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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20일) 오후 2시. 육순, 칠순, 팔순, 구순 등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모두가 첩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위 '007 가방'을 들었다. 그 속에 뭐가 들었을까. 왜 그들은 이렇게 모일까.

 

"요새 뭐하고 사는 겨?"

"아, 그거야 텃밭이나 쬐금 가꾸고 살지."

"그거 아는감. 건넌 말 영식이네 손녀딸이 결혼 했다는디."

"그려. 나 못 가 봤구먼."

 

만나자마자 서로의 안부보다 마을 돌아가는 소식, 이웃 소식부터 털어 놓는다. 차림새로 봐서는 시골 마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이다.

 

드디어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한 사람이 꺼내기 시작하니 연쇄적으로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뭔가를 꺼낸다. 풍물놀이 할 때 입는 옷이다. 그 속엔 꽹과리 채, 상모, 장구 채 등도 함께 들어 있다.

 

조금 있으니 누군가 또 온다. 그는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다. 그도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다른 노인들과 비교하면 풍물놀이 옷의 색깔이 다르다. 그가 바로 안성남사당의 살아있는 전설 김기복 선생(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21호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기능 보유자)이다. 모든 안성남사당놀이는 그로부터 나온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남사당놀이의 기능을 모태로 안성남사당풍물놀이가 복원되고 재현된다.

 

"얼쑤, 신명나게 한 번 놀아 볼까."

"아, 좋지."

 

김기복 선생의 꽹과리가 '칭칭칭'울린다. 신명나게 한 판 벌어진다. 그를 중심으로 장구도, 징도, 태평소도, 상모도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마치 예행연습을 치밀하게 한 듯 신명나면서도 조직적이게 한판이 돌아간다. 조금 전만 해도 날씨가 더워 힘없이 처져 있던 어르신들은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다. 모두가 딴 사람들이다.

 

돌고 또 돌고, 순서대로 나가고, 몇 번은 엇갈리게 돌고, 상모를 돌리고, 장구소리가 흥겹고, 태평소는 신명나게 울어대고. 그 순간 20평 남짓한 공간엔 100년 묵은 '전통'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렇게 하기를 40여 분. 무아지경, 삼매경이 따로 없다. 그들은 잠시 나이를 잊고는 청년이 되고 만다.

 

"아, 이제 고만 햐. 힘들어."

"그려. 고만 하자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명난 한마당을 끝낸다. 아무리 신명나게 놀아도 나이는 감출 수 없는 듯. 얼굴에도 등에도 땀이 흠뻑. 한여름 6월 말의 더운 날씨가 그들의 땀을 몇 배로 쏟아지게 했다.

 

시작하기 전 그들의 얼굴과 끝나고 난 후 그들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고, 그래서 하고 싶고, 즐겨하는 일을 원 없이 마음껏 끝낸 사람들의 얼굴에선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서로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보면서 뭔가 큰일을 해낸 듯 서로를 격려한다.

 

이렇게 신명난 한 판을 위해 힘쓰는 이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외도하지 않고 15년 동안 안성남사당보존회를 섬겨온 이상철 조교다. 그는 모임이 있으면, 미리미리 연락하고, 보존회의 살림을 사는 등 어르신들을 섬겨왔다. 그가 설명하는 이 모임의 역사와 매력을 들어보자.

 

"1982년부터 '안성남사당풍물놀이 보존회'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꼬박 28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동안 초창기 어르신들 중 10여 분이 돌아가셨지요. 지금 어르신들 중 최고령자가 92세지요.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유치원생, 초등생, 중고생, 청년부터 92세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죠. 참여하는 놀이꾼들도 남녀노소이고, 구경하는 구경꾼들도 남녀노소라는 것이 남사당놀이의 매력이죠. 또한 남사당놀이 안에는 소위 전통적인 놀이의 요소(풍물놀이, 줄타기, 마당놀이 등)가 거의 모두 들어가 있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옆에서 열심히 듣고 있던 조명숙 씨(보존회 원로 중 유일한 홍일점)는 한 마디를 더 거든다.

 

"신기하게도 이 옷(풍물놀이 옷)을 입으면 힘과 신명이 절로 난다니께유. 평소 티격태격 하던 노인 양반들도 이 옷만 입으면 하나가 되어 신명나게 잘 놀지유. 이 옷에서 신명이  빼어나오나 봐유. 호호호호"

 

그렇다. 서양에는 옷만 바꿔 입으면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슈퍼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이 있다면, 한국 안성에는 옷만 바꿔 입으면 자칫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 문화를 지켜나가는 이들 어르신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성남사당풍물놀이보존회(031-675-3925)는 1982년에 시작되었다. 현재는 유치원생부터 구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명의 놀이꾼들이 참여하고 있다. 평일엔 후진 양성(청년 조교들이 청소년 후배들에게)을 하고, 토요일엔 원로들이 연습을 한다. 점차 사라져가는 남사당풍물놀이 문화를 복원하고 재현하는 일에 최고 목적을 두고 있는 이 모임은 그동안 전국 각 지역의 지역축제마당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초청되어 수십 차례 공연을 했다. 이 모임의 정기공연은 해마다 8월 24일 안성시내 강변공원에서 ‘한 여름 밤의 콘서트’로 열린다. 올해도 준비되어 있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보존회#안성남사당#김기복선생#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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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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