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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등록금 대출금리 연 5%대로 낮춘다'는 기사를 읽었다. 주위에 학자금대출 받는 친구들이 많은 나는 반가운 마음에 공익근무 중인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었어? 등록금 대출금리 5%대로 낮춘다네. 잘됐다!"
"그런데?"

등록금 부담이 줄어든다는 이 '기쁜 소식'을 천진난만하게 전하는 나에게 동기의 대답은 어찌 좀 냉랭하다. 당황해 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5%든 7%든 내가 '빚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거든."

그랬다. '등록금 천만시대'에 대출금리 1~1.5% 낮춘다는 것은 이미 몇 백만 원의 빚이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감당해야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허공을 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저 졸업한 뒤에 빚을 갚아야 하는 예정된 '빚쟁이'들일 뿐이다.

하소연을 시작하는 동기를 보니 아무래도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는 나를 보자 마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야, 내가 '반값등록금'만 믿고 MB 뽑았지, 고작 대출금리 그만큼 낮출 줄 알았나?"

정치인의 허황된 선거공략이야 하루 이틀 일이겠냐 만은 '반값등록금'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혹'한 것은 사실이다. 한심한 듯 눈을 부라리는 나를 보며 애교스럽게 한마디 덧붙인다.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촉구하는 예술, 이공계열 대학생대표자 대정부 농성선포식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촉구하는 예술, 이공계열 대학생대표자 대정부 농성선포식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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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내가 뽑았으니 할 말이 없네"

농담이었지만 자진해서 사과하는 동기를 보며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한없이 치솟는 등록금 문제가 가장 중대한 사안이었으니까. 막다른 골목에 서있던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리라. 일부 대학생들이 'MB정부'를 지지했던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결과였을 지도 모르겠다.

"유럽여행? 배낭여행? 나 같은 빚쟁이한테는 꿈나라 얘기"

"학생이라면서 공부보다는 알바한 기억이 더 많은데, 또 언제까지 채무자로 살아야 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에 대한 기억은 사실 별로 없다. 늘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수업 끝나면 바로 사라졌고, 수업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밤새 일한 뒤,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만을 떠오를 뿐이다. MT도, 교내행사도 잘 참여하지 못했던 그는 일명 '아웃사이더'였다.

"나, 그래도 장학금 받고 입학한 몸이야."

순간 놀랐다. 내가 아는 그의 학점은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으니까. 자신도 민망한지 "물론 열심히 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라며 "알바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생이 그렇듯, 그는 대학에 입학 한 후로 집에서 받는 용돈이 일절 끊겼다. 등록금은 휴학을 해서라도 혼자 감당하리라 약속했다고 한다. 편하게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불평할 만도 했으나, "대학생이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다행히 1학년 1학기는 장학금으로 부담 없이 학교를 다녔으나 다음 학기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그 당시 편의점 야간 알바의 시급은 3700원 정도. 당연히 그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는 없었다. 방학이 시작하면서 물류창고에서 하루에 아홉 시간씩 일을 했다. "어쩔 때는 밤을 새기도 했다"며 "방학 세 달을 창고 안에서만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돈으로 2학기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그는 겨우 한 학기를 마쳤을 뿐이다. 2학기에도 주말마다 일당 알바를 하고, 부모님 일을 도와가며 용돈벌이를 했다. 연애도 했단다. 방학에는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물류창고에서 일했지만 등록금 마련은 힘들었다. '연애하다가?'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만뒀다. 피 끓는 20대가 연애하는 게 죄인가.

결국 2학년 1학기는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치기간(일정기간 이자만 지급하고 원금상환을 유예하는 기간) 없이 3년의 상환기간을 정한 뒤 한 달에 약 10만원씩 갚아 나갔다. 군 복무를 위해 휴학을 했고 지금은 공익근무 수당으로 충당하는 중이라고 한다. 내년 2월이면 원금을 모두 상환하지만 졸업까지는 여전히 다섯 학기가 남아있다.    

"한 학기 등록금이야 휴학도 했으니 3년 만에 갚는 거지. 다음 학기부터는 대출금이 쌓일 텐데…거치기간 두고 상환기간까지 합하면 10년은 잡아야해. 유럽여행? 배낭여행? 다 꿈나라 얘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대학생들을 볼 때면 한숨만 나온다. 기껏 알바하며 힘들게 졸업하고도 10년 동안은 '채무자'로 살아야 할 그는 지금도 "매월 20일(분할 납부일)이 다가오면 가슴이 갑갑해진다"고 했다. 또한 바로 복학을 못한다면 "30살에 졸업할지도 모른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꿈꿀 수 없는 내 동기의 부탁, 들어줄 수 있을까

학자금대출신용보증기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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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민기자로 활동한다는 내 얘기를 듣고, 기사를 쓰게 된다면 이 얘기는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빚져가며 대학오기는 싫었지. 하지만 남들 다 가는 대학 안 가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면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들었다. 담배 연기라면 인상부터 찡그리고 보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내 기사가 그의 쓰린 마음이나마 풀어줄 수 있을까.
  
치열한 대학생들의 삶을 보면서도 아직은 어설픈 '펜질'탓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가 미안해진다. 비록 동기 한 명의 얘기밖에 풀어놓지 못하는 취재능력도 부끄럽다. 이 얘기조차 이 땅의 수많은 대학생들의 모습을 대변해주지는 못하리라. 이 보다 나을 수도, 훨씬 처절할지도 모른다.

정부가 대학등록금 대출금리 1~1.5% 낮추겠다는 계획이 실질적으로 우리네 부모님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정의 부담이야 덜어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고액의 등록금이다. 당장에야 '반값등록금' 공약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무리가 있는 줄은 알지만 현재 대출이자 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이다.

취재를 할 때면 "기자란 사람이 정확한 정보력도 없으면서 현실을 왜곡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정부와 각계 전문가가 신중하게 내놓은 계획이며, 그 실질적인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기는 하느냐고 비난한다면 달게 받겠다. 그들의 판단이 일개 시민기자의 눈보다 정확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오늘 만난 내 동기가 남은 5학기 동안 받을 학자금 대출로 졸업하고도 무려 십 년은 채무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내가 전해야 할 엄연한 '팩트(fact)'다.

대화를 끝내며 문득 동기의 꿈이 궁금해졌다. 학교 다니며 간간히 쇼핑몰 사업에도 도전하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다. 물론 '자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포기해야 했지만.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꿈? 마흔 살 되기 전에 빚 다 갚는 거야."

돌덩이도 씹어 먹을 나이, 스물넷인 내 동기에게 아무래도 꿈이란 건 사치인가 보다.


태그:#대학등록금, #대출금리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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