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몸이 아프면 찾는 곳은? 당연히 병원이다. 특히 큰 병에 걸린 사람일수록 병원 의존도는 물론 의사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의존도가 높다 해서 신뢰도도 높다고 할 순 없다. 그건 양방의원이나 한의원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묻는다. 어디가 아프냐고. 그러면 환자는 대답한다. 어디어디가 이렇게 저렇게 아프다고. 그러면 양방 병원에선 사진을 찍자거나 내시경을 통해 확인하자고 한다. 한방병원에선 물리치료를 겸해서 침을 놔준다. 헌데 사진을 찍어도 그 증상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의사들은 약을 처방하고 며칠 두고 보자는 말을 한다. 침을 맞아도 그땐 시원한 것 같은데 하룻밤 지나면 도로아미가 된다. 그래서 우스겟소리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병을 낫게 하면 병원 문 닫게.'
이런 의사들의 모습을 통렬히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104세인 장병두 할아버지다. 장 할아버진 요즘 의사들을 인술이 아니라 상술로서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병을 가지고 장난 치고 위협해서 돈을 벌어먹는 세상이라고 한탄한다. 한 마디로 의료계든 법조계든 환자부터 보호하려는 마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탄식한다.
그렇게 말하는 장병두 할아버진 누구인가. 장병두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신의로 불릴 정도로 인정받는 민중의술의 대가이다. 그는 난치와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왔고 완치도 시켰다. 병원에서 포기하고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왔고 그는 그들을 치료했다. 그런데 그는 자격증이 없다. 그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장 할아버지는 요즘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곧 있을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란 선고를 받았다. 죄목은 단순히 의사면허증 없이 환자들을 치료해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병원에서 다 고쳐주면 환자들이 굳이 내게까지 오겠어요? 병 잘 고치면 되지, 그까짓 면허가 무슨 소용이야. 죽겠다는 사람 있으면 우선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닌가 말이야."장 할아버지의 현대 의사들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지금의 의사들은 머리 터지게 공부하고도 환자들에게 아픈 증상을 다 물어본다. 그리고 처방을 내리거나 약을 짓는다. 그게 무슨 의사냐 하는 것이다. 의사라면 환자가 병증을 말하기 전에 알아내고 고쳐줄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장 할아버진 그럼 어떻게 진료할까. 할아버진 진찰할 때 환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얼굴색이나 진맥만으로 증상을 알아내고 처방을 내리고 치료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만 따르고 기계의 힘을 이용하지 못하면 병의 증상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는 현대의학을 비판한다. 물론 장 할아버지의 생각이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순 없다. 현대의학의 힘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다 보면 장 할아버지의 비판에 사람을 고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하겠다.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다신의(神醫) 장병두 할아버지의 삶과 의술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는 현대의학에 대한 반성을 담아내고 있는 건강서이면서 장병두 할아버지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가 전하는 의학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이 책은 장병두 할아버지가 구술하고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있는 방광수가 엮은 글인데 할아버지의 구술 내용과 생각들을 적절하게 풀어놓았다.
이 책은 단순한 의학서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의학적 상식을 알아가는 즐거움 있지만 장병두 할아버지의 삶과 우리의 역사, 여기에 우리가 있고 지냈던 우리 민족의 정신도 배울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삼독에 빠져 찬란한 우리만의 역사의 꽃을 피워왔으면서도 자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아름다움을 잊고 지냈다며 한숨을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는 삼독에 빠져있어. 첫 번째는 중국의 독에 빠져 있고, 두 번째는 일본의 독에 빠져 있고, 세 번째는 미국의 독에 빠져 있지."이 삼독에 빠진 결과 우리는 우리의 것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외면했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의술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수많은 침쟁이와 뜸쟁이들이 무면허라는 이름하에 쫒겨났다고 한탄한다.
요즘 미국에선 대체의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중국도 침이나 뜸 같은 전통의술을 보존하고 활성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침구사 같은 시험 자체를 없애 버렸다. 침구사 자격증이 있다하더라도 뜸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면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당 김남수 선생의 판결만 봐도 그렇다. 구당 선생은 침 하나로 불치병을 고치고 뜸을 이용해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친 걸로 유명한 민중의술이 대가이다. 얼마 전엔 암투병 중인 배우 장진영 씨를 뜸으로 치료하는 걸로 유명세를 탔는데 침구사 자격증은 있지만 뜸을 사용하는 구사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법 위반으로 인하 자격정지 판결을 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자격증도 없는 장병두 할아버진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수많은 환자들이 장 할아버지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호소하고 탄원을 하고 있지만 이 나라의 법은 의사자격증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손을 묶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92년 무면허 침구사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라고 말한 황종국 전 부사지방법원 재판장의 말은 법조계에 있는 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말이다.
올해 104살의 장병두 할아버지의 소망은 단 한 가지다. 책의 제목처럼 맘 놓고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장 할아버진 어린아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겐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포기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을 이용해 환자들을 고쳐주고 이 나라의 잘못된 의료법이 개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사장되어가는 우리민족의 전통의술이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 장병두 구술 및 감수 / 박광수 엮음 / 정신세계사 / 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