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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린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6월민주항쟁 22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열면서, 10일부터 7월 5일까지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민주주의와 노무현"전(展)을 연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있었다. 기념사업회는 "6월 민주항쟁을 시민과 함께 이끌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와 소중함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밖에 9일과 10일 사이 민주공원에서 전야문화제와 기념식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기념사업회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행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공원 중극장에서는 9일 저녁 7시30분 '제22주년 6월민주항쟁 기념 전야 문화제-꽃다지, 우리나라 초청콘서트'가 열린다. 이번 공연은 '착한사람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기념사업회는 "1979년 부마민주항쟁도, 80년 5월민중항쟁도, 87년 6월 항쟁도, 08년 촛불항쟁도 광자에 모여 대한민국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지킨 사람은 착한 국민들, 착한사람들이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그 자리를 지킨 모든 착한사람들에게 공연을 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제22주년 6월민주항쟁 기념식 및 부산지역 6월열사 합동 추모제'는 10일 오전 10시 민주공원 소극장과 추념의장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부산광역시와 공동주최하는데, 경과보고, 기념사, 동영상 상영, 유월 시국선언문 낭독 순서로 진행된다.

 

부산지역에서는 6월항쟁 전후해 2명이 사망했는데, 기념사업회는 이태춘·황보영국 열사를 '6월 열사'라 부르고 합동추모제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태춘 열사는 1987년 6월 18일 부산 좌천동 육교 시위에서 전경들이 다연발탄과 직격탄을 쏜 뒤 육교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이날 저녁 좌천동 시위는 6월 항쟁 중 부산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다.

 

기념사업회는 "발견 당시 상황은 행진 중 전면에 있던 경찰이 갑자기 다연발탄과 최류탄을 난사하였기 때문에 그곳에 밀집하여 있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윗쪽으로 피하면서 흩어졌고, 사람들이 떠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등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였다"며 "시위대가 지나간 뒤, 시민 4명이 이태춘 열사를 지나가는 승용차에 태워서 대연동 재희병원으로 후송했고 그 당시 동지는 눈을 가냘프게 움직였으나,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옷에 최루가루가 뿌옇게 묻어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뇌수술을 하였으나 1987년 6월 24일 밤 8시 40분경 사망했고, 부검 뒤 1987년 6월 27일 10시 범일성당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

 

황보영국 열사는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우성사 등에서 연강판전기용접, 중장비 운전 등의 기술을 익히면서 생활하던 성실한 노동자였다. 그는 1987년 5월 17일, 광주항쟁 7주기를 맞이하여 거사를 결심한 황보영국 열사는 부산상고 앞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후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며 100m를 달리다 쓰러졌다.

 

기념사업회는 "황보 열사는 쓰러지면서도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절규하며 혼절, 그 후 경찰에 의해 백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하다 일주일 만에 운명하였다"고 밝혔다.


태그:#민주주의, #노무현, #민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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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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