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냄새가 우리가 호흡하는 바람 따라 숨결에 전해진다. 어제는 새로운 문화예술프로그램인 송파산대놀이라는 재미있는 창작탈춤프로그램을 개강했다. 처음에는 교육신청자가 얼마 없어 좀 신경이 쓰였지만 어르신의 몸에 맞춘 재미있는 교육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갑자기 모집 정원을 훨씬 초과하였다.
신토불이 우리 옷과 우리 하회탈춤의 표정을 담은 여자강사선생님의 신명난 몸짓과 걸걸한 웃음소리는 분위기를 한바탕 흥겨운 잔치판처럼 만들어 첫날부터 참 느낌이 좋았다. 그 느낌이 실감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어르신들의 땀이 마르는 냄새였다.
굴신과 불림이란 신나는 기본 품새를 배우면서
"얼쑤! 덜쑤!' 하거나 "
나비야! 나비야! 청산 가아자! 호랑나비야! 너어도 가아자!" 하는 타령을 거듭하다 보니 어르신들의 목에, 등에, 겨드랑이에 땀이 배었다.
그 땀은 창가에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금세 금세 마르면서 독특한 어르신들의 체취, 어르신들의 나이와 무관하게 그냥 열심히 우리 춤을 공부하고 땀 흘린 사람의 체취로 숨결에 전해졌다.
비위가 유독 약한 내가 참기 어려운 냄새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마음을 이심전심(以心傳心)하거나, 몸이 경직되지 않게 꾸준히 서로 격려해주면서 이신전신(以身傳身)하는 어르신들에게서는 흔히 말하는 노인냄새가 거의 없다. 땀이 마르면서 웃음짓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마치 시골의 농부가 땅에 엎드려 일하다 한 번씩 허리를 펴고 바람을 열 보시기 마시면서 땀을 씻고 웃는 표정과 무척 닮았다.
비위가 유독 약한 내가 참기 어려운 냄새는, 바로 옆방 노인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가 손잡고 거동을 도와주는 어떤 치매어르신이 음식을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켜 다시 토한 냄새와 중풍 어르신들이 제대로 손이 말을 듣지 않거나, 어르신들의 간절한 신호를 요양보호사가 빨리 알아채지 못해 화장실에 골인하기 전에 불상사가 나는 경우이다.
우리 엄마는 외아들의 홀어머니라는 특권으로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시다가, 70세도 안 되었는데 치매이면서 중풍인 할머니를 오랫동안 수발했다. 나를 낳고 얼마 안 되어서 할머니가 쓰러졌는데 내 밥을 못 줘도 할머니의 밥은 자주 챙겨 먹이셔야 했고, 내 기저귀는 못 갈아주어도 벽에 똥칠을 하고 욕을 하는 할머니의 대소변은 얼른 수습하셨다고 했다. 안 하면 난리가 나서 더욱 복잡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 지독한 냄새나는 대소변을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얼마나 잘 수습하는지 어릴 때 나는 참 신기했다. 동네사람들도 오랫동안 엄마가 그렇게 시집살이를 혹독히 시키던 시모님 병간호를 너무나도 잘한다며 효부라고 칭찬도 했다.
엄마는 음식을 참 잘 만들었다. 음식 뿐만 아니라 바느질과 뜨개질은 일가견이 있어 가난한 우리 7남매 옷들은 전부 엄마가 만드셨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제일 신나는 것 중 하나가 집 안 구수한 냄새가 대문 밖까지 났다.
그렇게 대문 밖에까지 냄새가 넘쳐서
"엄마! 닭조림했어? 냄새가 너무 좋아!" 하고 말하면
엄마는 "그래? 냄새가 어떻게 나는지 이야기 해봐?" "그냥 좋은 냄새·… 구수하고 달큰하고·…" 나는 엄마가 왜 묻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그냥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엄마지만 병이 든 시모님 수발과 많은 식구 뒤치다꺼리하느라 가끔 한약이나 부엌 음식을 태우셨다. 음식이 타는 냄새를 맡는 것도 언제나 내가 먼저 맡았고 엄마에게 "
엄마! 감자 타는 것 같은데?" 하면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부엌으로 달려가셨던 경우가 자주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가 오래동안 함께 지내면서 돌봐주셨다. 어느 날 아이가 장이 자주 탈이 났을 때 엄마가 물었다.
"이 똥 냄새 좀 맡아봐! 어떠니?" "엄마가 맡아보면 되잖아? 왜 맡아보라는데?""똥 냄새가 심하게 구리면 병원에 가면 되고, 아니면 그냥 애기속을 비우고 보리차를 끓여먹이면 되니까 그래!"나는 웃으면서 엄마가 직접 맡아보라고 했다. 그제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
사실 나는 어릴 때 비염을 크게 앓아서 그 이후론 냄새를 못 맡는단다. 네가 청각장애인이면 엄마는 후각장애인인 셈이지 뭐!"
숲이 주는 냄새와 손주들의 살 냄새 그리워했을 엄마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어릴 때 할머니의 대소변을 아무런 표정 없이 싹싹 잘 받아내던 엄마의 모습과 맛난 음식이나 탄 음식이나 거의 내 후각을 빌리시던 엄마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순간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붓을 잡기 시작하면서
"엄마! 묵향이 생각보다 마음을 모아주고 머리가 맑아져 잘 선택한 것 같아!" 하면 엄마는 아련한 표정으로
"묵향냄새가 어떤데?" 하고 되물었는데 그때 나는 자세히 설명을 못 해주었던 것도 기억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눈과 귀가 나쁘거나 말을 하지 못하면 장애인이라지만,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해서 장애인인 경우는 없다. 냄새를 못 맡기에 묵묵히 일반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끔은 속상할 때도 더러 많았을 우리 엄마였다.
새가 머무는 숲에 가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 개구리들이 합창하는 소리들을 내가 궁금해 하고 세상의 소리를 그리워했듯이 아마 우리 엄마도 숲이 주는 산소의 냄새를 참 궁금해 했을 것이고 보송보송한 손주들의 살결냄새도 궁금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 만든 음식과 모든 친척에게 나누어줄 만큼 넉넉히 담았던 된장, 고추장, 간장 냄새도 엄마는 무척 궁금해 했을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마 엄마는 세상의 구린 냄새를 몰랐기에 냄새가 심하게 나는 사람의 일과 음식들을 더 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냄새를 맡지 못하고 평생을 산 여자인 우리 엄마!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아무도 몰랐던 것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치부라고 여기는 우리의 사회관습 때문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