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은 서울 근교 5개 산을 하루 동안 종주하는 대회에 참가한다. 특별한 목적은 없지만 평소 산을 좋아하는 까닭에 서울 강북권을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5개 산을 종주산행한다. 이날은 하루종일 산에서 전해오는 정기에 취하고, 겨우내 다져진 1년 체력을 점검해 본다. 나만의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인 셈이다.
지난 21일 일요일. 이른바 '불수사도삼'으로 불리는 서울 근교 5개 산을 종주했다. 매년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이맘때면 진행되는 '런다 오산종주 산악울트라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이 대회에 개인적으론 2007년부터 세 번째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2007년엔 13시간 8분, 2008년엔 13시간 21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러나 이 대회는 기록이 공인되는 완주제한시간이 13시간이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까지는 종주를 마쳐야 '완주기록증'을 받을 수 있다. 첫 대회는 사전에 종주코스를 제대로 인식못해 제한시간외 완주를, 작년 두 번째 대회는 첫 대회를 그대로 답습하는 방심 끝에 역시 제한시간외 완주를 기록했다.
삼각산 대남문에서 의상봉 능선을 거쳐 북한산성매표소로 하산하는 마지막 구간은 제한시간내 완주여부를 결정짓는 '마의 구간'이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이젠 다 왔겠지' 하는 기대와는 달리, 꾸준히 눈앞에 나타나는 5개의 봉들은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구간이다.
매번 이 '마의 구간'에서 체력과 시간관리를 제대로 못 해 제한시간 내 완주를 기록하지 못했다. 대회에 참가해 하루종일 고생하며 종주했는데 완주기록증 하나 받지 못하는 심정.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허무감, 혹은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 일요일 대회는 이 두 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한시간 내 완주를 목표로 5산종주 '삼수'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런다오산종주산악울트라마라톤 '삼수' 도전기대회날인 일요일 새벽 3시까지 내리던 비가 그친 새벽 4시. 출발장소인 중계본동 104마을 복지회관 옆 공터에서 450여 참가자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비는 그쳤지만 전날 밤새 내린 빗방울을 머금은 풀잎과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기, 습기찬 숲길을 뚫고 불암산 정상에 오르니 새벽 4시 50분. 짙은 운무로 인해 산아래 시야는 전연 볼 수가 없었다. 지난 두 번의 종주대회에서는 환하게 밝아오는 새벽 서울 동북권 모습이 무척이나 쾌청했던 기억이다.
불암산을 빠른 속도로 하산해 덕릉고개를 거쳐 다시 수락산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르니 아침 6시 20분. 빗물이 흘러내리는 미끄러운 바위길을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기도 하고, 아찔하기까지 한 홈통바위를 거쳐 하산해 동막골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시각은 아침 7시 30분. 이곳에서 한 마라톤동호회가 제공해 주는 시원한 미숫가루 음료를 마시니 한결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습도가 무척 높은 상태에 기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온몸은 그야말로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능선 정상에서도 바람이 전연 불지 않는 날씨는 종주산행하는 참가자들의 탈진과 갈증을 더해주었다. 동막골 체크포인트에서 마신 두 잔의 미숫가루 음료는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해 주는 더할 나위 없는 청량제였다.
동막골을 지나 회룡역 사거리를 거쳐 사패산 범골매표소에 이르는 의정부시내 구간에서는 편의점에서 캔커피와 캔콜라, 방울토마토를 구입했다. 마라톤 등 운동을 즐기다 보면 운동할 때 가끔은 필요한 커피와 콜라의 효능(?)을 알게 된다. 더불어 잠깐의 허기와 갈증해소를 위한 방울토마토로 사패산과 도봉산 종주산행을 대비했다.
사패산을 오르는 구간에서는 해가 떠오르며 습기가 증발하면서 품어내는 무더운 열기로 인해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비슷한 속도로 오르막길을 오르던 주자 한 명은 줄곧 헛구역질과 구토를 해댔다. 세 번 참가한 이 대회에서 참가자가 구토하는 모습은 이날 처음 보았다. 그만큼 이날의 기온과 날씨가 참가자들에겐 곤욕 그 자체였다.
사패산 정상에 오르니 아침 9시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12시간 내 완주가 가능한 시간이었다. 이곳까지는 사전계획대로 종주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사패산 정상에서 쉬지 않고 바로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을 타고 산불감시초소 체크포인트에 도착했다. 통과확인 날인을 받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운무가 살짝 덮인 도봉산이 그야말로 천혜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여 도봉산 자운봉을 거쳐 우이암 체크포인트에 도착하고 보니 시각은 오전 11시 10분. 원통사를 거쳐 우이동매표소로 하산해 우이동 버스종점 부근에 이르니 11시 50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식당에서 시원한 열무국수를 시켜 점심을 해결했다. 식당주인이 전해주는 시원한 매실음료 한 잔까지 더불어 마시니 속이 다 시원해 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삼각산 위문까지 오르는 구간은 체력보다는 그야말로 극기, 정신력이 더 요구되는 구간이다. 마음을 다잡고 도선사를 오르는 구간. 햇살이 그대로 내리쬐는 아스팔트 길을 오르는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은 다리 경련을 호소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니 종아리에 핏줄이 솟아있고 근육이 뭉쳐있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고행인 셈이다. 사실, 종주를 포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구간에서 종주를 포기한다.
마음을 비우고(?) 오르막길을 오른 끝에 삼각산 도선사 입구 가게에서 얼음생수 한 병과 역시 캔커피와 캔콜라를 한 병씩 사서 배낭에 넣었다. 마지막 탄환인 셈이다. 백운산장과 위문에 오르는 구간은 역시 등산객들로 붐볐다. 매번 경험하는 곳이지만, 이곳 산행길은 병목현상이 발생해 산행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구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위문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1시 20분. 사전계획인 12시간 완주 페이스로는 오후 1시에 도착해야하는 구간이었다. 고갈되는 체력과 무더위, 발 디딜 틈없이 붐비는 등산객들로 인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요인들은 결국, 13시간 제한시간 내 완주라는 목표로 자연스럽게 타협하게 되었다.
비좁은 등산로와 수 많은 등산객들 사이를 요령껏 피해 북한산성 주능선 동장대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2시 20분. 이제는 제한시간내 완주라는 목표가 가시거리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칼바위능선 초입과 보국문, 대남문 체크포인트를 거쳐 마지막 의상봉 능선이 한눈에 펼쳐보이는 나한봉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3시 20분. 제한시간까지 1시간 40분이 남은 시각이었다.
그동안 두 번의 제한시간 내 완주에 실패했던 가장 큰 요인이었던 이 마지막 의상봉능선 코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이곳 시각을 체크해 보면 겨우 1시간 남짓 남은 시각 밖에 없었다. 경험으로 볼때 이곳에서 의상봉 능선을 이루는 5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최종 12번 째 체크포인트인 의상봉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었다. 의상봉에서 최종완주지점까지 하산하는데 걸리는 시간 30분 정도를 더 감안하면 제한시간 내 완주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 의상봉 능선길은 역시 극한의 정신력을 요구하는 힘든 구간이었다. 마지막 남은 체력을 바탕으로 '목숨같은' 생수 반 병과 '파워젤' 하나에 의지해 위험구간을 조심스럽게 종주했다. 드디어 마지막 체크포인트인 의상봉 정상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4시 25분. 최종완주지점까지 하산해야 하는 시간은 이제 35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통과확인 날인을 받고 가파른 하산길을 시간계산을 하며 조심스럽게 쉬지 않고 내려왔다. 산에서 나와 완주지점에 이르는 평탄한 도로에 들어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렸다. 몸은 땀에 절여 피곤하고 체력은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지만, 완주지점을 향해 달리는 두 다리는 가볍게만 느껴졌다.
최종 완주 기록은 12시간 54분 30초. 두 번의 제한시간내 완주에 실패한 '삼수'끝에 드디어 나만의 작은 목표를 이룬 셈이었다. 마치 지난 3년 동안 해결하지못한 '까탈스러운 숙제'를 드디어 풀어낸 느낌이 들었다. 완주기록증을 받아들고 근처 계곡물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고 미리 준비한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 비 내린 다음 날 몰려든 습한 무더위와 능선 정상에서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날씨 속에 하루종일 산(山)사람이 되었던 날. 비록 체력은 고갈되고 몸은 힘들었지만, 산 속에서 온종일 보낼 수 있어 행복(?!)했던 날이었다.
전날 내렸던 많은 비는 산행내내 사우나처럼 높은 습도로 진땀 흘리게 만들었지만, 완주지점인 북한산성매표소 옆 계곡가를 풍성하게 넘쳐 흐르게 하고 있었다. 5산종주산행을 마친 후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잠시 몸을 담그니, 온 몸의 독소가 모두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런다 오산종주 산악울트라 마라톤대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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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7회를 맞이한 런다 오산종주 산악울트라 마라톤대회는 서울 강북권을 둘러싸고 있는 불암산(507m), 수락산(638m), 사패산(552m), 도봉산(739m), 삼각산(북한산, 836m)을 이어 종주하는 대회다. 마라톤을 즐기는 동호인들로부터 명품대회로 잘 알려져 있다.
대회 진행은 대회 당일 새벽 4시에 불암산 청록약수터를 출발해 다섯 개 산을 종주해 마지막으로 삼각산 의상봉능선을 거쳐 북한산성 매표소로 오후 5시까지 하산해야 한다. 완주제한시간은 13시간으로 걸어서는 제한시간내 완주가 불가능하다. 일반 등산객들은 보통 18시간에서 21시간 사이로 종주산행하는 코스다.
대회는 매년 6월 중순경 신청 선착순 최대 500명으로 참가를 제한한다. 참가비는 별도로 없다. 대회는 서바이벌 방식(식수, 식사 모두 참가자 준비)으로 진행되고, 제한시간 내 완주자에게는 완주기록이 인쇄된 완주증이 제공된다.
5개 산 정상부위에 마련된 각 체크 포인트와 능선 주요 길목에 마련된 총 12개 체크 포인트에서 감독관들의 통과확인 도장 날인을 받아야 한다. 제한시간내 완주해도 이 날인이 하나라도 빠지면 완주로 인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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