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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이 된 쌍무덤
 꽃밭이 된 쌍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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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리움이 그리 많아서 저렇게 흐드러졌을까?"
"그리움이 깊으면 정말 꽃으로 피어나는 거야?"
"그렇다니까. 어디 꽃인들 그냥 마구 피어나겠어? 모두 그리움이 너무 깊어서 피어난 거야"

지난주에 오른 아차산에서 용마산 길을 지나 망우리 공동묘역에 들어섰을 때였다. 왼 편 길가에 있는 무덤은 잔디가 자라지 않아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그 무덤 주변에 노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 무덤가에서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사람이 사진을 찍으며 하는 말이었다.

저 무덤의 주인공도 그리움으로 주변에 꽃을 피웠을까?
 저 무덤의 주인공도 그리움으로 주변에 꽃을 피웠을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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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꽃밭 무덤
 언덕 위의 꽃밭 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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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먼저 죽으면 내가 그리워 저렇게 예쁘고 노란 꽃으로 피어날 거야?"

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앞장서 걷던 아내가 뒤돌아보며 내게 하는 말이었다.

"당신을 그리는 그리움의 꽃으로 피어날 거냐고? 물론이지, 그런데 난 노란 꽃이 아니라 붉은 꽃으로 피어날 것 같은데, 새빨간 꽃, 그런데 당신은?"

아내가 농담을 시작했으니 그냥 넘어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나도 농담을 던졌다.

문무인석까지 거느린 꽃밭 무덤
 문무인석까지 거느린 꽃밭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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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저렇게 많은 꽃을 피웠을까?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저렇게 많은 꽃을 피웠을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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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노란 꽃이 좋은데, 그런데 여름철뿐만 아니라, 나는 가을철에도 꽃을 피우고 싶은 걸, 향기로운 들국화로,"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여름철뿐만 아니라 가을꽃까지 피우고 싶단다.

"거참, 노친네들이 재밌네 그려, 사랑 타령할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정력이 남아 있는 청춘인 것 같아, 허허허"

옆에서 부인과 같이 걸으며 빙긋이 웃고 있던 친구가 주책이라는 듯 껄껄 웃는다.

"하긴 그리우면 꽃이 된다는 노래가 있긴 있지, 오래전에 이용복이 불렀던 달맞이 꽃이라는 노래 말이야, 가사를 모두 기억할지 모르겠군"

꽃과 잡초가 뒤덮인 무덤
 꽃과 잡초가 뒤덮인 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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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아래 아늑한 무덤에도 꽃들이 흐드러지고
 소나무 아래 아늑한 무덤에도 꽃들이 흐드러지고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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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되었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친구가 흥얼흥얼 옛 노래를 부른다. 같이 걷던 친구부인과 아내도 따라 부른다. 무덤이 즐비한 산길을 걸으며 부르는 옛 노래가 구성지다. 아니 구슬프다.

노란 화관을 쓴 무덤
 노란 화관을 쓴 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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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꽃밭이 된 묘지
 그리움의 꽃밭이 된 묘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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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평균수명이 80세 가까운 시대가 되었다 해도 60을 넘겨 살았으면 언제든지 죽을 준비를 하고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부다. 너무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일치된 생각이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리움은 남을 것이다. 죽음이 그리움마저 앗아가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이야 힘든 세상살이에 그리울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야 그리움 밖에 더 남아 있겠는가.

초여름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 무덤과 주변에 흐드러진 노란 꽃들도 어쩌면 그리움으로 피어난 꽃들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거나 사위어 질 줄 모르는 아쉽고 그리운 정 말이다.

무덤은 초라해도 그리움의 꽃대궐
 무덤은 초라해도 그리움의 꽃대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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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그리움, #망우리, #공동묘지, #노란꽃,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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