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전해줄 물건이 있어 모 초등학교에 들렀다. 후배 교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상한 일이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기에 들어보니 그냥 웃어넘기기에 좀 아쉬운 이야기다.
모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이 초등학교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돈을 빼앗다가 학교측에 걸렸단다. 선생님들이 가해 아이들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문제를 잘 처리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직원회의 시간에 전직원 앞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죽창 들고 설치는 민주노총 노조원들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망가졌다'면서 일장 훈시를 하셨단다.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전체 교직원을 앞에 앉혀 놓고 말이다.
아니, 조무래기 아이들 괴롭히고 '삥' 뜯는 것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비행청소년들과 민주노총 집회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연관성 있는 일로 연결될 것 같지 않는데 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는 그 연세에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더운 날씨에 그만 '오버'하신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하신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시위를 하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돈을 갈취했다는 소식 듣지 못했고, 중학교 아이들이 붉은 머리띠 두른 채 '팔뚝질'하고 운동가요를 부르며 조무래기 아이들 어르고 '삥' 뜯었다는 말 듣지 못했다.
학교에 있다 보면 '레드 콤플렉스'라 해야 하나, 정신질환이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 단체들을 증오하고 계신 분들을 만날 수 있는데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그런 분 가운데 한 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학교 바깥 주변 사람들한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해주면 '설마'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합법화된 지 언젠데 아직까지 그런 분이 계실라고. 그것도 아이들 가르치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서…."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부분 그리 생각할 것이다. 하나도 덧붙이지 않은 사실 그대로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공무원 노조의 시국선언 관련 기사가 나서 읽으면서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생각이 났다.
공무원노조가 시국선언을 할 경우 정부의 방침대로 사법처리와 징계가 가능할까. 정부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공무원법의 '복종의무' 조항은 업무에 국한된 것이어서 시국선언은 불법이 아니라며 맞서고 있다.
(중략)
전공노와 민공노에서 해직 공무원 122명이 노조 전임으로 근무 중인 것도 명백한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정부는 그 근거로 비공무원의 공무원노조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공무원노조법의 규정을 들었다. 행안부는 시국선언에 해직 공무원이 참여하면 이들 노조를 불법노조로 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도록 노동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 노조의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도마에 올랐다.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조 전임으로 활동 중인 해직 공무원들이 노조로부터 받는 '희생자 구제기금'은 공무원 임금과 같아서 지난해에만 전공노와 민공노에서 이들에게 88억원이 지급됐다"고 보고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공무원이) 불법파업으로 해고돼도 생활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이와 함께공노총(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민공노, 전공노의 일부 간부들이 2007년부터 노조예산으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구입해 서울에서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세계일보>, '정부가 밝힌 공무원노조 탈법·모럴해저드 사례' 중에서
공무원노동조합이 하려는 시국선언이 불법이냐 아니냐를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몇 년 전 전국의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122명의 공무원들이 해직당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그 해직자들에게 공무원노동조합에서 생계비를 지원하고 해직자들은 노동조합 전임자로 조합의 일을 하고 있다.
아니 노동조합을 위해 일하다 해직된 동료를 돕는 것이 모럴헤저드인가? 기사에 나온 내용을 보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불법파업으로 해고되어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나는 것이 문제'란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살고 있는 대변인과 그 분을 청와대의 얼굴인 대변인으로 임명한 또 한 분의 그 당당함이 차라리 부럽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행정안전부장관은 한술 더뜬다. 노조원들이 조합예산으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구입했단다. 아니 노동조합 간부가 되면 서울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 조합간부가 부산 사람이고 가족이 부산에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공무원노조가 행정안전부에 조합간부 생계비를 지원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웬 관심이 그리 많을까 모르겠다. 차라리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내가 속한 전교조도 조합일 하다 해직되거나 노동조합 전임자로 일하게 되면 조합으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또, 지방에서 올라와서 간부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숙소로 허름한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서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하니까 '삐까 번쩍'할 것 같지만 행정안전부장관과 대변인은 아마도 그 아파트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전교조가 전세로 얻은 아파트는 전임자 여러 명이 같이 사용한다. 그러니까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합숙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럴 헤저드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보험시장에서 사용하던 경제용어로 정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감수하는 리스크로 자신의 책임을 소홀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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