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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사과와 반성도 필요하지만, 그분의 생각을 듣고 현실에서 무엇을 개혁하고 실천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서거 이후에나 찾아봐서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을 하고 싶다."

 

김성훈(38)씨 손에는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행복한 책 읽기)이 들려 있었다. 그는 2일 저녁 8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썼거나 그에 관한 책을 모아 놓은 서점 코너에서 30분 넘게 머물렀다.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를 들춰보다가 유시민 전 장관이 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나>(개마고원)를 펼쳐보기도 했다.

 

김씨는 고민 끝에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을 선택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에세이보다 다른 이의 시선을 거친 '인간 노무현'을 알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최근 '서거 정국'이 마무리되기 전에 몇 권 더 사서 읽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점가에 뒤늦은 '노풍'이 불고 있다. 태풍까지는 아니어도 주변을 놀라게 할 정도의 바람이다.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썼거나 그를 조명한 책을 따로 모아 놓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무현 서적'은 누가, 어떤 이유로 사서 읽고 있을까. 2일 서울 시내 서점 몇 곳을 둘러봤다.

 

#1. [교보문고] 오후 2~5시 "왜들 이렇게 '노무현, 노무현' 하는지 알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책이 놓여 있는 테이블 위의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글귀 바로 앞에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책이 수북하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비), <혼란과 좌절, 그 4년의 기록>(해남),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행복한 책읽기), <노무현과 함께 만드는 대한민국>,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민음사).

 

그리고 그 옆으로도 노무현 서적이 열 종 넘게 꽂혀 있다. 낮 시간이라서 그럴까. 서점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동과 에세이, 소설 분야 쪽에는 사람들이 붐비지만 정치 쪽은 다소 한가한 편이다.

 

그래도 '노무현 코너'는 상대적으로 붐볐다. 주부와 40~50대 이상 장년층의 발길이 잦았다. 책을 고르는 주부 김숙희(45)씨의 눈빛은 진지했다. 김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그가 남긴 유산을 떠올리면 더욱 놀랍다"며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선거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도 남들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했고,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보지도 않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명박 같은 인물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 1년 만에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걸 보니 노 전 대통령의 '바보짓'의 의미를 알겠다."

 

이 때문에 김씨는 지금 대학생 아들과 함께 '열공 모드'에 들어갔다. 김씨는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들고 서점을 떠났다. 이번엔 백발이 성성한 박경원(72)옹이 노무현 서적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안경을 썼지만 책 속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지 고개를 숙였다 뒤적이고 젖히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박옹은 "솔직히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자살한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변에서 계속 '노무현, 노무현' 해서 산책 겸 와봤다"며 "갑자기 왜들 이렇게 노 전 대통령에게 열광하는지 그 이유나 좀 알고 싶다"고 했다.

 

"글씨가 안 보여 책 읽기가 힘들다"는 박옹 역시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들고 천천히 서점을 떠났다. 박옹의 말대로 정말 "갑자기 왜들 이렇게 난리"일까. 오랫동안 책을 판매해 본 전문가에게 물었다.

 

교보문고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자체가 무척 큰일이고,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전제한 뒤 "김수환 전 추기경, 장영희 교수 등도 그랬지만 생존해 있을 때와 없을 때 사람들의 정서적 느낌이 크게 다르고 그것이 관련 서적을 찾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교보문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은 약 2000권 넘게 팔렸다. 그중 <여보, 나 좀 도와줘>가 압도적으로 많이 판매됐다. 이 책은 1일 하루 동안에만 교보문고에서 700권 넘게 팔렸다.

 

서점의 한 관계자는 "<여보, 나 좀 도와줘>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이기 때문에 다른 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2. [교보문고, 영풍문고] 저녁 7시부터 9시, "세상 바꾸려면 공부해야지"

 

퇴근 시간이 되자 서점은 낮보다 훨씬 붐비기 시작했다. 덩달아 노무현 관련 책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었다.

 

"일종의 숙제죠. 김어준씨가 말했듯이,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 해봐야죠. 그래야 노 전 대통령이 좀 편히 쉬지 않겠습니까. 공부 말고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이동통신회사에 다닌다는 정영훈(36)씨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을 선택했다. 정씨는 스스로 한때 '노빠'였다고 밝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고, 인터넷에서도 그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는 "막상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며 "애증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맘 편하게 보수언론처럼 노 대통령을 마구 '씹어 댔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지금 그런 과거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나 자신을 괴롭게 한다"며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르겠지만, 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진정성만큼은 알아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제 와서 공부를 하는 건 일종의 참회이자,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는 행위"라고 밝혔다.

 

김수연(29)씨는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서거 정국'을 통해 "세상 공부를 좀" 했다. 그리고 이날 김씨는 우산과 핸드백을 들고 서점을 찾았다.

 

"노무현의 '노'자도 관심이 없었다"던 김씨는 노 전 대통령 관련 책을 이것저것 살폈다. 김씨는 "내 수준이 너무 낮아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면서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나>를 집어 들었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탈권위, 분권, 시민 자율 등을 강조했고 보수언론과 많이 다퉜다는 걸 알게 됐다"며 "마음 좋은 시골 아저씨 같았던 분이 왜 언론과 싸웠고, 끝내는 스스로 몸을 던졌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점을 나서며 "책 다 읽고 블로그에 서평 올리는 게 1차 목표"라며 "이제 '배운 여자' 티 좀 내고 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서점을 떠났다.

 

"<여보, 나 좀 도와줘> 판매 월등히 높아"

 

오프라인 서점만이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서도 '노풍'은 강하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한 관계자는 "서거 정국이 끝났지만 책 판매량은 오히려 계속 늘고 있다"며 "<여보, 나 좀 도와줘> 같은 경우는 인쇄소에서 기다렸다가 바로 책을 받아온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보, 나 좀 도와줘>의 경우 과거에는 1~2권 팔렸으나 5월 23일 이후 하루 평균 400~500권 정도가 팔려 나간다"며 "평소보다 책이 많이 나가는 월요일이자 월초였던 1일에는 약 1000권이 팔렸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유러피안 드림>도 하루에 100권 이상 주문이 들어온다"며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의 주 독자는 30~40대 직장인들이다"고 전했다.

 

이런 노풍에 힘입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경우 지난주에만 최소 1만권 넘게 판매됐다는 게 서점가의 말이다. 또 아직 출판되지 않은 <바보 노무현>(미르북스)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예약판매를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대박을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태그:#노무현,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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