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소비자'라는 생소한 개념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위상조차도 별 볼일 없을 정도로 미미한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소비자란 그저 다른 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2006~2007년 <시사저널> 사태(삼성 기사를 삭제한 일 때문에 언론사 기자들이 1년 넘게 거리로 내몰려 절박하게 싸운 사건)를 사람들은 언론사의 노사문제이거나 내부문제로 치부했다. 하지만 각성한 독자들이 이 '싸움판'에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은 '국민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몇몇 독자들이 뜻을 모으고 수천 명의 독자들이 힘을 보태 만들어진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에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해 기자들을 도왔고, <시사IN> 창간 과정에서 독자들과 함께 산파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던 독자로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작은 승리가 무척이나 그리웠던 우리의 처참한 언론사에서 단비 같은 승리였다.
언론소비자운동, 1심은 판정패했지만...
하지만 두 번째 전쟁은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상대들'과 만났다. <시사저널> 사태가 언론권력,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재벌과 벌인 국지전이었다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광고주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지면 불매운동은 재벌권력, 언론권력, 국가권력이 결탁한 초대형 괴물을 상대로 한 전면전이었다.
이명박 정부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정부'인 <조선일보> 등은 지면을 통해 법무부장관과 정치권 등에 압력을 넣어 임채진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무리한 수사를 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검찰대로 위헌적 수사를, 법원은 법원대로 위헌적 판결을 내렸다.
지난 2월 법원은 촛불집회 당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회원 24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은 그렇게 '언론소비자'의 판정패로 끝났다. 하지만 언소주는 독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그 판결문의 틈새를 열고 전열을 가듬었다. 족벌 신문 지면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는 요구가 위법 시비에 휘말리자 기업을 정조준하기로 했다.
그것이 어제(6월 8일)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있었던 언소주 기자회견의 요지다. 광고 불매가 아니라 상품에 대한 직접 불매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상품 불매운동은 상품에 결함이 있을 때 소비자가 행동하는 방식이지만, 편파적인 언론 광고주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21세기에 맞는 윤리의식을 갖추라는 소비자의 준엄한 명령이다. 이제 기업들은 단지 물건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화된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언소주가 주창하는 불매운동의 취지이다.
시사모 활동 이후로 내 생활은 여러 가지로 달라졌다. 특히 지하철에서 아주머니들이 돌리는 전단지는 절대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시사IN> 창간 과정에서 시사모 회원, 고재열 기자 등과 함께 광화문에서 창간 홍보지를 돌려본 기억 때문이다. 홍보지를 외면하는 시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 앓아 누운 적도 있었다. 그것은 좋은 언론을 읽고 싶은 독자로서 부담해야 할 아주 작은 상처에 불과하다.
내가 '지갑 민주주의' 실현하는 이유
그리고 또 달라진 것은 매년, 또는 매달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시사IN> 정기구독료, <경향신문> 정기구독료, 월간 <작은책> 정기구독료, <녹색평론> 정기구독료, <프레시안> 후원금, 언소주 후원금 등 언론매체나 언론단체에 기부하는 돈이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아직 키보드워리어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행동'으로 그만큼 붓지 못한다면 '지갑'으로라도 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을 나는 '지갑 민주주의'라고 부르겠다.
지인이 언소주에 매달 돈을 입금하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 안티 조선일보 운동의 업그레이드판을 보게 돼 반가운 마음으로 부담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대중은 뜻이 옳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운동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칙이지만, 강요를 해서 언소주 후원회원으로 만들거나 <시사IN>, <경향신문>, <녹색평론> 구독자로 만들거나, 프레시앙(<프레시안>을 후원하는 회원)으로 여럿 끌어들였다.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지는 않지만 이것이 내가 했던 행동 중에서 비교적 '잘한 짓'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 가지 습관이 늘었다. 편파적인 언론보다 더 못된, 편파적인 광고집행을 하는 기업들이 정신 바짝 차리도록 집요하게 불매운동을 하고, 모니터링을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을 자판기에서 빼먹는 일회용 컵쯤으로 생각하고, 소비자들은 눈먼 돈을 들고 다니는 '바보' 쯤으로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외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기업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의 산성이 건재하고, <조선일보>가 건재하다. 만약 소비자들이 광동제약 같이 조중동에만 집중적으로 광고를 하는 기업에 대해서 불매로 맞선다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고소 고발할 틈새가 없기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고, 언론소비자에게 무척이나 인색한 현 정부로서도 정당한 소비자운동을 탄압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조선일보>에 편파적인 광고를 집행하는 기업들을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면 <조선일보>의 논조가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어쩌면 2008년 광화문을 밝힌 100만의 촛불보다도, 고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전국의 수백만 추모객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에 광고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는 소비자의 일상적인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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