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대 교수 124명으로 시작된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열흘 만에 서명 인원 5000명을 넘겼다(전체 시국선언 참여자는 15일 현재 1만명 돌파). 지난 14일까지 학교 이름으로 발표된 시국 선언문의 숫자만 101개. 이는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 수의 30%에 육박하는 숫자다.
청와대와 일부 보수언론은 잇따르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소수 의견'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5공화국 말기, 1987년 6월 항쟁 때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수들의 수가 2000명을 채 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5000명은 결코 '소수의견'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숫자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오랜 책무 중 하나였다. 5000명의 교수들은 무슨 이유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키워드 분석 ①] '표적수사'-'악법'-'개악', 나쁜 말 다 모였네
3일부터 14일까지 발표된 시국선언문은 200자 원고지 805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선언문마다 몇 가지 내용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눈에 띄게 반복되는 내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시국선언문 중 '노무현'은 총 85번, '서거'는 53번, '검찰'은 81번, '수사'는 65번, '이명박'은 184번, '사과'는 40번, '사죄'는 8번 등장한다. 특히 '수사' 중에서도 '표적수사'라는 표현이 9번 쓰인 것이 주목할 만하다.
그 다음으로는 정부와 여당에서 6월 국회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미디어법 발의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많았다. 선언문에 참여한 교수들은 미디어법의 발의를 '언론 장악'으로 판단하고 이를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선언문 중 단어 '언론'은 128회, '미디어'는 87회, '장악'은 22회, 그리고 '악법'은 22회 등장한다.
'고치어 도리어 나빠지게 함'이라는 뜻의 '개악'이라는 단어도 3회 반복되는데, '악법'과 '개악'은 '미디어' 이외에도 '비정규직'(32회)과도 조합되어 쓰였다. 한나라당은 올 6월 안에 한 회사가 신문과 방송을 함께 경영할 수 있게 하는 미디어법을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키워드 분석 ②]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34회), '결사의 자유'(34회), '기본권'(39회)도 자주 반복되는 어휘였다. '결사의 자유'라는 표현은 모두 '집회'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이 단어들이 사용되는 문장은 모두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이 지켜지고 있지 않으니 보장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255회), '퇴행'(15회), '후퇴'(59회) 등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20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불법, 폭력시위가 예상되는 도심 대규모 집회의 경우 원칙적으로 허가하지 않고, 불법행위자는 검거를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또한 얼마 전 6.10 범국민대회에서는 경찰이 도망가는 시민을 방패로 찍고 진압봉으로 폭행하는 동영상이 촬영돼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각각의 시국선언문에는 이 밖에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내용('사법부' 26회,'독립' 32회 사용됨)과 소수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벗어나 약자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라는 내용('소수' 28회, '기득권' 19회 사용됨)들이 반복되었다.
'소통'(70회), '연대'(10회), '화합'(20회)도 선언문에서 자주 쓰인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대다수의 시국선언문들이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 '화합을 위한 노력'을 꼽았다.
국민 60%, 교수 시국선언에 동감
한편 국민들의 10명 중 6명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교수 시국선언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8일 전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59.6%가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 내용에 '공감하는 편이다'고 응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체의 32.2%였고, 지역적으로는 대구 경북지역의 50세 이상,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공감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공감하지 않는다'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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