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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낙동강 대교  후퇴하던 미군은 낙동강을 건너는 대교를 폭파하여 인민군의 남침 속도를 늦추려 하였다.
▲ 부서진 낙동강 대교 후퇴하던 미군은 낙동강을 건너는 대교를 폭파하여 인민군의 남침 속도를 늦추려 하였다.
ⓒ 왜관 전승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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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그 이름이 '6·25 동란'이었던 6·25.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그런데 그 '6·25 동란'이 지금은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6·25 전쟁'으로 나온다. '동란'이 '전쟁'으로 바뀐 것은 세계적으로 전쟁이 일어난 날짜를 전쟁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 유일한 경우가 바로 우리나라의 '6·25'. 외국에서는 다들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6·25를 우리만 유달리 '6·25 동란'이라 고집할 수는 없는 까닭에 결국 그 이름이 엉거주춤하게 '6·25 전쟁'으로 바뀐 것이다.

대구 시내 27개 중·고등학교 27개 학급 998명으로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기간: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6·25가 일어난 연도를 아는 학생은 전체의 59.2%인 591명이었다. 대략 10명 중 4명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연도를 알지 못했다. 현대사에서는 세계적 유례가 없는 민족상잔 6·25가 일어난 연도를 알지 못하는 학생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 교육적으로, 민족사적으로 문제이다. 비록 아는 학생이 과반을 넘었지만, '겨우' 절반을 넘는 학생들만이 '6·25'가 일어난 연도를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하기 때문이다.

대구 근교 유학산 설경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 중 한곳이었던 유학산. 12일 동안 무려 산의 주인이 15회나 바뀔 정도로 격전이 치러졌다. 학도의용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유학산 전투 때이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대구 근교 유학산 설경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 중 한곳이었던 유학산. 12일 동안 무려 산의 주인이 15회나 바뀔 정도로 격전이 치러졌다. 학도의용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유학산 전투 때이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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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상륙작전 학도병 전몰 기념비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북한을 혼란시키기 위해 경상북도 장사 앞바다에서 위장 상륙작전이 펼쳐졌다. 참가 병력은 대부분 학도병이었고, 이 곳에서 139명이 죽거나 바다에 빠져 실종되었다. 이곳 동해안 모래밭에는 지금 기념비가 쓸쓸히 서 있다.
▲ 장사 상륙작전 학도병 전몰 기념비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북한을 혼란시키기 위해 경상북도 장사 앞바다에서 위장 상륙작전이 펼쳐졌다. 참가 병력은 대부분 학도병이었고, 이 곳에서 139명이 죽거나 바다에 빠져 실종되었다. 이곳 동해안 모래밭에는 지금 기념비가 쓸쓸히 서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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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은 전쟁이 발발한 날짜이다. 전쟁이 끝난 날짜는 언제일까? 998명 중 '휴전'일을 아는 학생은 0.2%인 2명에 불과했다. 그것이 '휴전'이든 '종전'이든 전쟁은 일어난 것 이상으로 끝난 것이 중요한데, 그 날짜를 아는 학생은 단 0.2%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짜를 아는 것은 흔히 그것을 '6·25'라 불러왔기 때문이므로, 휴전 혹은 종전 날짜를 기억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통일의 필요성, 평화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5·18'이 일어난 도시를 아는 학생은 전체의 86.4%인 862명이었다. 모르는 학생이 13.6%인 것도 어떻게 보면 많은 수치이다. 그런가 하면,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고등학생들이 분기함으로써 마침내 4·19의 도화선이 된 '2·28'이 일어난 곳이 대구라는 사실을 아는 학생은 59.7%인 596명이었다.

설문조사를 담당한 교사들 중에는 "시내에 '2·28공원'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학생들이 '2·28'을 많이 아는 것 같다"고 해석했지만,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 살면서 대구를 상징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 '2·28'이 대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학생이 40.3%나 된다는 사실은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2·28'에 대해 좀 더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더욱이, '2·28'이 일어난 연도를 아는 학생은 18명으로 1.8%에 불과했다. 그나마 공원 명칭에 사용되고 있기에 '2·28'이 대구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일 뿐, 정작 그 연도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은 대구 학생들이 '2·28'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2·28'은 대구의 정신을 상징한다. '2·28'의 정신을 되살리는 교육이 시급히 필요하다.

2.28 당시 여학생들의 시위 광경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일어섰다. 사진은 여고생들이 거리로 나선 모습
▲ 2.28 당시 여학생들의 시위 광경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일어섰다. 사진은 여고생들이 거리로 나선 모습
ⓒ 2.28 대구민주운동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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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가는 고등학생들 헌병과 경찰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선 대구의 고등학생들을 연행하고 있다.
▲ 잡혀가는 고등학생들 헌병과 경찰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선 대구의 고등학생들을 연행하고 있다.
ⓒ 2.28 대구민주운동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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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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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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