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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른아침에 깨어나 한참이 지나도록 잠들지 않고 칭얼거리기만 하는 아기와 놀고 어르고 달래지만 다시 잠들지 않습니다. 눈은 벌겋게 되었으면서도 잠들 낌새가 없어 엄마하고 아빠하고 고단하게 하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고, 옆지기가 젖을 물리기도 하지만 안 됩니다. 이리하여 아빠가 아기를 안고 동네마실을 하기로 합니다. 아빠가 힘들면 엄마가 등에 업기로 하면서 포대기를 챙깁니다.

옆지기는 새로 옮겨 온 동네 골목길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집 둘레부터 슬슬 걸어 보기로 합니다. 내동성공회성당 옆을 스치고 지나가다가 문득, 중국사람거리에 있는 오래된 성당인 해안동성당까지 가 보면 어떨까 싶어, 오른편으로는 자유공원을 끼는 오래된 골목을 거닙니다.

우리 집에서 2분쯤, 아니 1분쯤 걸어나가면 옆골목으로 나무전봇대 있는 길이 나오고, 나무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계단과 꽃그릇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2분쯤, 아니 1분쯤 걸어나가면 옆골목으로 나무전봇대 있는 길이 나오고, 나무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계단과 꽃그릇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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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있는 인성학교 아이들이 골목을 재잘거리며 걷습니다. 지난날 일본사람이 살던 으리으리한 집자리 울타리에 소담스러운 장미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나즈막한 골목집 옥상에 꽤 널찍하게 텃밭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옥상텃밭에 배추포기가 벌어져 있고, 벌어진 배추포기 한복판에는 배추꽃이 앙증맞게 피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중국사람거리로 들어섭니다. 해안동성당 앞에 닿습니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나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조그마한 해안동성당에서도 날마다 미사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아침 열 시에만 한 번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집에서 여기까지 생각보다 멀다고 느끼는 사이, 아이는 조용히 잠듭니다. 발걸음을 조금 더 늦추며 천천히 걷습니다. 우리는 우리 새 집이 깃든 내동에서 송학동3가를 거쳐 송학동2가를 지났고, 북성동2가와 선린동을 지나 중앙동1가와 중앙동2가를 지났습니다. 중앙동2가에는 조선일보사 지국이 있는데, 이 건물은 창문과 대문을 빼놓고 온통 담쟁이에 뒤덮여 있습니다. 신문사 나무간판은 이곳이 꽤 오래된 곳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문사지국 건너편에 있는 술집 '民'이라는 곳을 살짝 넘겨다보고 지나갑니다. 술집 안쪽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나오더니 우리한테 손짓을 합니다. '누구지?' 하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서고 보니, 인천에서 사진찍는 아저씨입니다. 《청관》 《바다 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같은 사진책을 낸 김보섭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오래도록 이 동네에서 사진을 찍어 오고 있는데, 하루일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쯤까지 술집 민에 들러 술 한 잔을 비우며 몸을 쉰다고 합니다.

한두 그루 조촐하게 심어 가꾸는 장미나무는 으레 집 안쪽에서 울타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곤 해,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냄새를 가만히 맡아 봅니다.
 한두 그루 조촐하게 심어 가꾸는 장미나무는 으레 집 안쪽에서 울타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곤 해,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냄새를 가만히 맡아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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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아기를 안고 사진쟁이 아저씨하고 사진 이야기며 인천 이야기며 말꽃을 피웁니다. 달게 자고 있던 아기가 어느새 깨어나고, 깨어난 아기한테 옆지기가 밥과 국을 먹입니다. 술집 라디오에서는 칠레 노래꾼 '빅토르 하라'가 지었다는 노래가락 둘이 흘러나옵니다. 노래와 이야기와 술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다음, 이번에는 옆지기가 아기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빨래와 설거지와 자잘한 집안일을 끝마치고 잠들 무렵, 우리 집 앞 골목으로 "찹쌀∼떠∼억" 하는 구성진 목소리 아저씨가 떡수레를 끌고 지나갑니다.

낡은 물건은 그저 낡은 물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놓는 자리에 따라 새삼스럽게 바뀝니다.
 낡은 물건은 그저 낡은 물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놓는 자리에 따라 새삼스럽게 바뀝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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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리 거의 없이 조용한 동네 골목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집 안팎 곳곳에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차소리 거의 없이 조용한 동네 골목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집 안팎 곳곳에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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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고 없는 집자리에 가꾼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헐리고 없는 집자리에 가꾼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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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 한복판에 이루어 놓은 텃밭입니다. 도심지에 새숨을 불어넣어 주는 흙이요 풀이요 푸성귀입니다.
 도심지 한복판에 이루어 놓은 텃밭입니다. 도심지에 새숨을 불어넣어 주는 흙이요 풀이요 푸성귀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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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마루에서 우리 집을 내려다봅니다. 우리 집 씻는방 옆으로는 복숭아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고 있어, 곧 있으면 손을 뻗어 몇 알 따먹을 수 있습니다. 멀리 답동성당이 바라다보입니다.
 언덕마루에서 우리 집을 내려다봅니다. 우리 집 씻는방 옆으로는 복숭아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고 있어, 곧 있으면 손을 뻗어 몇 알 따먹을 수 있습니다. 멀리 답동성당이 바라다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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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직한 울타리 안쪽에는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가 소담스레 피어 있습니다.
 높직한 울타리 안쪽에는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가 소담스레 피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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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학교 아이들은 동네마실을 하듯 꽃과 나무 잔뜩 자라나는 골목길을 거닐고 학교로 갑니다.
 인성학교 아이들은 동네마실을 하듯 꽃과 나무 잔뜩 자라나는 골목길을 거닐고 학교로 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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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딸 법도 한 배추인데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골목집 옥상에 마련해 놓은 텃밭에서 가꾸는 배추포기들입니다.
 이제 딸 법도 한 배추인데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골목집 옥상에 마련해 놓은 텃밭에서 가꾸는 배추포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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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꽃이 노랗게 노랗게 피어납니다.
 배추꽃이 노랗게 노랗게 피어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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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실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아기도 잠듭니다. 인천시에서 관광지로 꾸며 놓은 ‘옛 개항로’를 거닐면서, 큰돈 들여 세우거나 올린 건물보다, 이처럼 골목동네 사람들이 손수 가꾸는 골목꽃과 골목풀이 한결 아름답고 싱그럽지 않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아기도 잠듭니다. 인천시에서 관광지로 꾸며 놓은 ‘옛 개항로’를 거닐면서, 큰돈 들여 세우거나 올린 건물보다, 이처럼 골목동네 사람들이 손수 가꾸는 골목꽃과 골목풀이 한결 아름답고 싱그럽지 않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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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이 드나들고, 사진찍으러 다니는 사람 많은 이 골목에서 키우는 꽃그릇에 ‘손을 대는(도둑질하는)’ 사람이 꽤 많은 듯합니다. 그저 눈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면 될 텐데, 왜 우리는 서로서로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려 할까요.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고, 사진찍으러 다니는 사람 많은 이 골목에서 키우는 꽃그릇에 ‘손을 대는(도둑질하는)’ 사람이 꽤 많은 듯합니다. 그저 눈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면 될 텐데, 왜 우리는 서로서로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려 할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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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는 다방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 간판을 고스란히 살려 놓은 곳도 많습니다. 이와 같은 다방이며 구멍가게며 옛 가게들은, 이 간판 그대로 훌륭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인천에는 다방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 간판을 고스란히 살려 놓은 곳도 많습니다. 이와 같은 다방이며 구멍가게며 옛 가게들은, 이 간판 그대로 훌륭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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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 아저씨를 길에서 만나 함께 밥과 술을 나누었고, 아기도 미역국과 밥술을 얻어먹습니다.
 사진쟁이 아저씨를 길에서 만나 함께 밥과 술을 나누었고, 아기도 미역국과 밥술을 얻어먹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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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하루일을 마칠 무렵, 찹쌀떡 아저씨가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갑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일을 마칠 무렵, 찹쌀떡 아저씨가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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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골목길, #골목마실, #골목여행, #인천골목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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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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