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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측의 '평화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조선반도)가 직면한 엄중한 위기를 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최근 북측의 판단과 정책결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봅니다. 북측은 남측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그리고 유엔 안보리의 의장 성명을 문제삼으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강경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북측의 반발에는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지만, 그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위원장님의 건강과 후계구도 등 내부 문제 때문에 북측이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2년 강성대국론을 주창한 북측이 핵보유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매한 제가 어떤 분석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북측이 한미 군 당국의 '작전계획 5029' 공개적 언급과 뒤이은 한미합동군사훈련, 그리고 북측의 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강경 대응 등을 보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는 실망과 분노에 따라 맞대응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한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을 전환시켰다는 생각에 도취된 나머지, '부시도 바꿨는데 오바마를 못 바꾸랴'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2년 강성대국'을 위해서는 군사 문제를 포함한 조속한 문제 해결이 필요할 텐데, 미국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갑갑증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행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이러한 북측의 인식에는 일면 일리가 있지만, 그 언행은 너무나도 지나칩니다. 저 역시 작전계획 5029와 남측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그리고 유엔 안보리가 북측의 위성 발사를 부정하고 과잉대응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북측의 반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응이 꼭 2차 핵실험과 남측에 대한 군사적 위협일 필요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2차 핵실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남측 주민들이 슬픔에 빠져 있었고, 미국은 북측과의 직접대화를, 남측 정부는 조심스럽게 대북정책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점에 강행되어 더욱 큰 안타까움을 갖게 됩니다.

 

북측 외무성은 핵실험 직후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핵시험은 지구상의 2054번째로 되는 핵시험이며, 전체 핵시험의 99.99%를 유엔 안보리 리사회의 5개 상임리사국들이 진행했다"며 북측 핵실험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금지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노력도 배가되고 있습니다.

 

반면 지난 10년 동안 지구상에서는 두 차례의 핵실험이 있었는데, 모두 북측이 한 것입니다. 가장 많이 핵실험을 한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CTBT 비준을 거부하고 선제 핵공격 전략을 채택했던 부시 행정부와는 사뭇 달라졌고, 그만큼 북측의 주장도 그 근거가 약해졌습니다.

 

이번 핵실험이 1차 핵실험 때와 크게 다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것 역시 김 위원장께서는 깨달아야 합니다. 1차 핵실험은 미국 정부가 안팎으로 민심을 잃고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네오콘이 몰락하는 시점과 조우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도는 70%를 넘나들고 있고, 북측을 포함한 적대국가와도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측의 핵실험 강행은 미국이 아닌 북측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고, 미국 내 협상파들의 입지를 크게 좁히고 말았습니다. 위원장께서 하루속히 부시를 상대로 한 '외교적 승리'의 도취감에서 깨어나, 부시 대통령이 힘만 믿고 오만함과 무절제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랍니다.

 

'2012년 강성대국'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요?

 

저는 김 위원장께서 '2012년 강성대국론'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상황을 바라보고 현명한 선택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북측은 고(故) 김일성 주석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김 위원장님의 70번째 생신이기도 합니다. 북측이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번영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문제는 '2012년 강성대국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일 것입니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 대표되는 군사 강국을 한편으로 하고, 많은 주민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국제적 고립과 한미일과의 전면적 대결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이중 정체성(dual identity)'으로 채우실 것입니까?

 

아니면, 핵과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대담하게 포기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조미관계 정상화 등 대외 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을 통해 인민들이 보다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대전환의 희망으로 채우실 것입니까? 이는 김 위원장의 업적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선반도 비핵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들이 '고깃국에 이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께서 핵포기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인민들이 고깃국에 이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은 더욱더 멀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김 위원장님께서는 아버지의 유훈을 지키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고 맙니다.

 

저는 위원장께서도 이 점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북측은 2009년 신년 사설에서 "일심단결"은 "핵무기보다 더 위력하다"며, "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대외정책의 정당성"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올해 생신 때, '2012년 강성대국론'을 거듭 환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늘 우리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는데 우리는 아직 수령님의 이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측의 최근 언행은 김일성 주석의 두 가지 유훈, 즉 '조선반도 비핵화'와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갈수록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께서는 극적인 반전을 염두에 두고 계실 수 있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2012년을 선군정치에서 선민정치의 전환으로 삼기를...

 

물론 이러한 제 말씀이 '북측이 일방적으로 핵포기를 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한반도 핵문제의 해법은 북측의 일관된 입장과 관련국들의 중재 및 조율,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뒤늦은 수용으로 '행동 대 행동'이라는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비록 이행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여전히 이견이 존재합니다만, 이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문제 해결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북측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미일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사이에 큰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이 '북측을 적대할 의도가 없다'면서 김 위원장님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작전계획 5029를 공론화하면서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닙니다. 또한 북측이 위협적인 언행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제기하고 상호간의 신뢰구축과 위협감소를 통해 하나둘씩 풀어가야 할 문제들입니다.

 

저는 북측의 2차 핵실험이 '파괴를 위한 폭발'이 아니라 '창조적 실험'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1차 핵실험이 '행동 대 행동'이라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촉진하는 역설적 상황을 창출했듯이, 2차 핵실험 역시 북측의 '핵 억제력 강화'가 아니라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염원을 가지고 말입니다.

 

첫째, 현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계획을 유예하고 조미대화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1999년 9월 조미간의 베를린 합의를 통해 북측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고 미국은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해 미사일 협상의 큰 물꼬를 텄던 경험은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둘째, 남북 양측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군사적 위기가 무력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와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해주십시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한반도에서 또다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되고, 이는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빠뜨릴 것입니다.

 

끝으로, '2012년 강성대국'이 선군정치에서 선민정치로의 전환을 알리는 대전환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군정치는 항구적인 통치체제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가 낳은 과도적인 체제일 것입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조미관계 정상화와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이 이뤄지면, 그 역사적 소임이 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군정치의 주역이신 김 위원장께서 선민정치로의 전환 결단을 내리시면, 이는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도 크나큰 업적을 남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 김 위원장님의 건강과 '광폭정치(통 큰 정치)'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http://blog.ohmynews.com/wooksik/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한반도 위기,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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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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