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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을 당시의 높고 뾰족한 지붕이 남아있는 화랑대역은 1939년생 기차역입니다.
 처음 지을 당시의 높고 뾰족한 지붕이 남아있는 화랑대역은 1939년생 기차역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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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이란 단어는 쓰거나 말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고 낭만적인 감정이 드는 말입니다.그래서인지 간이역은 조금은 멀리 있는 기억 저편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어서 마음먹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만나지게 될까 그렇지 않을 땐 그냥 잊고 살기 십상인 존재이지요.

더구나 서울에 사는 저의 처지에서는 간이역은 현실과 생활속에서 더욱 멀게 느껴집니다.
며칠전 기차와 기차역의 정감을 너무 좋아한 어떤 분이 쓴 간이역 여행 책을 보게 되었는데 글쎄 거기에 서울에 아직도 존재하는 간이역이 나와 있더라구요. 그 이름도 멋진 화랑대역이 그곳입니다(화랑대는 화랑대역 옆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다른 이름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지도를 보니 전철 6호선의 거의 종점역이자 동명이인꼴인 화랑대 전철역에서 가깝더군요. 정확히는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널찍한 캠퍼스가 걷기 좋은 육군사관학교와 몇 개의 대학교, 숲속같은 태릉이 있어 위치도 좋은 것 같습니다. 참, 구내식당의 메뉴가 우리나라 제일이지만 일반인은 출입금지라 더 들어가고 싶은 태릉 선수촌도 있지요.

건널목 사이로 도심속을 힘차게 가르는 기차를 보니 무척 이색적입니다.
 건널목 사이로 도심속을 힘차게 가르는 기차를 보니 무척 이색적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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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서도 사람들을 태운 기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수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뙤약볕 아래서도 사람들을 태운 기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수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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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언제 지나갈까 기대하며 꽃이 활짝 핀 철길 옆을 걷는 기분도 괜찮습니다.
 기차가 언제 지나갈까 기대하며 꽃이 활짝 핀 철길 옆을 걷는 기분도 괜찮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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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역의 동생 태릉 건널목을 먼저 만나다

화랑대 전철역에 내려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화랑대 기차역을 찾아 갑니다. 200여 미터 정도 가니 빨간 무늬가 그려진 길다란 막대기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건널목이 나타납니다. 간이역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단어중의 하나인 건널목이 반가워 파란불이지만 건너지 않고 그냥 서있어 봅니다.

이 건널목은 태릉 건널목이라고 이름도 써있고 건널목 옆 두어 평 남짓한 작은 간이 건물에는 직원분들도 계시네요. 1939년 화랑대역이 처음 지어질 때의 원래 이름은 태릉역이었다니 이 건널목과는 형제관계가 분명합니다(육군사관학교가 6·25 이후 경남 진해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1958년에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땡땡땡♪ 귀에 익은 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해 있던 건널목의 길다란 막대기가 내려오더니 바삐 지나다니던 차도의 차량들을 막아 섭니다. 제아무리 커다란 덩치의 덤프 트럭들도 다른 차들과 함께 일렬횡대로 다소곳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도 모두 나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사주경계를 하며 곧 지나갈 기차를 마중하고 있는 모습이 무슨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것처럼 분주해 보이고 재미있네요.

곧이어 열차가 내는 쿠궁쿠궁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오면서 도심의 한가운데를 빠르게 지나갑니다. 밀림속 무서운 아나콘다 뱀이 지나가듯 일순 긴장했던 주위 풍경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빵빵거리는 차소리와 함께 각자 흩어집니다.

태릉 건널목 옆에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모양의 작은 표지판이 있는데 "기차역"이라고 만 써있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없이 화랑대 기차역이겠지요. 햇살이 정말 땡볕같던 날씨였지만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주는 치렁치렁한 그늘 아래로 화랑대(육군사관학교)의 후문과 이웃하고 있는 화랑대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대합실에 나무창틀을 한 커다란 창문들과 오목조목한 나무 의자, 탁자가 푸근합니다.
 대합실에 나무창틀을 한 커다란 창문들과 오목조목한 나무 의자, 탁자가 푸근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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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춘천..승차권에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가평, 춘천..승차권에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보이는 듯 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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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 기차는 춘천을 향해 힘차게 달려 갑니다.
 화랑대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 기차는 춘천을 향해 힘차게 달려 갑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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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먹은 문화재 간이역

화랑대 후문을 지키고 있는 젊은 헌병들이 보일 즈음 높다랗고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화랑대 기차역이 숨은 듯이 정말 고요하게 서있습니다. 지나가는 기차는 많으나 화랑대역에 정차를 하는 기차는 하루에 7번뿐이니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 한적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 눈에 봐도 간이역이라고 부를 만한 아담하고 소박한 역사(驛舍)가 이렇게 서울속에 존재하고 있다니 숨은 보석을 발견한 마냥 기쁜 마음이 앞섭니다. 1939년에 지어져 일흔 살이 되었으니 동네로 치면 재개발 대상의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철도공사가 고맙기까지 하네요. 역사 자체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커 2006년 1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문을 열고 역안에 들어가니 굳이 기차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듯,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와서 심심했는데 반갑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직원분의 표정이 편안합니다. 그야말로 소박함이 물씬 묻어나는 매표소이자 대합실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둥근 탁자가 쉬어 가라고 늘어서 있는데 그 모양이 참 푸근하고 나름 고풍스러워 한 번 앉아보게 하네요.

역장님이 그림을 좋아하는지 벽 곳곳의 빈 공간에 기차역과 아이들이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은 젬병이지만 사진을 즐겨 찍는 저로서는 이 기차역의 사계절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로 만들어 기증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생각을 직원분에게 농담삼아 얘기해 보았더니 잘 찍어서 한 번 보여 달라고 웃으시는데 꼭 해봐야 겠습니다.

밖에 유월의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역사 안이 더욱 포근하고 편안한 휴식처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에어콘도 설치하지 않은 작은 대합실이 이런 날씨에 덥기는커녕 시원하기만 합니다. 나무창틀로 된 창들이 밖이 다 보이도록 커서 채광이 좋고 통풍이 잘되어서 그런 것 같네요.

대합실 나무 의자에 혼자 앉아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서울에 있는 게 맞나 문득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심심할라치면 창밖으로 청량리역을 오가는 기차들이 지나갑니다.

청량리에서 춘천가는 기차를 가끔 탔는데 왜 화랑대역을 미처 몰랐을까. 간이역의 존재란 그런 것 같습니다.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어 소중한 우리들 같은 존재.

내년 2010년에 경춘선이 전철화가 되면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운명의 간이역이라 그런지 올 가을에도 겨울에도 찾아가 기억속에, 추억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은 기차역입니다.    


태그:#간이역, #화랑대역 , #화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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