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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자락 5월이 울며불며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가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6월의 하늘 아래 피어난 작은 들꽃을 바라보며 수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피어나 활짝 웃는데, 나도 그래야지 하면서 그들의 속내를 천천히 바라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뭐가 그리도 좋아라 웃는지, 피어난 꽃 중에는 상처없는 꽃도 없고, 웃지 않는 꽃도 없더군요. 차라리 상처입고, 시들어버린 것을 훈장처럼 여기고 살아갑니다.

 

 

'흔하면 어때, 사람들이 몰라주면 어때, 다른 꽃보다 못났으면 어때 이게 내 모습인데!'하며 당당하게 자기만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성형미인시대를 떠올립니다.

 

외모, 학력, 끈, 돈 같은 것들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보니 너도나도 허리띠 졸라매며 자기의 삶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자기만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 자기가 행복하고, 그 행복이 흘러넘치나 보면 이웃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고, 땅의 뜻 하늘에서 이뤄지는 그런 세상은 정녕 꿈에 불과한 세상이고, 죽어서나 가는 세상일까요?

 

별을 닮은 별꽃들, 별의 별꽃이 다 있습니다.

 

하늘 뜻, 땅의 마음 다 풍고 살아가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듯 그들의 꽃잎 하나하나는 심장의 모양입니다.

 

그들은 질서를 어기는 법이 없고, 그로인해 조화를 깨뜨리지 않습니다. 자기의 때가 되면 피어나고, 가야할 때가 되면 그냥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연은 늘 새롭고, 생명을 늘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서가 깨지면 자연의 조화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에 인공의 것들을 주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내할 수 없을만큼 착취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환경재앙, 그것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그들은 인간에게 경고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그들의 경고를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경제개발의 논리 하나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자신의 무덤파는 일까지도 좋다고 합니다.

 

자주달개비, 그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암꽃과 수꽃뿐 아니라 그들을 감싸고 있는 또다른 꽃술들이 가득합니다. 작은 꽃 한 송이에 온 우주의 법칙이 들어있음을 봅니다. 꽃 한 송이와 우주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것, 사람 하나와 온 천하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법인데 사람들은 다른 생명을 물론이요 자기 동족의 생명까지도 우습게 여깁니다.

 

남을 죽음의 길로 몰아간 것도 모자라 가해자로 만드는 사람들, 유족들의 억울함에 냉랭한 사람들, 사람의 생명을 해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남이야 죽든말든 한치의 손해도 보지않으려는 똑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두 자연 혹은 우주의 섭리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고추장만 살짝 뿌려서 먹어도 상큼한 풀향기를 가득내어주던 돌나물, 그렇게 뜯기고 또 뜯겼음에도 마침내 남은 것들이 꽃을 피웁니다.

 

뿌리만 뽑히지 않으면 결코 삶을 놓는 일이 없고, 줄기가 꺾여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독립하는 대단한 돌나물, 그 꽃이 별의 모양을 닮은 것은 그런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하늘의 마음이 이 땅에서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미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세상인 것입니다.

 

 

작아서 상처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꽃은 상처가 있다고 울지 않습니다. 꽃잎이 상했으면 상한 대로 활짝 웃지요.

 

자기의 단점 혹은 장애를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들꽃이 행복한 이유,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웃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금 이상하게 생긴 꽃을 보았습니다.

 

토끼풀이었습니다. 먼저 핀 꽃들은 이미 수정을 마치고 씨앗을 맺었는데 마지막 늦둥이 하나가 남아있었나 봅니다. 마지막 한 송이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피우는 꽃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 삶이란 이런 거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남은 꽃 한 송이를 피우라고 선물로 받은 날이기 때문이지.'

 

못생겼지만 얼마나 가슴 떨리게 다가온 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토끼풀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달랑 한 송이 남아 화들짝 피어난 것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산책을 하며 만났던 꽃 중 마지막 녀석입니다.

 

바위취라고 합니다. 하고 많은 곳 놔두고, 바위와 같은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들입니다. 물론 흙에서도 잘 자라지만 바위에서 자란 것들이 피어내는 꽃보다 예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고난,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선물입니다. 혹자는 '네가 그 입장이라면 그런 말을 못할거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견딜만한 아픔, 그것은 신의 선물입니다. 고난, 절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고난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 극복하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6월의 꽃들이 힘에 겨워하는 내게 힘차게 살아가라고 위로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야생화, #환경문제, #4대강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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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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