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세 살인 황필남(마산) 할머니. 60여 년 전 결혼해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을 잃었다. 당시 뱃속에 있었던 딸아이는 올해 나이 60살이 되었다. 남편은 언제 죽었는지 몰라 제사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지내고 있다. 손녀의 손을 잡고 온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들리지 않지만 억울함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함안에서 온 최용중(76) 할아버지. 억울하게 잃은 어머니의 한을 풀기 위해 온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거제에서 보도연맹원으로 있었던 형한테 먹을거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징역형(10월)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복역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희생된 것이다.
회원 중에 가장 젊은 배기현(38)씨는 접수를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고, 그 뒤 아버지는 국가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으며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씨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7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원한을 풀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온 마산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마산유족회' 창립총회가 20일 오후 마산 양덕동 소재 경남도민일보사 강당에서 열렸다. 전국유족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1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총회는 '창립'이라고 했지만, 엄격히 말하면 '재창립'이다. 1960년 6월 12일 노현섭·김용국(작고) 등 100여 명의 유족들이 마산상공회의소 회의실에 모여 '마산유족회'를 창립했던 것. 그러나 마산유족회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렇게 강제해산됐던 마산유족회는 창립된 지 49년 8일만에 재창립됐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전국유족회' 회장도 맡았던 노현섭씨는 당시 일기장에 "장내는 울음바다였다"고 기록해 놓았다. 노현섭씨의 아들 노치수씨가 갖고 있던 당시 창립총회 사진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몇몇은 손수건과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 장면이 나온다.
마산유족회 재창립, 지난 4월부터 논의
마산유족회 재창립 논의는 지난 4월 시작되었다. 김도곤, 송시섭, 권영철, 배기현씨 등 10여 명이 처음 만나 논의를 시작했고, 그동안 몇 차례 회의를 거쳐 이날 창립총회를 연 것.
지금까지 마산유족회에는 63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지난 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7월 5일부터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군과 경찰, 형무관들에 의해 마산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 최소한 717명이 인근 산골짜기에서 총살되거나 구산면 원전 앞바다에서 집단수장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희생자 중 358명의 구체적인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들은 당시 마산에서 1500~2000명이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희생자들은 마산 앞바다에 수장되었는데, 일부 시신이 육지 쪽으로 떠밀려 왔다. 증언에 의하면, 현재 마산 구산면 안녕마을~옥계마을 사이 야산에 29기, 구산면 남포~심리 사이 야산에 9기가 묻혀 있다.
"국민 보호해야 할 국가로부터 두 번씩이나 학살당했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김종현·정혜열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와 김영만 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김태근 전 진주유족회장, 강병현 진주유족회장, 서봉만 진실화해위 조사관 등이 참석했다.
마산유족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국민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로부터 두 번씩이나 학살을 당했다"면서 "그 첫 번째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이었고, 두 번째는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한 유족회 강제해산과 간부들의 구속, 그리고 부관참시였다"고 밝혔다.
"이제 남은 우리의 사명은 더욱 분명하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아무런 저항수단도 갖지 않은 비무장 민간인을 합법적인 재판도 없이 무자비하게 수장 또는 총살하는 방식으로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거나 암매장한 사실은 어떠한 말이나 논리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반인권, 반인륜적인 국가범죄다."
"이러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묻어둔 채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고, 범치를 외치는 것은 모두 말짱 헛말이며 위선에 불과하다. … 다시는 물러서지 않겠다. 48년 전 쿠데타정권의 탄압이 다시 벌어진다 해도 이제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그런 결의를 위해 우리는 다시 여기에 모였다. 다시 마산유족회 창립을 선언한다."
이날 유족회는 임원으로 노치수 회장, 김도곤 김원희 황양순 부회장, 배기현 간사 등을 선임했다. 또 백남해 신부와 이상길 경남대 교수, 이광희 인제대 교수,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부장을 자문위원으로 두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집단학살에 대해 즉각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또 "특별법을 제정하여 지속적인 유해 발굴과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을 위해 추모비를 세우고 지역 단위 추모공원을 조성할 것", "미신청 유족을 위해 신청기간 연장과 미해결 사건의 철저한 조사를 위해 진실화해위 기간 연장과 관련 법을 즉각 개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노치수 회장 "앞으로 합동위령제, 위령비 건립 등 계획"
노치수 회장은 "억울한 죽음이었다"면서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유족회를 만들면서 힘들었다"면서 "유족들의 주소를 몰라 찾거나 연락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처 정부에 신청하지 않은 유족들이 많은데, 300여 명에 이른다"면서 "신청 기간 연장 등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산유족회는 오는 10월경 합동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노치수 회장은 "합동위령제를 해야 하고, 위령비도 세워야 하며, 무엇보다 유골을 발굴하는 일이 급한데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마산시청과 마산동부경찰서 관계 공무원도 참석했다. 이날 총회 사회를 본 김주완 자문위원은 "오늘 창립총회에는 마산시장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다음에 합동위령제 때는 꼭 참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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