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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토)

 

아침부터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오후 2시,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갑천 물골로 향했다. 양평을 지나 강원도 횡성으로 향하는 국도에는 점점 빗발이 굵어지고 있다. 홀로여행에 장맛비가 함께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럿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런저런 계획들로 쨍한 날씨가 좋겠지만, 홀로여행에는 장맛비가 무슨 대수람.

 

 

물골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우비를 입고 수수밭에서 일하고 계신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수수밭에 수수모종을 심고 있는 중이셨다.

 

이른 저녁을 먹었다.

 

상추와 고추, 왕씀배 이파리와 쌈장을 찬으로 공깃밥 한 그릇을 해치웠다. 어둠이 밀려오기 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이슬을 맺고 있는 꽃들을 몇 장 찍었다. 7시쯤 되자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집 앞 먼 산을 바라보니 깊은 산 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공책을 꺼낸다.

 

언제 정리해 놓은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책을 읽다가 메모한 것인지 내 생각을 정리해 놓은 것인지 모를 내용이 쓰여 있다. 홀로여행을 떠난 나에게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잘 맞는 말이다. 제목은 '딱, 일주일만 혼자 놀아라!'이다. 지금 내가 일주일은 아니지만 '딱, 3박 4일만 혼자 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일주일 혼자 놀면서 할 일들은 이렇다.

 

1. 잠을 실컷 자라.

2. 먹을 것을 실컷 먹어라.

3. 책의 바다에 빠져라.

4. 문명의 이기에서 떨어져 자연과 호흡하라.

5. 일기, 편지, 구상하라.

 

두 번째 것을 빼고 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골에서의 첫 밥상은 푸성귀지만 오랜만에 소박한 밥상으로 배를 채웠으니 실컷 잠을 자볼까?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라는 800쪽이 넘는 책과 영어책, 성경책이 있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실컷 잘까?'하다가 잠시 밖에 나갔더니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들짐승을 만나니 작은 것이라도 오싹하다.

 

나이 48, 이제 넉넉잡아도 4년 뒤부터는 내 인생 마지막을 걸고 평생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준비기간은 길어야 4년인 셈이다. 그런데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그 중압감 때문에 '딱, 3박 4일만 혼자 놀기 위해서', 재충전을 위해서 이 곳에 온 것이다.

 

물골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부터 껐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세상을 내가 소외시키는 거다. 세상이 나를 소외시킨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하나만 꺼도 반전이다.

 

 

내가 잘하는 것, 평생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했다.

 

사진, 글쓰기, 자급자족, 생태목회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은 직장에서의 업무 관련된 일들, 아이들 교육문제, 부모님 모시는 문제, 집안 갈등의 해소, 자신의 가치 상승 등이다. 당장 봉착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글과 삶의 괴리문제, 목회자로서의 영성문제, 우유부단한 성격 등이다.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다.

 

잠시 밖에 나가 산을 바라보는데 이름 모를 새가 운다.

 

인공의 빛과 소음이 없어 좋다. 밤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밤다운 밤을 오랜만에 맞이한다.이다.

덧붙이는 글 | 3박 4일간의 여행기의 첫번째 글입니다. 

물골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며 썻던 일기를 정리했습니다. 곧 휴가철,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5회로 나누어 저의 경험을 소개해 드립니다.


#나 홀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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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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