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우리나라에 시집온 사람, 이들을 흔히 '결혼이주여성' 또는 '결혼이민자'라 부른다. 아이도 낳고 국적도 취득한 이들은 그야말로 한국인. 그런데도 이런 저런 꼬리표를 붙여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취업 기회까지 불공평하게 주어진다면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기 고국의 교육제도 차이로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인 한 여성이 취업을 위한 국가자격시험을 앞두고 교육과학기술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연을 소개한다.
모호한 초중등법, 대학 진학 경우만 외국 학력 인정
10년 전 필리핀에서 시집와 경남 사천에서 보금자리를 튼 로첼 A. 마나다(33)씨. 그녀는 현재 간호조무사를 꿈꾸며 후원자의 도움으로 간호조무사양성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고 올해 10월에 있을 간호조무사 시험에 대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런데 간호조무사 시험 등록을 앞두고 큰 절벽을 만났다.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이 되는 지 여부를 교육과학기술부에 문의한 결과 "사례가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자격시험 중 하나인 간호조무사 시험은 광역자치단체별로 치르고 있다. 여기서 전국 공통의 응시자격요건 중 하나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이 12년인데 비해 필리핀은 10년이다. 그럼에도 로첼A 마나다씨가 정상적인 고교과정을 마쳤다고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현행 초중등법시행령 제98조(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의 학력인정) 1항은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상급학교의 입학에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와 같은 수준의 학력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1항9호에서 "외국에서 12년 이상의 학교교육과정을 수료한 자 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우리나라의 12년 이상의 학교교육과정에 상응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외국의 교육과정 전부를 수료한 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12년 이상의 학교교육과정에 상응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외국의 교육과정 전부를 수료한 자"라고 언급한 대목은 지난해 6월에 추가로 들어간 부분이다.
결국 필리핀이 고교과정까지 10년밖에 안 되지만 우리나라는 고교졸업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남은 문제는 그 조건이 "상급학교의 입학"에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학에 진학할 경우에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부는 "유권해석을 받아 봐야 한다"는 답변을 민원인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경상남도에 확인한 결과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이미 교과부에 판정을 신청한 경우도 있었다.
K씨는 지난 3월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하지만 고교졸업 학력 인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자격증을 전달 받지 못했다. 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K씨는 한국인으로서, 고등학교 과정을 중국에서 마쳤다고 한다. 현재 K씨는 교과부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에게 고교검정고시는 너무 큰 부담
교과부의 유권해석이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로첼A 마나다씨는 고교졸업인정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이 검정고시 통과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녀는 마음을 졸이고 있다.
마나다씨는 "검정고시를 쳐야 한다면 지금 들인 시간보다 몇 배 더 써도 될까 말까 하다"면서 교육당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려 주기를 기대했다.
마나다씨를 대신해 교과부에 확인을 요청한 이정기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장을 갖는 것은 가정의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이들의 취업에 걸림돌이 없도록 제도 전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로첼 A 마나다씨의 간호조무사 꿈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어찌 보면 교과부의 답변은 다소 엉뚱하다. 법 개정으로 교육과정이 10년이든 12년이든 상관없이 고교학력을 인정한다면 마나다씨에게도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외국고교학력 모든 대상에 문제를 삼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교육당국의 판단에 따라 보육교사 자격증 등 이와 유사한 자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의 희비도 함께 엇갈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