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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불구속)는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심화시킨 여러 요인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청와대와 검찰 그리고 언론 등이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연히 읽을 수 있다.

 

<피디수첩>이 '긴급 취재 -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한 것은 작년 4월 29일이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은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면 안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한 것이 프로그램 방영보다 앞선 4월 21일의 시점임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피디수첩>으로 인해 더 많은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피디수첩>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의 내용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이른바 조중동이 보도했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 내용을 확인, 보강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년 여름 한철을 달군 광우병 촛불시위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위기를 맞이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진 데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반대 의지가 강했던 이유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상승적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이미 다수 국민의 의식 속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실망감과 거부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사과했는데 검찰은 기소하나

 

그로부터 1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오히려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물론 이것은 명백히 이명박 정부의 실정 탓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모든 것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초한 국정 난맥의 원죄가 모두 촛불에 있다는 매우 비약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촛불 시위가 그릇된 정보에 감염된 나머지 일어난 것이라고 보며, 여기에 <피디수첩>의 선동이 있었던 것으로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자기들이 무죄가 되고 촛불이 유죄가 된다. 그러니 어찌 <피디수첩>을 가만 놔둘 수가 있었겠는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마자, "피디수첩의 광우병 방송이 총체적으로 왜곡·조작됐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충격적이며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논평한 심리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논리의 성급함과 초조함이 들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 사태에 대해 '아침이슬'까지 거론하며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작년 6월 19일이었다. 그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불찰이 있었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이런 사과를 한 다음날인 6월 20일에 농림수산식품부는 검찰에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는 점이다.

 

때를 맞춰 정부·여당에서 "조속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검찰은 6월 26일 임수빈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피디수첩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이어서 7월 16일 방송통신위원회는 <피디수첩>에 '시청자 사과'라는 제재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8월 12일 문화방송은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사과 방송이 나간 데다 검찰 수사도 잠잠해진 터라 우리는 이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12월 29일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다. 수사를 지휘하던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돌연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것이다. 그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처리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공직자의 명예훼손죄 성립 한계와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의 침해 등 아주 민감한 민주주의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최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런 일로 검찰이 동원(?)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가 바뀐 2009년 2월 9일 검찰은 <피디수첩> 사건을 형사6부에 재배당하고 전면 재수사에 착수한다.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은 <피디수첩> 제작진을 정식으로 고소했고 (3월 3일) 뜬금없이 쇠고기 수입업자들도 진정서와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문화방송>에 방송 원본 테이프를 비롯한 방송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어서 검찰은 이춘근 피디를 체포했으며(3월 25일) 문화방송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노조 반대로 무산되었다(4월 8일). 그러자 검찰은 김보슬 피디를 체포(4월 15일)하더니, 조능희 피디와 작가도 체포했다(4월 27일).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피디수첩> 기소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이 물러난 틈을 타 제작진 전원을 기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검찰의 수사는 정도 이상으로 집요했고 필요 이상으로 광범위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8일 이루어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나타났다. 검찰이 작가와 피디 사이에 오간 개인 이메일을 공개한 것이다. 이것은 피의사실 공표를 넘어 사생활 침해이자 인격 모독으로서 명백히 실정법에 위배되는 짓이다.

 

불과 며칠 만에 재현된 검찰과 언론의 합작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을 벼랑으로 내몬 실체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 일이 불과 며칠 만에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19일자 인터넷판에 개인의 메일 내용을 톱기사로, 그것도 부풀려서 전하고 있다. 어떻게 수백 편의 메일 중에서 따온 한두 문장을 근거로 사람을 단죄할 수 있는 것인지?

 

<조선>과 <동아>는 사설에서도 피디수첩 제작진을 매도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모든 것이 노 전 대통령 사건 때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케 한다.

 

'MB에 대한 적개심으로 광적(狂的)으로 했다'(조선)

'광우병 제작진, 정권의 생명줄 끊으려 했다니'(동아)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이 도를 넘고 있음을 본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비상식적인 언론관을 선보이더니 반대하는 언론마다 형사처벌이라는 칼끝을 들이대는 비민주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검찰은 작년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 혐의를 적용하여 불구속기소했다. <한국방송>이 2005년 국세청을 상대로 한 법인세 환급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배임이라는 요상한 논리였다.

 

검찰은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을 벌여온 <YTN> 기자들을 기소했다. 특히 노사합의로 사측이 고소를 취하했음에도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4명을 기소한 것은 그 저의가 언론 탄압에 있음을 드러낸다. 검찰은 5월 14일에는 전국언론노조의 파업을 이끈 최상재 위원장과 박성제 전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을 업무방해 및 미신고 불법집회 개최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은 단기정권의 말기현상   

 

정권 말기 현상 가운데 하나가 '언론 탄압'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말년에 언론 탄압이 극심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하지만 두 정권은 10년 이상씩이나 유지된 장기 권력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들에 비하면 단기정권에 불과하다. 불과 집권 1년 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론을 탄압했던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언론 탄압에 검찰을 동원하는 것은 언론자유는 물론 사법권마저 타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이런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검찰에 있다. 그들은 기소를 독점하고 있는 최상위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검찰은 정권 이상으로 정부 반대 세력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무엇이든지 그들 손에 들어가면 '무죄'가 '유죄'로 된다. '유검유죄 무검무죄'라고나 할까? 그들은 '사법정의 실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요즘 검사들의 관심은 오로지 개인적 영달에만 있어 정권에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6세>에는 "법률가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섬뜩한 대사가 나온다. 또 한 "법률가는 더 이상 훌륭한 법률가와 비열한 법률가로 양분되지 않는다"는 자크 바전의 말은 바로 한국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헨리6세'의 대사가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 바 있는 자크 바전이 만약 한국 검찰을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태그:#검찰, #피디수첩,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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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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