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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전국에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단'이라는 선교단체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외선교훈련을 실시하면서 부모와 학생들로부터 받았던 '서약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단체는 연령별 사역팀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그중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사역'이 있다. 주로 여름방학 기간 전 2개월의 주말 국내훈련과 방학기간 중 2주가량의 해외선교체험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해당 청소년들과 그 학부모들로부터 참가신청서를 받는데, 지원서를 포함해 지원동기 등을 묻는 '학생지원서', 자녀들의 가정생활 등을 묻는 '부모님 질문서', '서약서', 그리고 출석교회 목사의 '추천서' 등 총 8쪽에 달하는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었다.

문제가 된 서류는 바로 '서약서', 이 서약서는 '부모님, 학생서약서'라는 제목으로 5개 항목으로 돼 있는데, 이 내용 중 두 번째 항목이 논란이다.

두 번째 항목은
"훈련기간 동안 학생의 과실로 인한 사고 손실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것을 서약합니다. 훈련기간 동안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부상, 손실, 사망...) 및 질병에 대해 청소년 사역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고 돼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청소년들이 해외로 나가서 활동하는 기간 중에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서 선교단 측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사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내용도 있다.

문제가 된 '부모님 학생 서약서', 제2항의 문구가 물의를 빚고 있다.
 문제가 된 '부모님 학생 서약서', 제2항의 문구가 물의를 빚고 있다.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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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 "우리 아이가 죽어도 책임 안 지겠다니?" 충격

기자가 이 내용을 주변의 일부 학부모들에게 보여주자 한결같이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용이라는 반응이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조모씨(39, 여)는 "이게 말이 되는 내용이냐"며 "비싼 회비를 받고 훈련을 시켜서 외국으로 내보내면서 사고에 대한 책임은 본인들에게 전가시키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이런 서약서에 동의를 하는 부모들도 있느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자가 몇몇 지부에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국지부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이 행사에 지부에 따라 많게는 수십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기자는 관계자에게 서약서에 동의를 한 학부모와 학생을 인터뷰해보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신변상의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계자, "동의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

한편 이 서약서는 지부 뿐 아니라, '○○○○단'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한 지부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한 지부는 이번 여름에 학생들을 이집트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몇 가지 질의와 응답을 나눴다. 다음은 전화 인터뷰 내용.

- 서약서의 내용이 사실인가.
"사실이다."

- 훈련기간 중 발생한 사고라고 했는데, 훈련기간이란 국내 훈련과 해외선교를 포함하나.
"그렇다."

- 이런 서약서를 작성하는 이유가 뭔가.
"신앙고백 차원이다. 이런 각오로 선교를 하겠다는 뜻이다."

- 부상이나 사망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내용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기독교인이냐."

- 내가 기독교인인 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 내 개인의 궁금증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렇게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안 보내면 된다."

- 선교단에서 이런 서약서를 받은 게 오래된 일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오래 전부터 이런 서약서를 받았고, 지금까지 사고는 없었다."

- 아프간사태와 같은 불상사가 또 생긴다면 선교단에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인데, 부모들이 쉽게 동의했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선교라는 것은 목숨을 걸 정도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생길 정도의 위험한 지역에는 보내지 않는다. 우리도 나름대로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 학생들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있는 일은 어떤 일인가.
"해당 지역의 선교사와 함께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을 한다."

-최근 신종플루와 같은 질병도 발생하고 있고, 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국가의 책임이고 선교단의 책임인데, 이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뭔가.
"회피하려는 게 아니다. 선교단에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고에 대한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나.
"먼저 사고예방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우리도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직 마련된 바 없다."

-그건 개인의 견해인가, 아니면 선교단 본부의 방침인가.
"선교단의 공식적인 방침은 아니다. 다만 그런 정도의 책임은 질 것이라는 말이다."

-서약서에 신청한 부모들과 학생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나.  
"허락할 수 없다."

아프간 사태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교단체의 심각한 안전 불감증 여전해

위 통화 내용에서 보듯이 이들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했다.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는 것과,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안 보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는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서약서에 서명을 한 부모들과 학생들의 인식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가 어떤 사고를 당해도 선교단체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결국 개인이 전적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학생의 부모들이 이 내용에 동의했다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부모들의 강요가 아닌지, 또는 자신들이 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선교단체에서는 그 부모들이나 학생들과 연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프간 선교단 사태 때도 '대수롭지 않은 선교여행'이라고 믿었는데...

이들이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천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국제정세는 매우 민감하다. 특히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때에 이집트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전 세계로 어린 학생들을 보내면서 질병과 사망에 대한 책임조차 회피하려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불과 2년 전 아프간에서 포로로 잡혔던 분당샘물교회 청년들 또한 처음에는 단순히 '즐거운 선교여행'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끔찍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방학을 맞아 전국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수많은 학생들을 해외로 보낸다. 짧은 기간에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실효성도 의문이지만, 이들의 안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더 큰 문제다. 결국 전 세계 어디에도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 줄 안전지대는 없다. 따라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멀쩡하던 비행기가 추락하고, 신종플루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때에 우리 자녀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선교여행에 동의한 부모들과,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선교단체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률전문가, "서약서가 선교단체의 책임 면제 못 해"

한편 이 서약서의 문구를 검토한 황주환 변호사는 "(2항에서) '훈련기간 동안 학생의 과실로 인한 사고 손실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부분은 학생의 책임에 대하여 부모가 같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보이며 법적인 효력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데, 단 이 경우도 학생이 과실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황 변호사는 또 "'(논란이 되는) 훈련기간 동안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부상, 손실, 사망..) 및 질병에 대해 청소년 사역에서 직접적인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이 조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선교단체 측에서 학생들에 대한 관리 감독 등에 대하여 과실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며, 위 조항이 이러한 경우까지 선교단체에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다만 쓰나미 등과 같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의 경우에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아프간, #단기선교, #예수전도단, #KINGS KIDS, #YW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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