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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PD수첩>(자료사진)
MBC (자료사진) ⓒ MBC

 

검찰이 <PD수첩> 광우병 프로그램 제작진을 기소했다. 실망스럽긴 하지만 검찰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현 상황에서는 '슬프게도'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이 작가의 개인 이메일 중 일부를 발췌해 자료로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했다는 소식은 충격의 강도가 지나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검찰은 제작진 기소를 합리화하기 위해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편지나 일기는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허락 없이 타인의 편지나 일기를 보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정보화 시대에서 사적인 이메일은 편지에 준하는 것이다. 검찰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인류의 보편적 상식을 뒤집는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제작이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 행위도 아니며, 작가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강력범죄 피의자도 아닌데 말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그런 가치를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은 검찰에 의해 유린됐다는 것은 너무 큰 모순이다.

 

검찰이 공개한 작가의 이메일 내용에는 "출범 100일 된 정권의 정치적 생명줄을 끊어놓고…"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검찰은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 또는 공평성 상실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고 판단했다"며 이메일 공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 <PD수첩> 제작진의 정치적 의도를 강조하면서 "그 (정치적) 의도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의 하나가 김 작가의 이메일"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마지막에 김보슬 PD도 나오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 제작진과 심정적 공유가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검찰은 <PD수첩> 광우병 프로그램이 왜곡된 내용을 담았으며 제작진이 악의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왜곡이 일어났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마음까지 통제하고 나선 검찰과 MB정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지난 4월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지난 4월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유성호

 

검찰이 공개한 내용을 한 가지씩 짚어보자. 이메일 내용을 보면 작가는 이명박 정부를 몹시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한 사람들 중 50% 이상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선 투표율이 62.9%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전체 국민 중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리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이명박 후보를 죽도록 미워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미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현 정부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 놓고 싶다는 마음을 친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메일에서 표현한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것을 문제 삼은 것은 정부와 검찰이 사람의 마음과 사적 공간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MBC는 공영방송이고 <PD수첩>은 시사 프로그램이므로 제작진이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정치적 의도가 방송으로 표현될 때는 개인의 목적 달성이 아닌 정부 정책의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목적에 맞춰진다.

 

그러므로 방송은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시청자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의무다. 따라서 시사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의도의 존재가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고 정치적 의도 때문에 왜곡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촛불집회 나선 국민들은 판단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작가가 정부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제작진이 정치적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악의"를 가지고 "공평성 상실"이 판단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송의 내용은 시청자가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방송이 "악의"를 가지고 "공평성"을 잃은 채 왜곡된 주장을 한다면 시청자들은 다른 정보와 비교해 방송 내용을 판단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어만 치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시청자들이 왜곡된 정보를 가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결정이 이뤄졌을 때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 다양한 자료를 찾아 공유했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했다. 자료 공유에 나선 사람들 중에는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PD수첩> 광우병 프로그램이 "악의"를 가지고 "공평성"을 잃은 방송을 했다면 이미 시청자들의 판단을 받았을 것이다. 검찰의 주장은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는 방송의 특수성, 특히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을 통해 즉각 평가가 이뤄지는 현재의 방송 환경과 인터넷 정보 공유 환경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주장이다.

 

사실 검찰의 <PD수첩> 제작진 조사와 기소를 지켜보면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정부와 경찰이 <PD수첩>이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정부와 검찰이 작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왔던 모든 사람을 자기 주장이나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 모두 <PD수첩> 방송을 보고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됐으며 그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인신공격이며 명예훼손이다. 사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자율 학습 능력, 자율 판단 능력, 자율 행동 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배후에서 조종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그 많은 날들을 길거리에서 보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결정을 내리며, 집회나 모임을 만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니 소통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지난해 5월29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에서 수만명의 시민,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지난해 5월29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에서 수만명의 시민,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계속 귀 막고 대화 안 하면, 저항은 계속될 것

 

정부는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두드러져 보이는 몇몇을 잡아들이면, 경고의 메시지도 보내고 시끄러운 상황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현재 조사받고 있거나 기소 당했거나 이미 잡혀 들어갔거나 한 사람들은 결코 국민들의 정치 참여와 저항의식을 독려하는 배후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정보를 공유하고 조금 더 일찍 앞에 나선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뒤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처음의 앞줄이 없어져도 계속 앞줄이 생기는 상황이다. 이들은 모두 자율 판단과 결정에 따라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부가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아무리 경고를 주고 협박을 해도 그만둘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해결책은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들의 소리를 듣고 진심어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인데 그런 의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고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피디수첩기소#광우병쇠고기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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