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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犬) 학교에 안내묘(猫)가 있다?

안내견을 아세요? 안내견이란 시각장애인을 돕는 '개'를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안내견 학교에 안내묘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네요. 고양이가 시각장애인 안내 일을 한다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해외토픽감이니 안내견 학교로 직접 찾아가 확인해 보죠.

드르륵~. 안내견 학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하나가 아니고 겹겹이네요. 소독을 위해서 신발도 약물이 묻은 발판에 싹싹 닦아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소중한 안내견들을 온갖 병균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이처럼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만 무사히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몇 개의 문을 지나 마침내 안내견 학교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야옹~.' 그때 눈앞에 나타난 고양이 두 마리. 마치 인사를 하듯 꼬리를 바짝 세우고 이리저리 살핀 후 안쪽으로 안내를 하네요. 안내묘가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안내견을 돕는 대항군, 래브와 라도


안내견 학교의 고양이
 안내견 학교의 고양이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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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고양이들의 이름이 '래브'와 '라도'인데(국내에서 안내견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견종이 래브라도이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에게 친숙한 이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안내견 학교에 살고 있지만 안내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떤 역할을 하면서 안내견 학교에 살고 있을까요?

래브와 라도가 안내견 학교에서 맡은 역할은 바로 '대항군'입니다. 대항군이란 군대에서 흔히 쓰는 용어로 전투 훈련을 할 때 훈련을 위해 가짜로 적군 역할을 맡는 군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럼 래브와 라도가 안내견이랑 싸운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니고요, 마치 대항군처럼 안내견들이 훈련을 할 때 고양이들이 돌발상황을 만들어서 안내견들이 그런 상황에 잘 적응하고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대항군으로서 고양이의 역할을 래브에게 직접 들어볼까요?

'안내견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외부 활동을 많이 하잖아. 그럴 때 길을 지나다가 길고양이를 만난 안내견이 고양이를 쫓아가거나 고양이와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어? 시각장애인이 위험해질 수 있거든. 그런 상황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 안내견 학교 안에서 고양이와 친숙해지는 훈련을 하는데 우리가 필요한 거지. 알았냐옹~?'

안내견이 고양이에게 익숙해지게 만드는 게 대항묘로서 고양이의 임무이다.
 안내견이 고양이에게 익숙해지게 만드는 게 대항묘로서 고양이의 임무이다.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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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사람도 돌발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차가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고, 반대편에서 뛰어오던 사람과 부딪칠 뻔하기도 합니다. 이때 순간적인 판단 능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같은 일을 당해봤다면 훨씬 더 대처하기 쉽죠.

안내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길을 걷던 안내견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를 보았다면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제대로 자기의 역할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고양이를 쫓아가거나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안내견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다면 훨씬 더 적응하기 쉽겠죠. 항상 봐왔던 고양이이니 별 반응 없이 지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게 바로 대항군으로서 고양이의 역할입니다.

안내견 학교에 살아서 행복하다옹~~!

래브와 라도는 안내견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다른 개들처럼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는 않았습니다. 래브, 라도와 함께 살던 주인이 개인적인 이유로 더 이상 고양이와 살 수 없게 되어서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침 안내견 학교에서도 대항군의 역할을 해줄 고양이를 찾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래브와 라도가 학교로 오게 된 것이지요. 어찌 보면 래브와 라도는 주인에게 버려졌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오래 살던 집을 떠나 개들이 바글바글한 곳에 오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방역을 위해서 2주 동안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격리되어 있었으니 더 많이 놀랐겠죠. 안내견 학교의 훈련사 선생님들이 번갈아 격리된 장소에 찾아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갑자기 사는 환경이 바뀐 래브와 라도는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죠.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 라도.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 라도.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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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라도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서 구석만 있으면 찾아가 숨었습니다. 심지어는 찬장 문을 열고 들어가 숨어서 훈련사 선생님들을 애타게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길고양이로 살다가 입양되었던 라도는 다시 안내견 학교로 보내지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가 좀 심했었거든요.

하지만 그랬던 래브와 라도가 훈련사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 성격 좋은 안내견 친구들의 환영으로 서서히 안내견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구석에서 나오고 안내견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누더니 이제는 안내견 학교의 공식 집사가 되었지요. 손님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나가서 맞아주고, 아침에 안내견 친구들이 훈련을 나갈 때면 문 앞에 나와 배웅도 해주거든요.

이곳에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래브와 라도가 기분이 좋아져서 골골골 노래를 부르며 대답합니다. 특히 숨기대장 라도는 지금은 신입 안내견 군기 잡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품성이 좋아야 안내견 학교의 고양이가 될 수 있다

사실 대항군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래브와 라도는 딱히 맡은 역할이 없어 보입니다. 안내견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고양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지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임무가 되는 일이니 하는 일이 정말 쉬울 것 같죠?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 래브. 외출을 좋아하는 자유고양이로 종종 사라져 훈련사 선생님들의 애를 태운다.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 래브. 외출을 좋아하는 자유고양이로 종종 사라져 훈련사 선생님들의 애를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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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안내견 학교에서 대항군을 하려면 갖춰야 하는 요건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에게 경계심 없이 친화적이어야 하고 공격성도 있으면 안 됩니다. 또한 너무 소심해서 개 앞에 못 나서도 안 되지요.

이런 여러 가지 품성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안내견 학교의 고양이가 될 수 있는데, 래브와 라도는 완벽하게 이 자격 조건에 맞는 고양이들입니다.

물론 처음에 라도가 소심해서 조금 걱정했지만, 지금은 신입 안내견이 학교에 처음 입소하면 제일 먼저 앞에 나서서 군기를 잡을 정도로 완벽한 대항군이 되었답니다. 그러니 아무나 안내견 학교의 고양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래브와 라도는 24시간 일을 하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요. 아침이면 잠꾸러기 안내견들을 일일이 깨우면서 아침 인사를 하고, 분주한 아침식사 시간엔 안내견들과 함께 밥을 먹고, 낮에는 안내견들이 훈련을 나가서 빈 견사가 안전한지 살피고, 밤에는 안내견들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야행성인 고양이들이 견사를 오고가며 철통 경비를 서니까요.

래브와 라도가 자기의 역할을 얼마나 잘해내는지는 무엇보다 안내견들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래브와 라도가 안내견 학교에 왔을 때 안내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이제 막 퍼피워킹을 마치고 학교에 입학한 자견들은 무서움에 뒷걸음부터 치기 바빴습니다. 신기한 듯 멀리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안내견들도 있었고요.

안내견 후보생들은 처음에는 대항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맨 왼쪽), 대항묘에 익숙해진 안내견들은 거리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도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가운데),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오른쪽).
 안내견 후보생들은 처음에는 대항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맨 왼쪽), 대항묘에 익숙해진 안내견들은 거리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도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가운데), 안내견 학교의 대항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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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들이 래브, 라도와 몇 달을 보내고 나면 태도가 싹 바뀝니다. 고양이들이 그 앞에서 장난감을 갖고 정신없이 놀아도 놀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습니다. 본체만체하게 된 것이지요.

고양이 적응 훈련 100% 성공입니다. 이게 다 안내견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생활할 줄 아는 래브와 라도의 능력입니다.

외국의 안내견 학교에도 대항군 역할을 하는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역사가 긴 그곳에는 나이가 10살이 넘어 대항군 역할에서 은퇴한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은퇴한 후에는 안내견 학교의 조용한 공간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나이가 들었더라도 여전히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안내견 교육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지만요.

한국의 래브와 라도도 그런 고양이들처럼 안내견들을 잘 훈련시켜 많이 배출시키고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행복한 모습으로 안내견 학교를 어슬렁거리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어린이들이 생명에 대한 존경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린이잡지 <생각쟁이>에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공혈견, 안내견, 인명구조견 등 매번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견공들을 소개했었는데 이번에는 외전으로 고양이들이 주인공입니다.



태그:#고양이, #안내견, #안내견학교, #대항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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