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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곳을 '미제방죽'이라 불렀다. 지금에야 대형버스를 타고 현장학습을 가지만, 당시 우리들의 소풍장소는 미제방죽이었다.

 

 그때 내가 본 미제방죽은 저수지가 아니라 바다처럼 넓었다.  하지만 미제방죽 잔디밭은 '화려한 외출을 꿈꾸는 아줌마'들의 외침으로 변했다. 자신의 발견을 위한 반항이었을까. 한때 미제 방죽은 대형 대절버스를 타고 막걸리 통을 들고 니나노를 부르며 춤을 추는 아낙들의 유흥장소로 변하기도 했다. 그 후 내게 미제방죽의 추억은 푸른 제주바다의 기억 속에 묻혀졌다.

 

 

 

 1985년부터 국민관광지로 조성된 군산시 은파유원지, 미제저수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은파유원지는 동국여지승람에 조선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6일, 선친의 묘소에 들려 잠시 내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미제방죽'을 드라이브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온데간데 없고 '미제방죽'은  화려하게 '은파유원지'로 변해 있었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 길에는 일찌감치 자동차가 길을 메웠다. 주변은 먹거리와 놀거리 탈거리들로 애드벌룬이 띄워져 있었다. 남녀노소가 찾아가는 유원지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그리고 씁쓸할까. 내 마음속 '미제방죽'은 안타깝게도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학창시절 그토록 넓게만 느껴졌던 미제저수지는 왜 그리도 작은 연못이 되어버렸을까? 내 마음속 바다는 작은 연못이 되어 파동을 일으켰다.

 

 저수지 주변을 드라이브하다 하는 수 없이 물빛다리 주변에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저수지를 가르는 나무데크 시설의 다리를 걸어 보았다. 물빛다리였다. 물과 빛의 어우러짐으로 형상화한 물빛다리는 밤과 낮을 밝혀주는 유원지가 되어버렸다.

 

 폭이 5m-9m 정도 될까. 나무데크 시설로 된 물빛다리는 산책로 같았다. 부산의 광안대교가 자동차를 위한 다리라면, 군산의 물빛다리는 사람이 걷는 길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물위를 걷는 길.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길, 추억속의 길 말이다.  370m 물빛다리 나무데크를 걷다보니 추억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한때 미제방죽 잔디밭에서 '니나노'를 부르며 '화려한 외출을 꿈꿨던 아줌마'들처럼 은파유원지 물빛다리를 걷는 나는 어느새 '니나노'를 부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6월 6일 다녀왔습니다.


태그:#물빛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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