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쥬다리에 앉아 노을이 내리는 자얀데 강을 바라봤습니다. 축복 받은 시간을 아는 듯 수많은 물새 떼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물새 떼가 무리를 지어 노니는 모습은 오렌지 빛 하늘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그 아름다움 풍경을 커쥬다리 난간에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봤을 때도 슬플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생기는데, 그 시간 난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영혼을 적셔주고 마침내 고양시켜주는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간처럼 완벽하게 평화로운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자신과 완전한 일체감을 맛보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늘 분열된 자신과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편이지요.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의 일체감을 맛보았습니다.
하늘로 솟구쳐 올랐는가 하면 물속을 헤집고 있는 새처럼 자유로웠고, 하늘빛을 바꾼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운 마음이었습니다. 정말 완벽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란 남자가 혼자 서서 하염없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또 다른 이가 그렇게 풍경에 넋을 빼놓고 있고, 이렇게 커쥬다리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조금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모두들 문학 소년이나 문학소녀 같은 표정을 하고 노을을 감상했습니다. 이들 이스파한 사람들은 노을이 내리는 시간 이렇게 자얀데 강으로 나와서 그 시간을 즐기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대한 감동은 천방지축인 작은 애도 나름대로 느끼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노을을 보고 있으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작은 애의 표현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일치해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보통 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저 생각을 하고 저 일을 하고 있으면서 이 생각을 하는 등 우리 정신은 미친 듯 분주한 편이라 이렇게 한 가지 생각이나 상태에 빠지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태를 불교적인 용어로는 '삼매'라고 하고, '몰아'라고도 하는데 그 시간 자얀데강가에 서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런 체험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을이 어둠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그 다리에 있었습니다. 난 자얀데 강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이번 이란 여행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테헤란의 토찰산과 이곳 이스파한의 자얀데 강입니다. 난 자얀데 강에 빠져서 이스파한에서 봐야할 것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이곳 자얀데 강으로 벌써 세 번째 왔던 것입니다.
내가 포기한 것 중에는 그 유명한 이맘광장의 야경도 있고, 자메모스크도 있고, 기독교 성지인 반크교회도 있습니다. 관광 안내책자에서 적극 추천한 그곳 보다 난 자얀데 강의 노을을 선택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난 이스파한에 머문 3일 동안 내내 저녁마다 노을을 보러 자얀데 강으로 달려왔고, 또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얀데 강의 저녁 풍경이 정말 아름답지만 강의 규모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 하천 정도 크기였습니다. 길이는 꽤 길지만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고 겨울이라 수량이 줄어서 그런지 돌다리로 지나갈 정도로 수심이 얕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강에 다리가 무려 11개나 놓여있습니다. 다리도 그냥 다리가 아니라 15세기 다리 만드는 기술이 탁월했던 아르메니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적인 다리입니다. 지금까지 난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란인들은 정말 자얀데 강을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다리에 서서 친구와 만나 수다도 떨고, 또 다리에 있는 찻집에서 차도 마시고 물담배도 피우고, 또 나처럼 난간에 서서 노을도 감상합니다.
이렇게 다리는 교통수단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만남과 사색의 장소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모두 어머니의 젖줄 같은 자얀데 강을 즐기는 그들의 방법이었습니다.
커쥬다리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우린 커쥬다리와 함께 가장 유명한 다리인 시오세 다리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동 방법을 두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난 자얀데 강을 더 느끼기 위해서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서 가자고 고집하고 큰 애는 춥고 피곤하니까 택시 타고 가자고 떼를 썼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걷기로 했습니다, 작은 애도 나처럼 언제 강을 또 보겠냐며 자기도 걷고 싶다고 했거든요.
난 정말 그 시간이 좋았고, 자얀데 강을 걷고 있는 그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걸었습니다. 그런데 큰 애에게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 다리도 아프고 거기다 강변이라 춥기까지 한데 강을 따라 걷는 두 사람이 미친 걸로 보였는지 우리에게 화가 나서 우리를 괴롭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더니 시오세 다리에 왔을 때 기어이 우릴 애 먹였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시오세 다리는 조명이 들어와 오렌지 빛의 아치 33개가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걸 보러 나온 시민들과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로 굉장히 붐볐습니다.
그런데 큰 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많고 깜깜해져서 애를 잃기 쉬운 상황이어서 무척 걱정이 됐습니다. 하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찾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일부러 우리 뒤에서 우리를 감시하면서 따라왔던 것이지요.
큰 애는 이런 식으로 택시를 타고 편하게 오자는 말을 꺾고 자기들마음대로 강가를 걷게 한 우리에게 복수했습니다. 작은 애와 내가 혼비백산해서 자신을 찾느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풀렸는지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복수를 끝낸 큰 애도 기분이 좋아졌고, 우리는 원래부터 자얀데 강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했고, 그래서 모두들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이날은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아마도 이 날의 감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