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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곤증이라고는 없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또 졸립다. 햇볕도 뜨거워 산책을 하기도 뭐하니 낮잠을 자는 것도 뭐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책을 들고 소파에 누웠다. 한 두어 시간 정도 정신없이 잤는데 꿈은 여전히 도시생활에 관련된 유쾌하지 않은 꿈들이다. 이제 겨우 이틀 홀로 지냈으니 도시의 때가 그대로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있으려니 생각했다. 궁금증에 핸드폰을 켜보니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그냥 핸드폰을 끄려는데 문자메시지가 또하나 도착한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확인을 누른다. 좋은 내용이었다.

 

'형, 쉬는데 방해될까봐 문자로 보낸다. 잘 쉬고 좋은 생각 많이 하고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미래를 꿈꾸다 오세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쇠뜨기에 대한 단상이기도 한데, 본질과 비본질, 뿌리와 가지에 대한 것이다.

나의 성격이 너무 강해서 곁가지 하나 포기하면 될 것을 뿌리째 들어낸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비굴해 보일지 몰라도 뿌리를 지키기 위해서 때론 곁가지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벽 한구석에 소나무 가지가 결려있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림에 피톤치드 성분이 많다고 하니 솔향은 인공의 방향제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의 곁가지를 쳐온 것들인데 나무는 곁가지(혹은 순)라도 대충 피우지 않는다. 밭에 토마토가 있는데 곁가지(순)을 쳐주지 않아 풍성하기만 하고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곁가지를 다 쳐주고 지주를 받쳐주니 엉성하지만 이내 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토마토의 곁순도 다르지 않았다. 뿌리는 하나인데 곁가지가 너무 많으니 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겠지만 어느 곁가지 하나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자연의 마음을 본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 아니라 때론 실한 열매를 맺지 못할지라도 함께 가는 마음이 자연의 마음이다. 못난 사람은 한 없이 서럽고, 오로지 잘난 사람들만 살판 난 현 사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노동과 휴식>

 

아내는 '그곳에서 쉴 때 절대로 일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늘 '노동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됨의 표현이다'라고 믿고 있었던(이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 제대로 된 노동을 하지도 못하고 소외된 노동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습성을 버리지 못해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잡초와 씨름을 하며 땀을 흘렸다. 육체노동, 정신노동과 비교하면 얼마나 거룩한 노동인가?

 

왕씀배를 뿌리째 뽑았다.

이놈은 쇠뜨기와는 달리 꺾이든지 아니면 온 몸으로 항거한다. 그 뿌리는 이른 봄 쌉싸름한 봄나물로 일품이지만 지금은 억세서 먹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누군가? 뿌리의 딱딱한 심지를 제거하고 부드러운 겉 뿌리만 먹으면 된다. 저녁식탁에 올릴 생각으로 손질을 했다. 생각만큼 많이 나오진 않지만 나 혼자 먹을 것이니 열 뿌리 이내면 충분하다.

 

몸에 땀이 밸 정도의 노동, 찬물로 샤워를 하고 책읽기에 들어간다.

완전 놀고먹기다.

이런 날들에 대해 사람들은 왜 인색할까?

 

<거룩한 밥상>

 

편안히 쉬면서 산책하고, 힘들지 않을 만큼 일하고, 밥을 먹는데 몸은 자꾸만 잠을 요구한다. 점심 후에도 낮잠을 두어 시간이나 잤는데, 산책을 하고 반찬을 해먹을 요량으로 왕씀배 뿌리를 다듬었는데 또 졸립니다.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 또 잠을 자다가는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물웅덩이에서 놀고 있는 올챙이들을 바라보았다. 웅덩이 근처에 돌미나리가 많다. 왕씀배 이파리와 돌미나리를 뜯어 간장, 고춧가루, 통깨, 참기름을 넣고는 다듬어 두었던 왕씀배 뿌리를 넣고 무쳤다. 맛이 기가 막히다.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기까지 대략 30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먹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별 흐르는 밤>

 

물골의 밤은 적막하다.

어둠이 깊어지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때론 온 몸이 쭈뼛해질 때가 있다. 귀 기울여보면 그냥 바람에 아귀가 맞지 않은 문틈 어딘가가 '덜컹!'한 것뿐인데.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소리들, 그래서 소음이 되어버려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도시화되면서 자연의 소리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작은 자들의 소리를 듣는 법도 잃어버린 듯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빛이라고는 내가 있는 곳에서 퍼져나가는 인공의 빛 외에는 없다.

불빛을 탐하는 산모기와 나방들이 창밖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창 단속을 해서 다행이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본다. 세상에! 별이 흐른다.

물골에서의 이틀 밤 동안에도 하늘을 보았지만 구름이 껴서 별을 볼 수 없었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별빛이 잔치를 벌렸다. 낮에도 초저녁에도 자꾸만 잠을 청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와 저속셔터로 별 사진을 담는다. 별빛이 너무 아름다운 탓에 별 궤적을 찍을 때 사용하는 벌브(B)셔터 사용법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 포토숍 처리를 할 요량으로 저속셔터로 150장정도 별 궤적 사진을 찍었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노력에도 만족할만한 사진은 얻지 못했지만, 별 흐르는 물골의 밤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3박 4일간의 여행기 셋째날, 하반부입니다. 물골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며 썻던 일기를 정리했습니다. 곧 휴가철,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태그:#별 궤적, #나 홀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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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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