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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 금정 산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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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은데 비까지 내린 지난 일요일. 모처럼 막내 형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아! 도저히 집에 있기 힘들다. 비가 와도 산에 가자 !" 나는 형님의 말이라면 거절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정말 앞을 가릴 수 없는 짙은 안개밭 속을 형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리 금정산 장군봉을 향해 올랐다.

문
▲ 안개속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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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형제 간의 어린시절의 기억은 항상 아름다운 사진 한 장으로 떠오르리라. 그러나 정말 뒤돌아보면 그 아름다운 흑백 사진 같은 기억 속에는 아름다움보다는 아픈 기억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형님과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50년대. 그때 가난하지 않은 가정은 별로 없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나는 형님이나 누나의 보호로 그 가난의 고통을 덜 느꼈다.

그러니까 형님이나 누나들은 나를 부모처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얀 안개밭을 걸으며 올라가니 새삼 '테오 앙겔로풀로스 '영화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그 영화 속의 누나도 어린 동생을 위해서 두 배의 고통과 어려움을 감당해야 했다. 막내 형님은 지금도 나를 어린애처럼 생각하고 걱정해 준다. 만나면 무뚝뚝해서 별로 말이 없지만, 형님의 사랑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고 뱀이다 !
▲ 이 뭐꼬 ? 아이고 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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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을 가릴 수 없는 안개밭을 형님은, 월남참전 용사답게 용감하게 앞장 서서 걸어갔다.  조금 숨이 찬 걸음으로 따라가다가 제법 큰 바위 하나를 만났다. 그런데 그 바위 속에 지팡이 같은 것이 꽂혀 있는 것처럼 보여 가까이 다가가는데 "동생아 ! 위험하다. 물러서라"라며 형님이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했다. 놀란 내 얼굴을 쳐다보며 형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생아 ! 상서로운 뱀을 만났으니 앞으로 네 한테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하고 말했다. 정말 산에서 뱀을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기는지 모르지만, 형님의 말씀에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 용기 백배 내어 뱀이 숨은 바위에 다가가 찰칵하고 뱀 사진을 난생 처음 찍었다.

딸기
▲ 산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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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산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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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이 피어나는 무열(霧列) 속에 가려 장군봉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형님은 또 앞장 서서 묵묵히 행군했다. 그러면서 형님은 뒤돌아보지 않고 소리 쳤다.

"동생아 ! 넌 이 형님만 믿고 따라 온나."

내게 형님은 정말 언제나 든든한 산이다. 월남 참전에 얻은 고엽제 병과 싸우면서도 항상 손에서 일손을 놓치 않는 형님이시다. 그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형님이 있어 행복했다. 뚜벅뚜벅 안개밭을 헤치고 앞장 서는 형님의 뒷모습은 내가 넘어가야 할 정상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안개
▲ 산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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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의 풍경
▲ 안개 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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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다
▲ 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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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금>-'이호우'

속의 풍경
▲ 안개 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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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행복을 바위에게 말하라
더욱 순수한 곡조는 울리지 않나니
즐거이 진실히 네 감정도 이 곡조처럼 도로 숨는다.
<바위>-'F. 우징거'

풍경
▲ 안개 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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