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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저. 세종연구원
▲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저. 세종연구원
ⓒ 윤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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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표지와 함께 서울대 추천도서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가진 이 책은 그것을 펼쳐보기도 전에 나를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이 재미있는 책을 미안하게도 몇 달간 책장에 꽂아두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지나갔고 결국 '엔트로피'를 집어 들기로 했다. 비록 다른 책이지만 같은 저자가 썼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의 소망과 조금이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사이, 그것은 최근 내가 사유했던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였다. 정부의 규제가 있어야 옳은가? 아니면 시장의 자유를 추구해야 옳은가,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 결과 나는 두 가지의 절충안이라는 다소 비열한 해결책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즉, 나는 모든 경제공황의 원인을 체제 속에서 적응한 후 그 체제의 허점을 노리는  인간의 탐욕이라고 보고 그것을 제거 할 수 있도록 두 가지의 경제정책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양극단에서 오락가락하던 나에게 모든 사회 체제속에 기본적으로 한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엔트로피' 즉, 제2법칙 이론이다. 열역학 제2법칙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자연 상태는 무질서한 상태로 흘러가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제2법칙을 실생활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용한 자원은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서 재사용 될 수 없는 것으로 변하고, 시간도 역시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법칙이 우리 사회의 기본 체제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부정하는 이론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우려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계론적 사회관이라 일컬어지는 이론인데,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이 기계론적 사회관에 입각해서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로 인식했고, 모든 것을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데 투자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인간들은 스스로 윤택한 삶을 유지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은 이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지속적인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인구의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으며, 팽창한 인구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점차 기술이라는 도구는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그 때문에 자연의 파괴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치안은 악화되고, 방위비용이 증가하며, 새로운 질병이 창궐하고,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는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시켜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실용론을 펼치지만 저자는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의 회귀. 즉, 저엔트로피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 말은 우리의 생활에 있는 모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언제까지 한정되어 있는 자원에 의존할 것인가? 지금 당장 에너지를 극도로 소모시키는 모든 산업자원의 사용을 중단하고 태양에너지와 같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힘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자급자족의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저엔트로피 사회로의 회귀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해야 우리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결코 무시할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우리가 자원을 착취해 나간다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각종 통계자료가 제시하는 분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는 친환·녹색성장이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희망적인 구호로 뒷공작을 꾸미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차츰 오염물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며, 자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면 우리는 저자가 이야기한 사람들 중에 실용노선을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실용론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모든 것을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환경오염의 중심이 되는 것들, 우리들의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 불필요하다면 버려야 한다.

그것들을 오염물 규제로 묶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설사 기적적으로 재생가능한 자원으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몸체를 이루는 것은 전부 이 땅의 자원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우리의 편익을 위해서 언제까지 자연을 희생시킬 것인가? 불필요한 것들의 사용을 차츰 줄여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특정한 환경의 에너지 상황이 그 시대, 그 환경에서  형성되는 기본틀을 규정한다.

우리는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엔트로피 과정이 바랭하는 속도를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개인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행복은 공백상태를 남기고 위기는 발명의 시대를 남긴다. 

지구라는 폐쇄계에 내재하는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구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생존과 다른 모든 생물종의 생존은 자연과 화해하고 생태계와 협동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경제학자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물질적 진보의 패러다임을 신봉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과 기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나 인간의 에너지, 기계적 에너지 또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뭔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소비될 때마다 전체 환경은 더 큰 무질서와 쓰레기가 생겨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깨달음이란 뭔가를 '경험'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몸부림 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2015)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세종연구원#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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