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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처음 사귄 싱가포르 친구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게 있다. 하나는 태형이 진짜로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럴 섹스가 법으로 금지된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것이다.

태형에 대한 답은 쉽다. 지금도 태형이 이뤄지고 있으며, 태형의 대상이 되는 범죄는 불법입국이나 기물파손 같은 것부터 동성애까지 다양하다. 싱가포르 여행 도중 난동을 부리다 잡힌 미국 청년 마이클 페이가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4대의 태형에 처해져, 국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태형에 대한 싱가포르의 태도는 단호하다. 태형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으며, 엄격한 법질서 유지를 위해 앞으로도 태형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오럴 섹스는 조금 복잡하다. 영국 식민 통치 시절인 1871년 제정된 법률에 의하면 '자연스럽지 못한 성행위'는 금지되며, 여기에 오럴 섹스가 포함된다. 실제로 경찰관이 미성년자와 오럴 섹스를 했다가 징역형을 받기도 했고, 여자친구와 오럴 섹스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선 청년도 있었다.

이불 속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은밀한 행위까지 간섭하는 이상한 나라라는 놀림이 부담스러웠던 싱가포르는 결국 지난 2007년 오럴 섹스를 합법화했다. 이성 성인 사이의 경우일 때만 허용한다는 단서를 붙이고서 말이다.

태형과 오럴 섹스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태도, 여러분이 보기엔 어떤가.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형벌인 태형과 개인의 이불 속 은밀한 행위마저 간섭하고야 말겠다는 과도한 법치만능주의는 국민소득 5만 달러의 경제 부국 싱가포르를 '뿌레땅 뿌르국' 수준으로 낮춰 보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하지만 이런 싱가포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두고 마냥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요즘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자니 그렇다.

태형의 경우 비인간적이긴 하지만 그것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따른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은 태형의 대상이 아니다. 16세에서 50세까지의 건강한 남자에 국한된다. 외국인이라고 봐 주는 건 없다. 태형을 집행할 때는 의사가 반드시 참석하며, 장기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허리에 복대를 두른다.

한국에서는 태형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다. 하지만 백주대낮에 경찰의 군홧발 아래 여대생도, 노인도, 학생도, 외국인도 짓밟히곤 한다. 이젠 성직자마저도 팔이 꺾이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히는 실정이다. 경찰의 작전으로 인해 여섯 명이 불에 타 죽기도 하는 곳이 한국이다.

곤봉으로, 방패로, 때로는 주먹다짐에, 물대포까지 동원되고 경찰의 비호 아래 용역 깡패가 대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역설이지만 차라리 싱가포르처럼 원칙 정해 놓고, 의사 입회하에 태형을 행하는 게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지난달 30일 오후 '노동탄압분쇄·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려는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한 가운데, 덕수궁 주위에 모인 시민들 일부가 서울광장 진출을 시도하자 경찰들이 방패를 옆으로 세우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노동탄압분쇄·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려는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한 가운데, 덕수궁 주위에 모인 시민들 일부가 서울광장 진출을 시도하자 경찰들이 방패를 옆으로 세우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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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럴 섹스 역시 마찬가지다. 오럴 섹스가 한때 불법이긴 했어도 일부러 오럴 섹스를 단속하지는 않았다. 배우자의 불륜에 화가 나서 오럴 섹스를 가지고 법정에 세우는 바람에 드러나거나,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추궁하다가 함께 걸려들 뿐이다. 경찰이 몰래카메라를 들이대며 오럴 섹스를 지켜보지는 않는다.

한국은 오럴 섹스는 단속하지 않지만 개인의 이메일을 뒤진다. 수백, 수천의 개인 메일을 뒤져, 기어코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을 끄집어내는 게 한국 검찰이다. 그리고 그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나무라기는커녕 개인 메일 내용을 1면 톱 기사로 올리는 게 한국 신문의 수준이다. 오럴 섹스 장면을 누군가 훔쳐보는 것보다 내 개인메일을 다른 사람이 뒤져보는 것이 덜 불쾌한 일은 결코 아니다.

가슴 설레던 첫사랑의 고백,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부끄러운 과거사, 이명박에 대한 나의 적개심, 지난 주말에 구입했던 성인기구 내역, 내가 가입한 사이트 목록…. 이런 것들을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에게 다 드러내야 하는 상황은 불쾌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싱가포르 친구가 이제 내게 되묻는다. 한국에서 시위 구경하면 진짜로 몽둥이로 때리느냐고. 개인 메일 잘못 쓰면 잡혀가기도 하느냐고.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런 미개한 나라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고 당당하게 답해야 하는데, 난 우물쭈물하다가 그만 답을 않고 만다.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 국민들 때리지 말고, 개인 이메일 뒤지지 마라. 망신스러워서 외국에서 못 살겠다.


태그:#이명박, #이메일 검찰, #폭력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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