후원 해줄께요"

부모님 뿐만 아니라 주위 지인들도 벌금 150만원짜리 약식명령 청구서가 나온 것을 걱정해주었다.

"나 서울까지 정식 재판 하러 가게 생겼다."
"정말요? 허참, 선배 죄가 뭔데요?"
"한번 읽어 줄까? '배성민 귀하에 대한 일반 교통방해 등 피의사건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009년 5월 21일 벌금 1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하였으니'라는 통지서가 왔어. 나도 어이가 없다. 인도에서 연행이 되었는데 무슨 일반교통방해인지 모르겠네."
"(어이없다는 표정) 정말 이상하네요. 인도에서 잡았으면서 어떻게 일반교통방해죄로 벌금을 물라고 할 수 있나요?"
"생각해보니깐 전경들이 나를 잡아서 도로로 내려가서 사진을 강제로 찍게 했던 기억이 나. 그 때는 정신 없어서 몰랐는데 그 사진이 이렇게 쓰일 줄 몰랐다."
"그럼 무죄 아니에요? 죄를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뒤집어 씌우네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경찰이 말이죠."
"작년 촛불 집회 때 이후로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 개입도 하고 이런 저런 문제가 많네. 내가 죄가 없다는 걸 서울까지 올라가서 증명하고 와야겠다. 그래도 정식재판 하러 서울까지 가야 된다니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지 모르겠다."
"선배 저희가 서울 갈 차비를 후원 해줄게요. 다른 애들한테도 잘 이야기 해볼게요. 차비 정도야 저희가 드려야 부담 없이 재판에서 이기고 오죠."
"이야 역시 너희 밖에 없다. 고마워."

처음에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하고 막막하였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도 나름 잘 풀리고 주위 지인들이 응원을 해주니 내가 정당하다는 것을 재판에서 증명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초동 몰라요?"

여러 가지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였지만 계속해서 부모님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 아시게 되면 앞으로의 관계가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검찰에서 보내는 통지서를 김해에 있는 집으로 가지 않고 내가 실제 거주하는 부산으로 오게 하기 위해 검찰민원실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거기 법원형사민원실이죠?"
"(까칠한 말투로) 법원 형사 민원실 아닙니다. 뭐하시려고 전화하신 겁니까?"
"약식명령 청구 통지서를 받았는데 실제 거주지랑 달아서 주소를 변경하려구요."
"주소 변경은 전화로 안 됩니다. 직접 찾아 오시거나 우편물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는데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xxxx-x입니다. 사건 번호만 정확히 기재해 주세요."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 번 불러주시겠습니까?"
"(화를 내듯이) 서초동 몰라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xxxx-x"
"우편물을 보내면 처리가 되는 겁니까?"
"삐삐삐...."

사건 번호만 에이포 용지에 적어서 보내라는 말에 대충 적었다. 과연 이걸 보낸다고 해서 주소가 변경 될지 의문이다.
▲ 주소 변경 신청 사건 번호만 에이포 용지에 적어서 보내라는 말에 대충 적었다. 과연 이걸 보낸다고 해서 주소가 변경 될지 의문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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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들의 입장에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을 한 범죄자라고 하지만 이렇게 기분 나쁘게 전화를 받는 것에 화가 났다. 정당하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함께 목 놓아 외쳤던 죄 밖에 없는데 검찰에서는 벌금을 매기지 않나, 전화를 했더니 기분 나쁘게 전화를 받지 않나. 여러 가지로 기분이 팍 상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기분 나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 이런 사소한 것에 기분 상하지 말고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꼭 밝히고 말겠다.

언제 서울로 재판을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 꾸준히 연재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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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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