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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생존권 보장윽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생존권 보장윽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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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고용하고 싶은데 비정규직법 때문에 해고하는 걸까

오는 7월부터 사용기간 2년이 만료되는 기간제 근로자의 대량해고가 우려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 노동부에서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법개정안을 내놓았다. 노동부는 이러한 법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올해 초에는 '7월 100만 해고 대란설'을 유포하더니, 최근에는 '올해 7월 이후 1년간 70만-100만 해고설'을 퍼뜨리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해고를 부추킨다며 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사용자단체에서는 이참에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법이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제한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라는 애초 취지로부터 어긋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용자는 계속 고용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일까? 그 나쁜 법조항 때문에?

이러한 모든 주장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제한한 법의 취지를 뿌리부터 부정하고, 법 조항의 취지와 효과를 왜곡하고 있다.

이 점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행법상 사용자는 사용기간이 2년이 넘은 비정규근로자(기간제근로자)와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연장한 계약의 기간이 종료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점만이 달라질 뿐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기간제근로자'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말한다. 즉, 6개월이나 1년 등의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근로자를 말하는데, 이 경우 사용자는 계약기간의 만료에 따라서 근로계약의 종료나 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점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고용의 불안정, 나아가서는 생활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행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조 1, 2항).

이 조항의 취지는 사용자가 2년 이상 근로자를 장기 고용하면서 단기 계약직 근로자를 반복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면 근로자의 고용과 생활이 불안정해지고, 근로자의 지위가 사용자에게 지나치게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그러면 현행법에서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가? 전혀 아니다. 단지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의미는 2년기간을 넘겨서 '6개월', 혹은 '1년'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그러한 계약기간의 만료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으며, 해고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사용자가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 이것이 해당 법조항의 입법취지이고, 이것 자체를 사용자 단체와 현재의 정부가 다시 뒤흔들고 있는 것이 현재 사태의 본질이다.

현재 대다수 언론에서는 현행법이 2년 이상된 비정규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을 기업이 감당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 이 또한 사태를 호도하는 보도이다. 현행법 4조는 사용자의 해고의 남용을 제한하는 취지일 뿐 근로조건의 상향조정 등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사용자는 2년 기간이 지난 기간제 근로자를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 혹은 계약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던 기존의 근로조건과 별 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미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여러 은행들(부산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에서도 그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사용자는 2년 기간이 지난 기간제 근로자와 기존의 계약을 그대로 연장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계약기간 그 자체의 의미, 근로계약기간의 종료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사용자의 편의성은 사라진다. 이것이 기간제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법취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용자단체는 이 정도의 제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3년, 4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에 근로자를 고용하면서도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 사용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은 위와 같다. 그래서 계속 고용하고 싶지만, 법 때문에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사용자단체의 주장, 그리고 이를 확대하는 언론의 보도는 거짓이다. 또 해고대란을 막고 비정규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노동부의 주장이나,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 또한 원래의 법조항의 취지를 왜곡하고, 또 법개정의 진정한 효과를 은폐한다는 점에서 거짓이다.

비정규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사용자에게 사용기간이 만료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권장하고 유도할 일이다. 또, 기업사정이 정 어려우면 그냥 계약을 연장하도록 권장할 일이다. 다만, 지속적인 업무에 근로자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니만큼, 정당한 이유 없이 함부로 해고할 수는 없게 된다는 것이 고용관계의 기본 규범이라는 점을 사용자에게 상기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노동부가 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경제 위기로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해고대란설'을 퍼뜨리면서 비정규근로자의 남용을 막기 위한 유일한 제한인 사용기간을 오히려 연장하는 안을 내놓았다. 노동부는 노동법을 개정하려 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단체와 제대로 된 의논 한번 왜 못할까. 노동정책의 퇴행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신원철 기자는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비정규법개정, #해고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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